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작아지는 물약
선희는 병실에서 가장 조용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를 모른 척하긴 어려웠다.
노랗게 뜬 눈동자,
거뭇거뭇한 황달이 얼굴을 뒤덮고 있었고,
가냘픈 팔다리는 마치 사람의 것이라기보단
마지막까지 남겨진 뼈처럼 앙상했다.
몸무게는 많이 나가지 않았고, 목소리는 가늘고 마른 숨처럼 들렸다.
그녀는 간 질환이 심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병보다 더 깊은 문제는 술이었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선희는
병실에 누워 있는 동안에도 손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무언가를 집어 들어야 했다.
커피믹스 스틱을 쥐고 비비거나,
소금 봉투를 뜯어 한 알씩 혀끝에 올리거나,
보석 십자수 큐빅을 몇 번이고 같은 자리에서 옮겼다.
그녀는 손이 허전하면 입이 근질거리고,
입이 비면 가슴이 불안해진다고 했다.
"입 안이 맨밥 같으면… 그날은 망한 거예요.
뭔가 들어가 있어야, 내가 안 사라지는 기분이 들어요."
"언니, 나 진짜 이거 조금만 마시면 괜찮아져요.
머릿속이, 심장이, 손끝까지…"
밤이면 선희는 병실 침대 아래에서 작은 페트병을 꺼냈다.
소금 봉지를 조심스레 뜯어, 혀끝에 소금을 얹고 그 위에 술을 부었다.
그게 그녀의 '식사'였다.
간호사에게 들켰을 땐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오늘까지만 마시려 했어요. 진짜예요."
그 말은 거짓이었지만, 그녀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정신이 맑은 날, 선희는 보석 십자수를 했다.
작은 큐빅을 하나하나 집어 하얀 천 위에 붙이는 그 일은,
그녀가 병실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계획된 삶'의 한 조각이었다.
"이거 예쁘죠? 나는 원래 취미가 없었는데…
언니가 알려줘서 처음 해봤어요."
그녀는 병실 누구와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와만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언니는 말이 안 시끄러워서 좋아요.
그냥 같이 있어도 괜찮은 사람."
선희는 예전에 작은 음식점을 운영했다고 했다.
여러 사정으로 가게를 접었고,
집도 어려워졌고,
가족과도 떨어져 지냈다.
그녀는 늘 "끊고 싶다"라고 말했다.
"살고 싶어요, 언니. 진짜로요. 근데 술이, 나를 안 놔줘요."
술을 마신 날은 눈빛이 느슨해지고 중얼중얼 옛이야기를 늘어놨고,
마시지 못한 날은 손을 뜯고, 이를 갈고, 몸을 긁으며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를 이불속에 묻었다.
한 번은 외박이 허락되어 집에 다녀왔고,
다음 날 돌아온 그녀는 검은 봉투를 내밀었다.
"이거… 우리 집 냉장고에 있던 거예요.
반찬인데, 좀 오래되긴 했지만… 언니, 가져요."
묵은 김치와 콩자반, 고등어조림.
그건 다만 음식이 아니었다.
그녀가 나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었다.
"언니한테 뭘 하나도 못 했잖아요.
이거라도 안 주면… 나 그냥, 아무 의미 없는 사람 같아."
며칠 후, 그녀의 가족이 잠깐 병실에 들렀다.
조심스레 인사를 나누고 갔다.
퇴원 날 아침, 선희는 나를 찾아와 말했다.
"언니, 나 진짜 술 안 마실게요. 진짜 이번엔, 다시는 안 마실 거예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작은 여행 가방 하나를 끌고 나갔고,
뒷모습은 빛에 씻겨 흐릿해졌다.
그 가방엔 아마 보석 십자수 한 장, 소금봉투 한 개,
그리고 아직 꺼내지 못한 '마지막 한 병'이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메모
"거짓말을 반복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진심 하나가 숨어 있다.
선희는 끝까지 술을 끊지 못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끊고 싶었다'는 말만큼은
진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