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디자이너 Jun 05. 2020

미국 회사에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질문들

지금 알았던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나이가 어떻게 돼요?


'이건 너무 당연한 거지'라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얼마 전 한국에 계신 아빠와 통화하다가 아빠가 물었다. "그 저, 니 디렉터 나이가 몇이랬지?" 난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다. "저는 우리 팀원들 나이 한 명도 모르는데요?"


적잖게 당황하신 아빠. "하, 거참. 나이를 모르고 어떻게 같이 일하냐?"


그래, 나도 한국인들과의 모임에 가면 나이를 자연스럽게 물었던 것 같다. 요즘은 이것도 상대방이 먼저 말할 때까지 안 하려고 노력하지만 말이다. 미국에서 회사를 다니며 만나는 인간관계에서는 나이를 먼저 묻지 않는다. 물론 서로 친분이 쌓이고 격이 없어진 사이라면 언제든 물을 수 있고 나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들이 꽤 있다. 미국에서 취업 시 쓰는 이력서에는 나이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칸이 없다. 물론 학교 다닌 기록을 보고 대략 나이 때를 유추할 수는 있지만 나이로 취업 시 차별을 두는걸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결혼했어요? 아이는 있어요?


나이보다 더 예민한 질문이다. 결혼 여부는 보통은 손가락에 반지를 끼고 다니니 이건 눈치껏 알아차릴 수 있어서 그나마 실수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아이에 대한 질문은 좀 더 예민한 사항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한국에서 유학 온 뒤 바로 취업한 한국사람들이 이런 말실수를 하는 걸 몇 번이나 목격했다. 특히  나름 본인이 유머감각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몇 번 농담 던졌는데 미국인들이 빵 터져서 자신감이 지나치게 상승하신 분들. 미국인들이 이해 못할 농담까진 친해지고자 하는 노력이니 이해해도 가끔 너무 개인적인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처럼 던질 때, 같은 한국인인 나는 이게 마치 나의 잘못인 듯 얼굴이 화끈거린다. 유머러스 한 모습은 사회생활에 필수지만 그전에 꼭 전반적인 문화나 사고방식을 이해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다행인 건 '왜 아이가 없어요?'라고까지 물어본 건 본 적이 없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도 이미 아이 대신 반려견을 키운다던지 아니면 그냥 딩크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렇게 살다가 뒤늦게 입양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경우도 있다. 사실 내가 이해할 수도 없는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그 어떤 판단의 잣대를 들이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인종에 관한 모든 언급


나이, 결혼, 아이 모든 걸 합친 것보다 가장 예민한 사항이 인종에 관련된 말들이다. 이건 말실수였다고 해도 사실 그냥 직장에서 해고당할 수 있을 만큼 그 말의 무게가 무겁다. 사실 요즘 유학 오는 젊은 친구들은 외국 경험이 꽤 있거나 많은 교류를 해서 어느 정도 매너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이 친구들조차도 크게 생각하지 않고 그저 뱉은 말이 인종차별적인 말로 들려 크게 곤란을 겪을 수도 있다.


회사에 처음 입사하고 이틀 동안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교육을 받았다. 그런데 두 번째 날 교육은 거의 하루 종일 Diversity(다양성)과 Discrimination(차별)에 관한 내용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교육을 받으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인종, 성별, 피부색, 성 정체성, 종교 등 직장 내에 존재할 수 있는 불공평한 차별의 사항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 사항의 민감성도 느끼게 되었다.




회사 오피스 한편에 있는 직원들의 얼굴 사진. 수많은 인종과 문화권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있는 모습 같아서 볼 때마다 참 뉴욕스럽다 느낀다. (자세히 보면 아기와 강아지도 있다)



내가 침묵하는 이유


우리 팀은 아침 10시 반마다 모여서 30분간 그날의 프로젝트나 진행사항에 대해서 미팅을 한다. 때로는 일이 별로 없으면 그냥 그날 아침에 뭐 먹었는지, 저녁에 뭐 먹을지(밖에 못 나가니 대화가 점차 일차원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잡다한 이야기를 한다. 평소라면 활발한 팀원들 한둘이 농담을 던지고 분위기를 띄울 텐데 이번 사건으로 며칠째 미팅 분위기가 참 무겁다.


그렇게 조금 무겁게 미팅이 진행되던 중 디렉터가 들어왔다. 3주간 휴가 간 사람이 여긴 왜 들어왔지?(물론 휴가를 갔어도 집에만 있기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다들 말이 없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Hi'라는 짧은 인사를 하고 15도쯤 고개를 숙이고 누군가 말을 좀 해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팀의 유일한 흑인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모두 다 이번 인종차별로 인한 사건으로 마음이 무겁지만 우리가 느끼는 아픔이나 고통과 미국에 사는 흑인 커뮤니티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고통은 비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그걸 알기에 디렉터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미국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이런 예민한 상황에선 그냥 침묵을 지키는 게 답이다. 어설픈 위로나 공감을 표현하는 말을 하다가 자칫 정말 크게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배웠기에 그저 말을 아낀다.




기다리면 먼저 말을 걸어온다.


내가 인간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나도 안부 정도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조심스러워서 눈치만 보고 있는 나를 봤는지 먼저 나에게 요즘 괜찮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사실 잠을 좀 못 자는 것 같아.라고 말했더니 자기도 그렇다고 본인이 쓰는 Meditation App(명상을 도와주는 앱) 몇 개를 소개해 준다. 예전엔 나도 흑인 노예문제나 인종차별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면 그들을 어느 정도 이해할 거라고 오만한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친한 흑인 친구가 나에게 건넨 말이 있다.


"You will never know"


그래, 이제는 알겠다. 미국 생활이 길어지고 더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경험이 쌓일수록 나와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정말 어렵다는 사실을. 그래서 이제는 그냥 솔직하게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배우려 노력하지만 절대 아는 척하지 않는다. 그저 예민한 문제는 상대방이 먼저 얘기할 때까지 침묵하기. 이게 내가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미국 회사, 그리고 뉴욕 오피스에서 일하며 느끼고 배운 교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 나갔던 애사심, 코로나와 함께 돌아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