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흑인 동네에 산다

내가 알게 된 불편한 진실들

by 지금은 디자이너

어제 회사에서 긴급 메일이 왔다.


내일 하루는 조지 플로이드의 장례식을 추모하는 시간을 주기 위해서 회사 내 모든 미팅을 취소할 예정이니 급한일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고 일을 쉬고 애도의 시간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반복되어온 인종차별을 이번에도 그대로 묻어버리지 말자는 의지를 담아 미국의 큰 기업들이 동참한다고 한다.


Photo by Rosk Loste (photo © Jaime Rojo)




우리는 과연 얼마만큼 알고 있는가?


아니,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나름 열린 마음으로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문제도 관심 있게 바라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후배가 추천해준 다큐멘터리를 보고 또 한 번 충격에 빠졌다. <<미국 수정헌법 제13조>>라는 타이틀을 가진 이 다큐멘터리는 넷플릭스에서 교육용으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YouTube에 공개했다.


YouTube에 Educational documentaries Netflix를 검색하면 나온다. (한국어 자막 옵션은 있지만 유튜브에서는 제공이 안되고 있다)


"어떠한 노예제도 또는 강제 노역도, 당사자가 정식으로 기소되어 판결로써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 미합중국 또는 관할 영역 내에 존재할 수 없다"


이 문장만 읽으면 흑인 노예제도를 없애기 위한 바람직한 조항으로 보인다. 하지만 "확정된 형벌이 아닌 이상"이란 부분에 주목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이 조항은 '범죄자'로 확정이 된 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왜 우리 사회에 '흑인은 범죄자'라는 사회적 편견이 뿌리 깊게 자리 잡히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겉으로는 노예해방을 외치면서도, 그동안 흑인 노예를 부리면서 이득을 봤던 기득권층과 기업, 정치인들이 더 많은 흑인을 '범죄자'로 만들기 위해 사회적 시스템을 조정해온 믿기 힘든 현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사설 감옥.

이것이 현대판 노예제도가 아니고 무엇일까.



다큐멘터리를 보는 1시간 40분 내내 대체 내가 그동안 알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건 입법 교류회의, ALEC라고 불리는 단체가 행해오고 있는 대량 투옥 체제에 관한 내용이었다.


미국 인구가 전 세계 5%에 불과하지만 전 세계 죄수의 25%가 미국에 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인구 중 6%를 차지하는 흑인 남성이 수감 인구의 6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리 중 누군가는 당연히 흑인 남성이 폭력적이고 범죄를 많이 저지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내 주변에 아직도 백인이 흑인보다 유전적으로 우월하다고 믿는 사람도 존재하니 말이다.


ALEC와 손잡은 사설감옥 회사 CCA는 더 많은 재소자를 양상 해나가며 엄청난 이득을 취했다. 또한 여기에 한몫을 한 것이 바로 미디어였다. 흑인 범죄자들이 감옥에서 동물보다 못한 모습으로 수감되어 있는 모습, 흑인 남성이 백인 여자를 강간하는 내용의 스토리를 다룬 영화 등 수없이 많은 매체를 통해 우리는 흑인, 특히 흑인 남성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세뇌당했다. 더욱 안타까웠던 건 흑인들 조차도 스스로를 열등하고 폭력성이 강하다고 믿으며 자신들을 이용하는 백인 정치인들을 지지했다는 사실이었다.


참고로 사설감옥에 자금을 지원한 기업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미국의 대기업은 대부분 들어가 있다고 보면 된다. 각 기업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득을 취했는데 그중 통신회사 이야기도 나온다. 이유 없이 끌려온 재소자들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려면 비싼 비용 때문에 최저임금을 받고 일한 노동의 대가를 다 써야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인간 대우도 못 받고 감옥에서 일한 대가를 착취해서 지금 내가 다니는 기업이 자리 잡았다고 생각하니 머리가 멍해진다.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라는 집회 구호이다. (Photo by REUTERS/Darren Ornitz)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인을 비롯해 동양인이 거의 살지 않는 브루클린의 어느 한 동네이다. 처음에 이곳으로 이사 온다고 했을 때 한국 지인들의 반응이 대체로 비슷했다.


"거기 흑인들 사는 곳 아니야?"

"안 무서워? 흑인들 많은 곳에 사는 거?"


브루클린은 원래 흑인들이 오랫동안 정착해서 살아온 곳이다. 그러나 맨해튼의 치솟는 집값을 감당 못 한 사람들이 점점 브루클린 쪽으로 이동해 오면서 지금은 맨해튼에서 가까워질수록 살인적인 물가를 자랑한다. 나도 그 집값을 피해서 오다 보니 브루클린 더 안쪽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러나 이곳도 한참 젠틀리 피케이션이 일어나고 있어 오래된 벽돌 건물들을 부시고 럭셔리 빌딩을 짓는 공사가 여기저기 진행 중이다.



IMG_1965.jpg 매주 금요일 아침부터 시작되는 무료 식량 배급을 기다리는 사람들



흑인 동네에 살아보니 여기도 그저 사람 사는 곳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다만 이번 코로나 사태에 가장 타격을 받은 저소득층의 대다수가 흑인계층이고 나는 그 여파를 직접 눈으로 목격하고 있다. 아침에 산책 가는 공원 벤치에는 더 많은 흑인 노숙자가 보이고, 매주 금요일 무료 식량을 배급받으려 모이는 사람들의 줄이 끝을 모르고 길어진다.


이 영상을 보고 나니, 나도 어찌 보면 저들의 입장이 될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현재도 기득권층과 거대 단체들은 다음 타깃을 찾고 있다고 하니,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인 나라고 그 타깃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물론 나는 인권운동가도 아니고, 이런 이슈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만큼 지식이 있지도 않다.


다만 흑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우리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봤으면 하고 바라본다. 이들이 겪은 고통까지 모두 동감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왜 이렇게 그들이 분노하는지 정도는 이해해 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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