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다.
그건 그날의 사건일 수도, 나의 감정일 수도, 또는 스쳐가는 향기일지도 모른다.
1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너무 생생한, 나에게 텅 빈 하얀 종이 트라우마를 선사한 그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자기 앞에 놓인 종이 보이죠? 거기에 지금 눈앞에 보이는걸 그냥 그리면 돼요."
눈앞에 보이는 게 뭐지? 20명쯤 들어갈 수 있는 아트 스튜디오의 한 교실에 앉아있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교실 양쪽 바닥엔 학생들이 그린 것 같은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쌓여있었고 내 앞으로 조금 낡은 듯 보이는 책상들과 거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포스 넘쳐 보이는 선생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사그락 사그락 펜슬 소리가 들려왔다. 이 사람들은 대체 뭘 그리는 거지? 여기는 어디고,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할 동안 30분의 시간이 지났다. 언뜻 봐도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아이들은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교실의 풍경을 종이에 옮겨가고 있었다.
텅 빈 하얀색 종이. 손도 못 대본 연필. 민망함에 등줄기를 타고 흐르던 땀줄기.
그렇다. 이 날은 디자인학교에 입학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뉴욕으로 날아와 처음 포트폴리오 수업을 들은 날이다. 한껏 부풀었던 가슴속 열정만큼, 높이 하늘을 날아가던 내 꿈의 높이만큼 나는 바닥으로 제대로 사정없이 추락한 기분이었다.
그런 아이였다. 미술시간엔 칭찬 한번 받지 못한 아이.
나는 미술에 관련된 모든 영역을 아울러서 모두 재능이 없다는 걸 수없이 느꼈지만 그중 단연 최고는 그림이었다. 이상했다. 나는 분명 눈에 보이는 대로 사람을 그렸는데, 왜 다른 애들이 그린 그림과 내 그림은 다르지? 다르다고 틀린 걸까?
내 성적표에 나와있는 글자들이 대신 대답해주더라.
응, 넌 예술 감각은 없어. 그니까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는 게 좋을 거야. 예술하기엔 이미 늦었지. 그림은 타고나는 거야.
초, 중, 고 모든 미술 선생님들이 다 그렇게 말하니까. 나는 그런 줄 알았다.
나는 예술하면 안 되는 사람. 그림엔 재능이 없으니 디자이너는 꿈도 꾸면 안 되는 사람.
어려서부터 세뇌하듯 들어서일까. 나는 시작도 하기 전에 드로잉이란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텅 빈 하얀 종이 트라우마를 안고 나는 그래도 계속 수업을 들었다. 다만 내 자리는 고정이었다. 아무도 내 캔버스를 볼 수 없는 맨뒤 구석자리.
내가 다니던 뉴욕 아트 스튜디오는 현직 뉴욕 디자인학교 교수들이 가르치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기본기라고는 1도 없는 나는 그저 시키는 대로 정말 아무렇게나 그려댔다. 민망함과 두려움도 한 몇 주가 지나서 만천하에 내 실력이 드러나고 나니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한국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열세네 살부터 열아홉 정도 되는 어린 친구들이었다. 물론 나도 그때 스물다섯밖에 안됐지만 그때는 왜 이렇게 나 혼자 늙은이처럼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함께 크로키 수업을 듣는 날이면 나는 맨뒤에 앉아서 사람 형상을 한 오징어들이 가득 찬 내 캔버스와 벌써 예술가의 작품처럼 보이는 아이들의 캔버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 역시 나는 정말 소질이 없는 걸까?
이게 무슨 일이지? 자꾸 디자인 교수들이 내 그림을 칭찬한다.
"미국 사람들도 동정심이 있네. 의외로 참 인간적이네. 참된 교육인이야."
나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흘려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상담해주시던 한국인 팀장님이 오피스로 불렀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더니, 교수들이 내 그림이 개성 있고 독특하다고 칭찬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다른 한국 학생들은 기계처럼 그림은 너무 잘 그리는데 다 너무 똑같아서 그 사람 특징이 안 보인다고 이야기했다고 말해줬다. 나는 지난 나의 미술 흑역사를 침 튀기며 설명하면서 또다시 나를 부정하는 말을 쏟아냈다. 한참을 듣고 있던 팀장님이 너는 너에 대한 편견부터 깨는 게 먼저겠다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그림은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식이야. 테크닉은 중요하지 않아."
그 뒤로 정확히 10년이 지났다.
나의 흑역사를 씻어준 고마운 아트 스튜디오 덕분에 난 뉴욕 주립 디자인학교(FIT)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하고 같은 학교에서 전시공간 디자인으로 석사까지 공부했다. 지금은 뉴욕의 대기업에서 Experiential Design이라는 조금은 생소해 보일지도 모르는 마케팅 분야에서 공간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꽤나 길어진 자가격리 생활 덕분에 쉼 없이 달려온 10년을 돌아볼 시간이 생겼다. 한국에서 경제학으로 대학교를 졸업한, 돈도 없고 재능도 없던 내가 지금 어떻게 뉴욕에서 나름 인정받는 디자이너가 될 수 있었는지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졌다.
나는 이렇게 잘났다!
이런 말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20대의 끊임없이 방황하던 내 지난 시절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들의 꿈을 찾아가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 그리고 30대 중반을 지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고민과 방황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지금은 디자이너, 하지만 또 다른 성장을 꿈꾸며 글을 쓴다.
뉴욕에서 디자이너가 되기까지 쉽지 않았던 지난 이야기들과 지금 미국 대기업 마케팅팀에서 한국인 디자이너로 사는 현실 이야기를 공유하려고 합니다. 마음이 맞는 분들과 소통을 꿈꾸며 서툰 솜씨지만 글을 씁니다. 선한 영향력을 가진 지성인이 되는 꿈을 꾸는 아직 성장 중인 한 사람입니다. 더 좋은 인연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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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0권의 책읽기를 진행하며 인스타그램에 리뷰와 100권의 책읽기와 글쓰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기록중입니다. (@readn_gr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