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의 돌파구이다

나의 작은 경험

by 그레이스 조


친한 동생 미란이가 우리 집에 곧 도착한다. 설레면서도 무언가 조금은 불안하다. 나의 건강하지 못한 내면이 다시 방어기제로 가 발동을 한 것일까? 아무튼 오늘 하루 서로 즐겁게 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쓰고 있는 도중 교회의 동갑 친구인 은수가 고민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며칠 전에 교회에서 개인적으로 있었던 힘든 이야기로 잠시나마 고민을 들어주었는데 오늘은 진로에 대해 고민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난 20분 후에 선약이 있어 그 정도는 가능하다는 얘기에 친구는 20분 정도라도 시간이 있다는 것에 기뻐하며 하나씩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나 또한 나의 생각을 중간중간에 함께 이야기하기도 하며 나름 즐겁게 시간이 흘러갔다.


어느덧 20분이 지났고 누군가 문을 주먹으로 두드리는 듯한 소리를 들었다. 그 동생이 온 거 갔다며 말을 하고 나는 폰을 든 채로 문 앞으로 살짝 다가가 '미란이야?'라고 물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미란이었고 정말 반가운 마음이었지만 문을 활짝 열면 다치거나 놀랄지 몰라 살짝 문을 열며 반겼다. '미란아 오랜만이야! 반가워 들어와~'라고 말하고 핸드폰 너머에 있는 은수에겐 아까 이야기한 동생이 왔다며 '잘 정했으면 좋겠다. 나중에 내가 연락할게'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야기가 다 마무리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는 듯할 즘에서 전화를 끊어 조금은 마음이 놓이기도 하고 다행히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많이 '마음이 많이 건강해졌어'라고 순간 스스로 생각했다. 실은 이 친구와는 어떠한 이야기를 하든 거의 끝이 잘 안 나는 경우가 많기도 하다. 이야기가 제자리를 맴돌 때도 종종 있다. 아주 가끔 쉽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 친구만의 특유의 밝음과 솔직함 때문인지 재미있게 느껴질 때가 꽤 많아서 나 또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다.


나와 미란이는 거의 두 달 만에 보는 듯하다. 나보다 10살쯤 어리지만 속이 깊다고 여겨질 때가 종종 있고 참 예쁜 외모 치고는 성격이 털털한 편이라 그런지 캄보디아 선교를 함께 다녀온 이후 현재 7년째 연락하며 지내는 소중한 동생이면서 때론 친구 같은 아이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어 먹었다. 내가 베이컨을 살짝 굽는 동안 미란이는 양파를 길고 얇게 써는 식으로 일을 각자 분담했다. 베이컨이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기름이 나올 때쯤 후추를 살짝 뿌려 냄새를 잡아주었고 적당히 얇게 썰은 양파와 오일을 넣어 갈색이 될 때까지 볶아 주었다. 기름 속에서 볶는 양파 냄새는 언제나 참 맛있는 냄새가 나고 곧 만들어 먹을 음식의 기대를 높여 놓는다. 내가 그렇게 맛있는 향을 만드는 동안 미란이는 맛있는 냄새에 감탄을 하며 각 식빵에 바질소스와 녹인 버터를 듬뿍 발라 놓았다. 그리고 다 볶은 베이컨과 양파를 듬뿍 발라놓은 식빵 위에 얹어 놓고 바로 한 개밖에 없던 에그 스크램블을 1분도 안되어 후딱 만들었다.


만든 에그 스크램블을 그 위에 얹어 놓고 다시 자연해 동시 켜 놓았던 모차렐라 치즈를 수북이 올려놓았다. 프라이팬에 대략 1-2분 정도 각 식빵의 면을 버터로 구웠다. 너무 두꺼워진 샌드위치에 조금 놀란 미란이가 물어보듯 말했다. '두꺼워서 먹을 수 있을까요?'. 난 자신 있게 '다 방법이 있지 ㅎㅎ'라고 대답을 하고 투명랲을 도마 위에 깔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난 뒤 난 곧 갈색으로 잘 구워진 식빵을 랩 위에 올려놓았다. 랩으로 포장하듯 식빵 전체를 감싸 접었다. 마지막으로 반으로 자르는 건 미란이의 몫이었고 정말 좋은 아이디어라며 칭찬을 해주었다. 우리는 기분이 좋게 각자의 접시에 놓인 샌드위치를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정말 맛있게 먹으며 그동안의 각자의 삶을 나누었다. 그렇게 대략 3시간의 시간이 흘렀고 미란이의 엄마에게도 전화가 와서 집에 갈 채비를 했다. 입술에 주황빛의 립글로스를 바르는 동안 난 오랜만에 만나서이기도 하고 누군가와 오랜만에 만나서 이야기를 해서인지 어느 정도 눈치를 조금은 챘지만 나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조금 더 말했다. 난 분명 어느 정도 알고 있었는데 이야기를 일부러 끊지 않았다.


