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03. 2024

미국 취업 시 인맥보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간과하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

정말 인맥이면 다 될까?


지금 당장 구글에서 '미국 취업 인맥의 중요성'이라고 쳐보자. 각 분야에서 경험한 실감 나는 후기가 쏟아져 나온다. IT, 법률, 의학, 금융, 디자인 등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실제 본인이 겪은 이야기, 주변 지인들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생생하게 적혀있다. 그들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한 가지는 '미국에서 취업하려면 인맥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냥 중요한 게 아니라, 인맥은 미국 취업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다.


그중 '미국만큼 인맥으로 대기업 취업되는 나라 없다 진짜'라는 글은 조회수가 무려 4만을 넘어간다. 내가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미국처럼 합리적인걸 중요시 여기는 나라에서 정말 그럴까?'라고 의심했을 것이다. 이런 카더라 통신류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달되면서 너무 부풀려지고 왜곡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한 지 17년 차가 된 나는, 이 말에 100% 동의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인맥을 통한 취업'이라고 하면 왠지 부나 권력이 있는 부모님이나 직계가족이 본인들의 가족을 어떤 자리에 꽂아주는 '낙하산' 취업을 떠올리게 된다. 본인의 실력보다 과분한 자리에 앉혀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안타까운 그림이 그려진다. 물론 미국에도 이런 낙하산 취업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오늘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인맥의 힘'은 이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것이다.


나는 어땠을까?

이 글을 쓰며, '나는 몇 번이나 인맥으로 취업을 했을까?'라고 떠올려봤다. 10년이란 기간 동안 무려 5번의 취업을 인맥을 통해서 했다. 물론 한 번의 인턴쉽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정식 취업 시 인맥을 통한 경우는 총 4번이다. 내가 이직을 많이 한 케이스지만, 절반 이상의 경우가 인맥을 통해 얻은 기회였다.


내가 가장 처음 인맥을 통해 얻은 기회는 뉴욕에서 대학원에 다닐 때 얻은 인턴쉽 기회였다. 대학원 학장의 추천으로 가게 된 이곳은,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디자인 회사였다. 학장과 관계가 두터운 채용 담당자와 인터뷰 한 번으로 바로 기회를 얻게 되었다. 거기에 회사는 뉴욕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왕복 비행기표, 인턴 기간 동안 머무를 숙소 비용, 높은 시간당 급여까지 기대 이상의 많은 것을 제공해 주었다.


그다음 처음 취업에 성공한 회사는 인턴회사에서 인맥을 쌓은 디렉터의 추천 덕분이었다. 인턴 기간이 끝나기 전 회사의 디렉터 5명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중 한 명이 자신의 친구가 뉴욕 디자인 회사에서 디렉터로 일하는데, 한번 연락해 보라고 연락처를 준 게 계기가 되었다.


추천을 해준 디렉터와의 신뢰관계 때문인지, 이번에도 한 번의 인터뷰를 통해 바로 취업에 성공하였다. 그다음 기회도 모두 함께 일하던 동료나 디렉터의 소개로 다른 회사로 이동하였고, 인터뷰 과정은 정식 채용했을 때보다 훨씬 수월했다.

보통 공채나 정식 공고를 통해서 취업하려면 회사 웹사이트를 통해서 복잡한 서류 전형을 통해서 자신의 이력서를 제출한다. 그다음 Screening Interview라고 해서 채용 담당자가 아닌 인사과나 채용 관련 직원과의 전화 인터뷰를 한다. 여기서 통과하면 같이 일하게 될 담당자와 2차 인터뷰를 하고, 그다음으로 함께 일하게 될 팀원들과 3차 인터뷰를 한다. 내가 정식으로 들어간 경우에는 이것보다 더 많은 인터뷰를 본 적도 있고, 아침에 도착해서 오후 늦게까지 하루종일 여러 팀과 인터뷰를 본 적도 있었다.


이토록 인맥을
중시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에서 직장을 구하는 입장일 때는 이 이유를 알지 못했다. 경력이 쌓이다 보니 팀에서 중요한 위치가 될 때가 여러 번 있었고, 이 과정에서 채용 담당자인 매니징 디렉터들과 함께 채용 과정에 참여하는 경험을 했다.


