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속에서도 새싹은 돋아난다.
봄이 왔다.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 그러나 우리 마을에는 봄이 아닌 재가 내렸다.
산불은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삶의 터전, 추억, 그리고 가족까지.
잿더미가 된 집
창문 너머로 보이던 벚꽃나무는 이제 검게 그을린 기둥만 남았다. 아이들이 뛰놀던 마당에는 재만 쌓여있다. 집은 더 이상 집이 아니다. 그저 잿더미일 뿐.
벽에 걸려있던 가족사진, 아이가 처음 그린 그림, 할머니가 물려주신 도자기. 모두 사라졌다. 물건이 아니라 추억이 불타버렸다.
시간의 단절
시간은 '전'과 '후'로 나뉘었다. 산불 전의 삶과 산불 후의 삶. 그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강이 흐른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마시던 일상이 그립다. 저녁 식탁에 둘러앉아 웃음 짓던 순간들이 그립다.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빈자리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빈자리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옆자리가 비어있다. 식탁의 빈 의자. 신발장의 빈 공간. 그 자리는 영원히 비어있을 것이다.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있다. 밤중에 홀로 흘리는 눈물. 아무도 보지 않는 눈물. 그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상실 속의 발견
슬픔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거세게. 그 파도에 몸을 맡긴다. 저항해 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작은 조개껍데기가 남는다. 기억이라는 조개껍데기. 그것만은 불이 앗아가지 못했다.
다시 봄
언젠가 이 자리에 다시 집을 지을 수 있을까? 언젠가 이 가슴에 다시 봄이 올 수 있을까?
아직은 모르겠다. 다만 오늘도 해는 뜨고, 바람은 불고, 새들은 노래한다. 세상은 여전히 돌아간다.
슬픔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씨앗을 심는다. 언젠가 그것이 자라 꽃을 피울 것이라 믿으며.
재 속에서도 새싹은 돋아난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그것이 삶의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