나도 그 점이 스스로에게 의문이다. 아주 길게는 아니었지만 5-10분 정도 더 이야기를 하고 나서야 나는 배웅할 준비를 했다. 실은 오늘 엄청 피곤한 날이기도 하다. 어제부터 너무 피곤해서 다음에 만나자고 할까 살짝 고민하다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고 약속을 쉽게 취소하는 것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도 상대방에게 예의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과 소중한 친구인데 가볍게 여기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지 않아 취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그 친구가 도착하기 전 나의 컨디션으로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설렘과 동시에 염려가 되었었나 보다는 생각을 지금 해본다. 그럼에도 다행히 생각보다 우리의 시간은 나름 즐거웠고, 3시간 정도 흐를 때쯤 나는 피곤함이 밀려오면서 몸은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꼈고 머리 회전은 이미 둔감해진 상태였고 나의 입은 짧은 생각들로 무의미한 말들로 제어할 줄 모른 채 떠들고 있었다. 버스정류장까지 배웅을 한 후 난 집으로 돌아와 요리할 때 사용하던 요리기구들을 바로 설거지하고 3일 만에 머리를 감았다. 집에만 있다 보니 샤워만 하고 머리를 안감을 때가 종종 있는데 이 습관부터 고쳐야겠다. 글을 쓰다 보니 뭔가 나를 스스로 아끼지 않고 있었단 기분이 든다. 매일 강의를 듣고 토론하고 책을 본다는 핑계로 나의 청결에 너무 소홀히 한 것은 사실이기도 하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니 개운하고 맑은 정신이 다시 든다. 이 맑은 정신이 참 좋고 단순하게도 기분이 다시 조금 좋아진다. 글을 쓰려 앉으려 하는데 이어폰을 두고 간 미란이에게 연락을 했다. 잘 보관해 두겠다고 말하는데 오늘 너무 즐거웠고 맛있는 샌드위치였다며 온 작은 메시지는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나의 염려를 내려놓게 한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할 때 지루에 할까 봐 어렸을 적부터 걱정할 때가 종종 있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음을 30대 초반쯤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왜곡된 생각이었음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삶 가운데서 적용이 잘되지 않고 나도 모르게 다시 염려를 한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 이렇게 '괜찮아, 난 예능인이 아니야. 누군가를 재미있게 해 줄 필요 없어. 나부터 즐기는 사람이 되자'라고 생각을 해왔다. 하지만 오늘 어떤 상황이 생기면 나도 모르게 예전 나의 왜곡된 생각에 지배되고 만다. 그리고 실은 오늘은 나의 컨디션 탓인지 예전만큼의 기쁨과 즐거운 시간은 아니었었다. 하지만 '이럴 때도 있는 거야'라고 생각을 하려 한다. 그리고 그 친구의 오늘 즐거웠단 메시지는 나의 잘못 잡혀 있는 왜곡된 생각을 바로잡아주는데 큰 역할을 한 것 같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을 잘 사귀어야 하나보다. 이러한 작은 좋은 경험이 쌓여서 미래엔 조금이나마 더 좋은 내가 발견될 가능성이 더 커지기 때문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작은 좋은 경험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그리고 잠들기 전 그날 밤의 한 대화 문득 떠올랐다. 우리는 평소에 잘하지 않는 주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날 미란이는 '저는 주식을 잘 모르고 관심이 없어요'라고 처음에 이야기를 시작했었다. 나 또한 내가 관심이 있는 정도보다는 조금 덜 있는 척을 하며 요새 나의 경제사정이 예전 같지 않고 나이가 드니 관심이 가지기 시작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며 덜 속물처럼 보이고 싶어 약간의 연기를 하며 설명을 했었던 거 같다. 그러자 미란이도 관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회에서 만나서인지 물질에 대해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거나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에는 나름 솔직하게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나눈다. 요새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서로 친하지만 서로의 솔직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면 자신을 이전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거나 자신의 비밀이 끝까지 지켜질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들은 적이 있다. 미란이와 나도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 자유롭지 만은 않은 듯하다. 그래서 상담가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여러 이유 중 하나가 이게 아닐까 한다.


우리 현대인들은 풍요 속의 빈곤함을 느끼고 이 빈곤함을 채우기 위해 여전히 더 많은 것 더 많은 사람 또는 더 많은 종교적 희생을 쫓게 될 때가 많이 있다. 나 또한 나의 20대 중반까지의 삶이 그러했다. 그러한 물질 추구가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나를 지배해 왔었다. 그것이 아니라는 결정적인 경험을 하고 난 뒤, 예전에 잠시 다니기도 했고 가끔 하나님께 기도를 하며 보내는 나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딱히 보이지 않아 교회를 다니기로 25살에 결심을 하기도 했다. 7년이란 시간 동안 많은 훈련과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나님이 그때그때 주시는 깨달음으로 행복감과 버텨야 하는 싸움 사이를 오갔다. 은혜와 동시에 때론 나의 의로 종교적 희생으로 나의 만족감으로 채웠던 시간들이 꽤나 있었음을 인정 안 할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나의 '의' 사이의 미묘한 차이는 내가 스스로 제대로 인지하여 구별하기 참으로 어렵고 힘들다. 나의 욕심은 없었고 그냥 다 은혜로 했었음이라고 치부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진실이 아닌 것에 마주하면 성장하는데 어떤 식으로든 걸림돌이 되기에 마주하는 고통을 잠시나마 맛 보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신체적 성장통을 겪듯이 정신적 성장통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누구나 신체적 성장통을 겪는 것처럼 정신적 성장통을 선택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거 같다. 나 또한 선택을 하는 것도 있고 간과하고 지나가는 것도 있고 모르고 지나가는 것이 있다. 무튼 코로나 덕분에 떨어져 지내는 이 시간이 이 나의 지난 7년간의 신앙생활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나의 앞으로의 신앙생활을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생각과 여유를 가져주고 있는 듯하다. 글을 쓰면 신기하게 이렇게 마음이 한결 가벼워짐을 느끼고 기분도 좋아진다. 글쓰기는 나에게 있어 정말 큰 돌파구이자 힐링이다. 감사한 마음이 다시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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