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3)
몽유병 환자가 살인을 저질렀다면, 재판의 결과는 어떨까?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책 110쪽에는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스물세 살의 케네스 파크스라는 사람이 나온다. 전자회사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고 있었고, 결혼한 지 2년 정도 된 평범한 가장이었다. 5개월 된 예쁜 딸도 키우고 있었다. 그는 처가와의 사이도 무척 좋았다.
1987년 봄, 케네스 파크스는 몇 가지 최악의 선택을 하면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게 된다. 도박에 빠졌고, 수많은 돈을 갚을 길 없어 회삿돈에도 손을 댔다. 불안감 때문에 수면 장애도 일으켰다. 그가 가족 회의를 하기로 했지만, 전날 밤 꼴딱 새는 바람에 하루 뒤로 미뤘다.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다.
그는 기억이 도무지 나지 않았지만, 마룻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장모를 발견했다. 차로 달려가 핸들로 손을 뻗으려는데,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이 들려 있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경찰서로 가서 사람을 죽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잠든 것부터 죽은 장모의 얼굴을 보기 전까지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신체질환이나 약물 남용의 징후가 발견되지 않자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정신과 의사 네 명으로 구성된 팀이 소집되었다.
마침내 신경학자가 수면장애와 관련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어 놓았다. 그는 몽유병을 앓은 이력이 있었고, 가족 중에도 같은 증상을 겪은 사람이 많았다. 법정에 이 증거물들을 제출했고, 결국 그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판사의 판결내용 핵심은 이렇다.
'자동행동'이라는 말이 법정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지만 자유 의지가 결여된 상태에서 한 관련 행동은 항상 범죄에 대한 변론이 된다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행동이 비자발적이라는 변론은 피고인에게 완전하면서도 한정적인 무죄의 자격을 부여한다. (하략)
우리는 수면의 4단계를 이해해야 한다. 1단계는 잠이 들락말락한 상태이다. 2단계는 근육의 긴장이 풀리는 상태이지만 자발적 근육 수축이 일어날 수 있다. 3단계는 서파수면이라고 하는데 가장 깊은 잠에 빠지는 단계다. 4단계는 소위 렘수면이라 일컬으며, 꿈을 꾸는 단계이다.
몽유병 증상, 야노증, 야경증도 3단계, 서파수면 상태에서 일어난다.
몽유병 환자가 자신의 몽유병 증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사건이 뇌의 사건기억에 기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몽유병 환자는 부주의한 운전자와 공통점이 있다. (이 부분은 지난 번 글에서 언급했다.) 몽유병 환자의 정신을 차지하는 것은 꿈이다. 렘수면 동안 꾼 꿈은 75퍼센트 정도 기억한다. 반대로 서파 수면에서 꾼 꿈은 60퍼센트 미만으로 기억한다.
뇌에는 행동을 지배할 수 있는 자동 시스템이 깔려 있다. 미로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쥐를 이끄는 것이든 한 남자를 살인범으로 만드는 것이든 이 자동 시스템이 우리에게 절대로 득이 되지 않을 행동을 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한 가지 문제를 분명히 보여준다. 왜 이런 자동 시스템이 존재하는가? 자연선택이 이 자동 시스템을 유지시킨 이유는 무엇이 득이 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자동 시스템이 있음으로써 우리가 얻는 장점은 무엇인가?
멀티태스킹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어떤 행동을 온 힘을 다해 연습해 습관으로 만들고, 그런 다음 그 행동과 다른 두 번째 행동을 같이 하더라도 첫 번째 행동의 효율이나 성과에는 거의 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입증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뇌가 가진 두개의 평행 시스템을 이용해 행동을 통제한다. 이 두 시스템은 기억 형태에 따라 강점도 다르고 접근법도 다르다. 습관 체계는 절차 위주이며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고 빠르다.
멀티태스킹의 핵심은 습관적으로도 해도 잘할 수 있는 작업이 한 가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뇌의 내부 논리는 멀티태스킹을 위한 기반 작업을 만든다. 인간은 집행 기능 고장처럼 뇌의 어느 한 시스템이 손상되거나, 몽상이나 몽유병 증상처럼 시스템을 잘못 사용할 때에만 뇌가 제공하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잃는다.
케네스 파크스의 사례는 완전히 자동조종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 어쩌면 '물리적' 반복만이 경험을 쌓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신만으로도 뇌를 훈련하는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나도 잘 때 잠꼬대를 심하게 했던 적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떤 일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때에도 기억나는 일이 하나 있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학교 벤치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온 일이다.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또 있다. 다른 친구들은 수업하고 있는데, 나 혼자 과학실인지 음악실인지 거기서 울고 있었다. 우울증이 그때도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렇게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일이 되었지만, 당시 많이 힘들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