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감사

나의 주저리 주저리

by 그레이스 조

아침에 일어나니 몸이 조금 무거웠다. 일어나자마자 어젯밤 꿈을 되뇌었다. 요새 식민지 시대물 장르의 영화를 보고 당시의 삶들을 묵상해서인지 일제시대 배경으로 한 꿈을 꾸었었다. 이렇게 어떤 꿈을 꾸었는지 생각하다가도 '꿈은 중요한 것은 아니야!'라고 스스로 자주 되뇌곤 한다. 성경적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천 년 동안 무속신앙의 역사를 가진 우리에겐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의시적으로 노력해야 그나마 분리가 가능해진다. 이런 식으로 잠시 뒤척이는 가운데 기분 좋지 않은 관계들이 머릿속에 살며시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은데 잘 안되고 있는 요즘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인스타그램을 열고 올라온 간단한 좋은 글들을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긍정적으로 감사함으로 시작하자!'라고 생각하며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는 겨우 침대에서 나왔다. 보통 일어나서 커피를 먼저 마시는데 오늘은 밥을 먹으려 먼저 부엌으로 향했다. 아빠가 혼자 아침식사를 하고 계셨다. 엄마는 안보이는 것을 보니 아직 자고 계시는 듯 했다. 이번에 다행히 아빠는 코로나 음성 판정을 받으셨지만 혹시 모르니 여전히 식사는 당분간 따로 하자고 하신다. 아빠의 배려에 감사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여태껏 계속 같이 가까이서 이야기하고 생활해 왔는데 의미가 있을까?'라고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아빠가 식사를 마치신 뒤, 난 부엌으로 다시 들어가 따뜻하게 데워진 된장찌개와 불에 한번 익혀둔 간장 속 깻잎과 적당히 익은 김치에 따뜻한 밥 반 공기로 간단히 아침식사를 때우고 난 뒤 귀찮은 설거지를 했다. 그러고 나서 아직 더운 날씨지만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포트에 불을 켜 두었다. 얼마 전에 도착한 미니 시그니처 아메리카노를 생일선물로 받은 하얀 도자기 컵에 부었다.


이 컵을 볼 때면 선물해 준 그 친구가 떠오른다. 올해 미국으로 취업한 친구는 쉽지 않지만 잘 버티고 있다고 하는데 '요새 잘 지내고 있겠지?'. 갑자기 그 친구가 보고 싶어 진다. 얼마 전 새로 산 미니 커피는 다음번엔 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다. 확연히 연한 탓으로 오늘은 두포를 넣기로 한다. 조금 더 비쌌지만 전에 마시던 시그니처 아메리카노가 그립다. 다 먹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내가 작업하는 테이블에 앉아 다시 감사하자라는 모드로 돌아왔다. 내가 한글과 영어로 둘 다 읽을 수 있는 성경 책이 있음에 감사하자라고 시작했다. 이 책을 살 수 있는 여건에 감사했고 지혜와 영어실력 또한 늘어날 수 있는 책으로 시작하는 하루에 감사했다. 요새 학교에서 제공하는 상담을 받고 있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치유가 되고 있음에 너무 감사하다. 아침에 먹을 수 있는 밥과 제공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 코로나로 인해 이번 달 수입은 줄었지만 여전히 일할 수 있고 미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눈과 무언가 해보고 자 하는 마음의 힘에 감사한다. 현재 이렇게 쓸 수 있는 작은 노트북과 노트북을 통해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음에 감사해 보려 한다.


또한 나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난 내향성으로 집에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전형적인 INFJ형 사람이다. 100%는 아니지만 거의 일치하는 것에 놀랐다. 예전엔 나의 이러한 성향을 간과한 채 다른 사람과 시간을 보내면서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 휩싸여 지낼 때가 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었고 그 느낌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애써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며 지낸 시간이 많았다. 그것이 세상 사는 이치이며 성경적이라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면에서 나 자신을 스스로 존중해 오면서는 살고 있지 않은채 말이다. 나 자신을 알려고 하지 않았고 알아야 하는지 조차도 알아야 할 중요성과 방법 또한 알지 못했다. 그저 타인의 눈치를 보며 그들의 보조에 맞추는데 급급한데 익숙해져 있던 나를 보게 된다. 이젠 여러 방면으로 나의 대해 알아가려 노력하고 내 마음과 친해지려 한다.


그중 하나가 예배와 공동체 안에서의 나를 바라보는 눈이었고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음 감히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비대면으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나의 무지함이 나를 숨통을 조여 오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난 지난 10년을 대면 예배를 드렸다. 올해엔 코로나를 핑계로 1/2 정도만 대면 예배를 드렸다. 가끔 나도 모르게 핑곗거리를 찾는다. 이런 내가 싫을 때가 있으면서도 흐름대로 살아왔다. 내가 아는 한국사회는 '~이래야 해' 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에도 '성도는 ~이래야 해'라는 오래된 암묵적인 관습이 있다. 사회적 압력/ 사회 판단 (social pressure/ judgement)을 이기지 못해 튀지 않은 성도로 살아가는데 노력하며 살아온 면도 아주 많이 있는 듯하다. 아니면 나에게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또는 둘 다일까?라고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 하곤 한다. 지난 10년 동안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깨달음으로 버텨오고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함으로써 성장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고 정말 감사하다. 무엇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들이었다. 그러다가도 가끔 다시 몇백 명이 모이는데 장소에 가는 힘듦으로 오는 갈등과 작은 고통이 내 안에서 자주 반복해서 일어나기도 했었다.


기본적인 나의 성향을 어느정도 알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 또한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라는 공동체성의 이 단어가 좋을 때도 있지만 개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지게 할 때도 있다. 개인이 존중받는 사람들이 모이면서 진정한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고 개인이 존중받지 못한 곳의 집단은 집단주의 또는 이기적인 공동체를 형성한다고 배운 적이 있다. 맞는 말 같다. 개인과 공동체로서의 삶이 함께 영위되고 특히 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것에 대한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인식을 한 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대한 파도에 휩쓸리듯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 채 무리 속에서 휩쓸려 떠내려가기 십상이거나 혼자 고립되어 혼자 생활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 함께 하는 기쁨과 성장하는 기회를 놓치기 쉬운 현대 사회에 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무언가 배울 때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교류하며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넓고 깊게 배우게 되며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동시에 때론 혼자 자아성찰을 하며 외로움과 고독감 등의 시간을 버티어내며 보다 더 깊은 내면을 갖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균형이 중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말이 쉽지 정말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 하루도 노력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ㅎㅎ 조금씩의 힘을 믿으며 오늘 하루 이렇게 소소한 나의 글을 쓴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이야기가 여기까지 흘러나왔다. 오늘 남은 하루를 감사한 마음으로 채워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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