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라클코치 윤희진 Nov 19. 2023

만약 내게 주어진 시간이 한 달 밖에 없다면

백일백장 글쓰기_13기_일흔 번째 글

 

어느덧 100일 동안 100일 글쓰기를 하고 있다. 오늘이 70일이니, 앞으로 30일만 쓰면 100일이 끝난다. 이런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만약 내 남은 날도 이 글을 다 쓰게 되는 한 달 후에 끝난다면?’

얼마 전에 쓴 글에서 ‘메멘토 모리’에 관해 짧게 썼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언젠가 죽겠지. 사람이 태어났으니 나이가 들고, 병이 나서 죽겠지’라는 생각만 한다.

오늘 우리 교회에 찬양사역자인 유은성 전도사님이 오셔서 찬양집회를 하셨다. 24년간 찬양사역자로 CCM계에서는 꽤나 유명하신 분이다. 배우 김정화의 남편이기도 하다. 기아대책기구 홍보이사로 두 부부가 섬기고 있고, 입양한 자녀만 해도 28명이나 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에이즈 환자들이 많은데, 주로 어린아이들을 입양해서 그들이 자라도록 돕고 있다고 한다. 유은성 전도사님이 뇌에 종양이 있다는 소식은 얼마 전 다니엘 기도회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음성으로 찬양하시는 유은성 전도사님을 보니 더 은혜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첫 곡은 찬송가 중 나도 좋아하는 곡이다.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어릴 때 많이 부르던 곡이지만, 요즘 들어 이 곡이 더 은혜로 다가온다고 하셨다. 마지막 소절에 나오는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숨질 때에 나의 주님을 사랑할 수 있다 고백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두 번째 곡은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찬양이다. 아름다운 두 곡을 직접 반주하면서 들려주셨다. 평소에 자주 부르던 찬양이었지만, 유은성 전도사님이 직접 반주하면서 찬양하는 것을 들으니 어찌나 은혜스러운지 모르겠다.     

주 보혈 날 위해 흘리셨고, 주 보혈 날 자유케 하니

주 앞에 나 예배하는 이 시간, 나의 모든 것을 주께 드리네.

주의 손 날 위해 찢기셨고, 주의 발 날 위해 박히셨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발에 나의 발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그냥 부르던 찬양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다가온다. 그리스도 인이라고 해서 고난이 없는 건 아니다. 누구에게나 시련이 닥칠 수는 있다. 그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잘 극복하느냐,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보혈 찬송 메들리는 신나게 모두 일어나서 함께 했다. 오랜만에 참여한 찬양집회라 목청껏 찬양하는 시간이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숨길 수 없었다.     

이후에 유은성 전도사님이 다니엘 기도회 때 다하지 못한 간증이 이어졌다. 결연 아동 아그네스를 만나고, 후원하고, 얼마 전 결혼식에 다녀온 이야기부터 그녀보다 한 살 많았지만,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아이의 죽음 이야기까지. 에이즈로 죽어가는 아이들이 많다고 한다. 에이즈에 감염된 아동이 20퍼센트에 달한다고 한다. 하루 한 번 약만 제대로 먹어도 살 희망이 있지만, 그 후원조차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공포 속에 있다. 우리나라 아이들에게 흔히 묻는 질문인, “커서 무엇이 되고 싶니? 꿈이 뭐니?”는 그 친구들에게는 사치라고 한다. 가슴이 먹먹하다. 오늘 강조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내 옆에 있는 가족, 배우자나 자녀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지 말라는 것이다. 부모라는 명목하에 자녀들에게 해 왔던 숱한 비교와 가슴 아프게 했던 말들이 떠올라 견딜 수 없었다. 찬양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읽은 책에서도, 가족과 대화하는 시간에 눈을 맞추라는 부분을 읽었다. 내게 주어진 날이 한 달 밖에 없다면, 어떻게 보낼 것인가? 그때도 여전히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들만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 소중한 추억 하나 만들 것인가.     

이렇게 오늘 하루를 살아내고, 만약 내일 아침에도 눈을 떴을 때 나에게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더없이 감사하자. “새로운 하루를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제보다 더 사랑하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이지연 저자사인회_나는 휘둘리지 않기로 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