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15주 차, 집단 무기력증에 빠진 사람들

누가 우리를 좀 구해주어요

by 지금은 디자이너


우리는 나름 잘 선방하고 있었다.


뉴욕주의 하루 사망자가 700명을 넘어가고 있을 때에도,

주변 지인들의 해고 소식이 매일 들려오던 때에도,

나름 우리를 지탱해주는 일상을 유지하려 애쓰며 잘 버텨냈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지난주, 특히 이번 주부터 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코로나 블루'인가?






매일 격리생활을 하면서도 나를 우울의 나락에 빠지지 않게 해 준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아침마다 팀원들과 하는 30분 정도의 회의였을 것이다. 그렇게 가깝지도 또 그렇게 먼 사이도 아니었던 우리 팀은 자가격리 이후 급격히 서로에게 의지하며 지내게 되었다. 아마도 그것은 우리가 바이러스의 핵심지였던 '뉴욕'이란 곳에 산다는 공통점과 매일 같은 시간, 일을 핑계로 만날 수 있는 사이여서 인듯하다. 때로는 서로의 불안한 마음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고, 아무 말도 하기 싫은 날에는 그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최소한의 human contact'을 이어간듯하다.


미국인들이 이렇게 정이 많은지 몰랐어.


사실 미국 회사에 다니면서 한국 같은 '정'문화는 기대하지 않았다. 주로 점심을 각자 편한 시간에 먹고, 퇴근 후에 어디 가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는지 웬만해선 묻지 않는다. 또한 팀 회식은 웬만하면 점심으로 대체하고 일 년에 1번, 크리스마스 파티 때만 저녁에 회식을 하는 이곳의 문화. 그래도 개인의 의사를 존중해주는 이런 문화가 나와 잘 맞았고, 직장은 친구를 사귀러 오는 곳이 아니라는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다녔기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이런 관계가 참 좋았다.


하지만 각자가 가장 불안할 때,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보인 모습은 그동안 쌓아왔던 벽을 허물기에 충분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와 잘 차려입은 정장, 빈틈이 없어 보이던 회사의 대표들이 흐트러진 머리와 편안한 티셔츠를 입고 미팅에 나온다. 회의하는 중 고양이가 화면을 뒤덮고, 때론 프로젝트 발표하는 팀원의 목소리와 개 짖는 소리와 합쳐져 환상의 조합을 이룬다. 이젠 우리 팀 디렉터의 막내가 화면에 같이 등장하여 우리에게 자기가 어젯밤에 읽은 책 얘기를 해주는 것에 익숙해질 정도로 나는 그렇게 새로운 미국의 '정'을 느끼고 있다.






조용하다.


그냥 조용한 게 아닌 뭔가 깊게 가라앉은 기분이다.

이렇게 나름 힘들던시기를 잘 버텨온 팀원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다. 지난주부터 뭔가 서서히 말수가 줄어드는 듯싶다가 이번 주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늘어간다. 보통 활발한 성격의 몇몇이 대화를 이끌어내고 다들 한 마디씩 더하며 또다시 그렇게 대화가 시작됐는데, 이젠 뭔가 그 매직도 통하지 않는 듯하다.


대체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Mentally exhausted.


정신적인 피로감. 집단 상실감. 불안증세. 이런 것들이 합쳐져 우울증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됐을 때부터 누누이 들어온 말이었는데, 이게 집단으로 팀원들에게 나타나니 더욱 피부에 와 닿는 듯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분위기의 시작은 조지 플로이드 사태가 터졌던 그 시점이었던 것 같다. 잘 버티던 우리가 아마 이 강펀치를 맞고 쓰러져버린 모양이다.





이런 분위기가 우리 팀만은 아닌듯하다. 회사에서 유명하다는 명상전문가와 심리상담가와의 세션을 자주 마련하고 있다. 다들 나름 도움이 되었지만, 그중 나에게 가장 와 닿았던 조언은 바로 이 말이었다.


"It is okay to feel sad.

Just let yourself feel the emotions."


슬픔을 느껴도 된다고. 수많은 감정들이 몰려와 나를 짓누를 땐, 그저 그 감정을 느끼면 된다는 그 말이 왠지 모르게 큰 위로가 된다. 지금 우리가 느끼는 이 감정들이 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오히려 다행이다 싶다.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져야 하는 스트레스와 피부 가깝게 와 닿는 이어지는 상실의 슬픔.


그저 이 감정의 터널에 누구도 너무 깊게 빠지지 않게, 서로를 잘 붙잡고 그렇게 지나가 봐야겠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