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른 풀잎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한국에서 도착한 반가운 택배 상자.
미국에 온 지 14년 차가 되어가지만, 그동안 엄마가 뭐라도 보낸다고 하면 항상 손사래를 치고 거절하곤 했다. 아마도 처음 정착할 때 몇 번 받고 이번 코로나 사태로 집에 머물러야 했던 시기까지 '택배 거부'를 강력하게 유지해왔다. 처음엔 뭐라도 부탁하면 온 정성과 마음을 다해서 준비할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서 여기 없는 게 없다고 안심시키며 거부했다. 시간이 지나자 정말 한국에서 특별히 받지 않아도 생활해도 될 만큼 불편함이 없었고, 또한 적어도 1년에 1번 이상 한국을 방문했기에 또 그 필요성이 줄어들었다.
코로나 사태로 한인마트에 쉽게 가지 못하니 한국 식재료 하나하나가 귀해졌다. 그 와중에 마스크까지 못 구하는 상황이 되니 어쩔 수 없이 '택배 거부'를 잠시 접어두고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SOS 요청을 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스크랑 그냥 김 같은 가벼운 것만 간단히 보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소박한 양의 김과 마스크를 기대하고 연 택배 상자에는 어마어마한 양의 김과 이름 모를 정체불명의 나물들이 가득했다. 엄마의 손글씨로 하나씩 이름을 붙여 놓은 나물 봉지들. 머위, 고구마순, 취나물 등등. 언뜻 보기엔 사람이 과연 먹을 수 있는 건가 싶은 비주얼을 자랑하는 마른풀들의 집합이었다. 엄마는 요즘 들어 입맛도 없고 뭔가 산뜻한 봄나물이 먹고 싶다는 나의 말을 기억하고 하나씩 준비해둔 모양이다.
재택근무가 길어질수록 무기력에 빠지던 나날이었다. 거기에 몸살 기운까지 덮쳐서 의욕도 없고 기분까지 처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특히나 매일 먹는 집밥 메뉴에 질려버려서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어찌 요리해야 할지 몰라 고스란히 모셔두었던 택배 상자 속 나물 봉지들을 살펴보았다. 그중 가장 친숙한 이름이 보인다.
취나물.
한국에 있을 때 봄이 되면 항상 식탁에 올라오던 반가운 나물 요리 중 하나였다. 고소한 들기름 향을 가득 품은 나물들을 양푼에 한가득 담는다. 거기에 온 가족이 먹을 만큼 충분하게 밥과 고추장을 넣고 섞어서 모두 참 맛있게 먹었던 그런 추억이 떠오른다. 분명 맛은 기억나는데, 막상 이렇게 비쩍 마른풀의 모습을 한 비주얼을 보니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음식으로 몸을 치료한다는 말은 항상 들어왔지만, 그걸 몸소 체험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를 먹어서 즉각 반응이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내 몸은 그렇게 예민하진 않았던 모양이라 생각해왔다.
적당히 물에 불리고 삶은 취나물에 된장 조금과 참기름, 그리고 엄마가 보내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렸다. 이렇게 간단히 무친 나물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입에 넣은 순간, 그 풍성한 자연의 향에 너무나 놀랐다. 분명 조금 전까지 마른풀이었던 이 아이들은 지금 내 입속에 들어와서 나에게 자연의 향을 선사해주고 있었다. 약간의 씁쓸함이 주는 어느 산속 흙의 향기까지 머금은 너무 완벽한, 내가 그리던 그 봄나물 맛이었다.
취나물 한가득 넣고 다른 반찬 없이 갓 지은 밥을 비벼서 배불리 먹고 소파에 누워 잠시 곤히 잠이 들었다. 햇살이 뜨거워져 눈을 떠보니 벌써 한 시간은 잠들었던 것 같다. 몸살 기운 때문인지 뭔가 눈도 침침하고 몸이 무거웠는데, 가볍게 일어나지는 나의 몸. 이거 정말 방금 먹은 그 나물 때문인가? 믿거나 말거나 엄마가 보내준 나물들을 하나씩 꺼내 엄마의 레시피를 따라 나름 정성을 다해 만들어두고 한 3일 나물 만찬을 벌였다.
정작 보내고도 안 해 먹을까 봐 걱정했다는 엄마에게 내가 요리한 나물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너무나 행복한 엄마의 목소리에 불현듯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나의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미안함을 느끼는 내 마음만 보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내 생각을 하는 그 엄마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 같다.
봄이면 아픈 무릎으로 산에 참 자주 다니던 엄마.
어느 날 엄마에게 물었다.
“왜 이렇게 봄 되면 산에 자주가?"
엄마는 바람이 선선히 부는 고요한 자연으로 가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나물을 뜯다 풀이 소복이 자란 평지가 나오면 잠시 그 자리에 누워서 바람을 맞는다고 말했다. 그렇게 누워있으면 돌아가신 할아버지 품에 안긴 듯 마음이 따듯해진다고 했다.
문득 3년 전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하루가 멀다 하고 산에 다녔던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에게 자연은 이제는 옆에 안 계신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의 품이었구나. 취나물을 맛있게 먹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렇게 허전한 자신의 마음은 지나가는 자연의 바람 속에 잠시 맡겨두고, 나를 생각하며 또 얼마나 열심히 하나하나 나물을 뜯으러 돌아다녔을까.
나도 언젠가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때, 자연 속에서 엄마의 품을 그리워하고 있겠지. 이 대자연의 기운과 엄마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나물을 먹고 있자니, 코로나가 불러온 무기력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리움이 한가득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