[5분 서평] 면도날/서머싯 몸

​세속의 성공과 영혼의 자유

by cm

​모두가 엑셀 페달을 밟으며 성공이라는 결승선을 향해 달려갈 때, 혼자 내려서 "우리는 왜 달리고 있는가?"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보통은 아마 그를 패배자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 취급을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이야기할 책, 서머싯 몸의 <면도날> 은 완벽하게 보장된 탄탄대로의 삶을 제 발로 차버리고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아 구도의 길을 떠난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면도날>은 자본주의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1920년대 미국의 물질 만능주의를 배경으로 '진정한 성공과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현대 문학의 고전입니다.

​주인공 래리는 제1차 세계대전에 조종사로 참전했다가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택한 전우를 보며 깊은 충격에 빠집니다. "악은 왜 존재하는가?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전쟁에서 돌아온 그는 아름다운 약혼녀 이사벨과 좋은 직장, 막대한 부가 보장된 삶을 뒤로한 채 진리를 찾기 위한 방랑을 시작합니다. 파리의 뒷골목에서 막노동을 하고 인도의 아슈람으로 떠나며 영적 깨달음을 추구하죠.


​반면, 이사벨은 래리를 사랑하면서도 결국 안락한 삶을 위해 부유한 사업가와 결혼합니다. 사교계의 거물 엘리엇은 오직 상류층의 인정을 받기 위해 평생을 바치고, 또 다른 등장인물인 소피는 쾌락과 자기 파괴 속으로 몸을 던집니다. 작가는 이들을 평가하거나 선악으로 나누지 않습니다. 그저 저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관찰자적인 시선으로 서늘하게 그려낼 뿐입니다.


​소설의 제목 면도날은 인도의 고대 철학서인 <우파니샤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입니다. 래리가 선택한 구원의 길, 즉 세속적인 욕망을 떨치고 절대적인 진리에 닿으려는 길은 이런 인도 철학 속에 담긴 좁고 험난한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마침내 인도에서 깨달음을 얻은 래리가 선택한 결말은 극적입니다. 그는 성자나 영웅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이 가진 마지막 재산마저 처분하고 뉴욕이라는 거대한 자본주의의 심장부로 돌아가 평범한 택시 운전사이자 정비공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합니다. 누구의 시선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야말로 완벽하고 철저한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우리는 통장 잔고와 아파트 평수가 내 삶의 가치를 증명한다고 믿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이런 황금만능으로 줄을 세우는 것이 당연하게 여깁니다. 이런 세상에서 래리의 선택은 지극히 바보 같고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책을 덮고 나면 우리의 마음속에는 작은 파문이 일어납니다. 과연 세상이 정해놓은 트랙 위를 숨 가쁘게 뛰고 있는 우리는 래리보다 행복하다고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좁고 험하다. 지혜로운 자들은 말한다. 그 길을 걷는 것은 날카로운 면도날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