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동화에 숨겨진 잔혹한 모순
살다 보면 마음이 한없이 건조해지고 뾰족해지는 날이 있습니다. 세상의 무자비한 속도에 지치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았을 때,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를 얻어야 할까요?
오늘 이야기할 책, 포리스터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은 제목 그대로 얼어붙은 영혼에 따뜻한 장작불을 지펴주는 책입니다.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다섯 살 소년 '작은 나무'가 체로키 인디언 핏줄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속에서 살아가며 배우는 소박한 삶의 철학은 출간 이후 수십 년 동안 전 세계 수많은 독자들의 인생 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작은 나무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학교에서 배우는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세상에서 성공하는 처세술이 아닙니다. 그들은 바람의 냄새를 맡고, 나무의 숨소리를 듣는 법을 가르칩니다.
사냥할 때도 결코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꼭 필요한 만큼만 그것도 무리에서 가장 약하거나 병든 녀석을 잡아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체로키족의 철학, 즉 자연의 이치(The Way)를 알려줍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는 인간의 탐욕이 어떻게 세상을 병들게 하는지를 산골짜기 노인들의 입을 통해 넌지시 꼬집는 것이죠.
또한 할머니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내 입맛대로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이 통찰은 관계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대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하지만 이 책을 온전히 읽어내기 위해서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충격적이고 불편한 진실 하나를 알아야 합니다. 출간 당시 자전적 에세이로 알려져 감동을 더했던 이 책이 사실은 100% 허구의 소설이었다는 점입니다.
더 경악스러운 것은 인디언의 지혜와 포용력을 찬양한 작가 '포리스터 카터'의 진짜 정체입니다. 그의 본명은 아사 얼 카터(Asa Earl Carter). 그는 끔찍한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흑인과 유색인종을 탄압했던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단의 악명 높은 리더였습니다.
인종 혐오의 선봉에 섰던 자가 어떻게 이토록 순수하고 아름다운 영혼의 글을 쓸 수 있었을까요? 과거를 세탁하기 위한 기만이었을까요, 아니면 증오로 얼룩진 그의 내면 깊은 곳에 숨어있던 구원에 대한 갈망이었을까요? 이 잔인한 모순은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며, "작가의 끔찍한 삶과 위대한 작품은 분리될 수 있는가?"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작가의 위선적인 실체를 알고 나면 밀려오는 배신감에 책을 덮고 싶어 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거대한 모순 덕분에 소설 속 작은 나무가 전하는 위로의 온기만큼은 기적처럼 더 선명해집니다. 책 속에 담긴 자연의 이치와 사랑의 메시지는 작가의 삶을 초월하여 이미 스스로의 생명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