그중 한 번이 내가 LA직장에서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할 때였다. 팀의 디렉터가 해고당하는 바람에 팀의 VP(Vice President)와 함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채용에 참여했는데, 포스팅을 올리자마자 하루 이틀 사이에 몇백 명의 지원자가 이력서를 제출했다. 일주일이 안 되는 사이 우리는 채용 포스팅을 마감했고, 엄청난 양의 이력서를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없어서, 다른 인사 담당자가 몇 명의 후보자를 추려서 스크리닝 인터뷰를 진행했다.


몇 주에 걸쳐서 여러 사람들과 인터뷰를 보고 많은 시간을 투자했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사람은 내가 추천한 사람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추천한 게 아니라, 과거에 나와 뉴욕에서 일했던 디렉터였다. 나는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고 특별히 한일은 없는데, 나중에 담당자에게 들어보니 일단 그 사람의 경력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나와 일해봤다는 사실이 어느 정도 신뢰를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내가 배운 사실은 인맥을 통해서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 일단 많은 인력을 아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식 채용은 너무 많은 사람들이 지원하고, 그 안에서 팀에 맞는 사람을 찾아내는데 너무 많은 수고가 요구된다. 아주 체계적인 회사가 아니면 보통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은 팀이 실제로 필요한 사람을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다.


그런 시행착오를 거쳐 적임자를 찾아도, 그 사람이 마지막에 오퍼를 수락한다는 보장도 없다. 인맥을 통한 경우에는 소개해준 사람의 입장도 있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미 시작단계부터 어느 정도의 신뢰를 바탕으로 채용 과정이 진행된다.


또한 미국엔 상상 이상의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단계의 인터뷰를 통해서 뽑았다 해도 실제 팀에 들어왔을 때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인맥을 통해서 채용하는 경우, 소개해준 사람과의 친분 관계에 따라 그 사람의 인격이나 전 직장에서 팀원들과의 관계 등의 문제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마디로 인맥을 통한 채용은 하나의 보험 증서를 가지고 사람을 뽑는 것과 비슷하다. 소개해준 사람의 평판이나 인지도가 담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놓치는
정말 중요한 한 가지


내가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나는 부탁을 하는 입장보다는, 부탁을 받는 입장에 자주 서게 되었다. 누군가를 소개해 줄 수 있냐는 부탁부터, 인턴쉽 관련해서 연결해 달라는 부탁, 소개서나 추천서를 써달라는 부탁 등 주로 인맥 관련한 요청이 많다.


나는 수업 때도 졸업생들이나 학생들에게 도움 될만한 업계 관계자들을 최대한 많이 초청해서 학생들과 연결해 주려고 노력한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나도 이런저런 인맥으로 너무 여러 기회를 얻었기에 학생들에게도 가능한 많은 인맥을 쌓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렇게 누군가 초청한뒤 나는 바로 학생들에게 이메일을 써서 그들의 연락처를 알려주고, LinkedIn(비즈니스 전문 소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해 연결요청을 하라고 얘기해 준다.


그러면서 나는 어떻게 이메일을 써야 하고, 도움이 필요해서 연락할 경우 갖춰야 할 에티켓을 간단히 설명해 준다. 내가 여러 부탁을 받는 입장이 되면서 놀랬던 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필요할 때만' 연락한다는 사실이다. 언뜻 생각하면, 당연히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거 아닌가?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자기가 부탁을 하는 입장에서 내가 그 부탁을 들어주면, 그 뒤로 고맙다는 이메일조차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내 시간을 써서 실컷 도움이 되는 말을 적어서 보낸 뒤 답장이 없는 경우를 몇 번 경험하고 나니, 이렇게 무작정 연락 오는 상황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경력이 이 정도인 나도 벌써 선입견이 생기는데, 업계에 몇십 년 있던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부탁하고, 그들의 부탁으로 어떤 일이 성사되면 꼭 감사의 이메일을 보내라고 말한다. 기계적으로 '정말 감사합니다!'이렇게 쓸 수도 있지만, 이 일이 개인적으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 조금 더 인간적인 이메일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나에게 인맥이란 말은 상당히 비즈니스적인 느낌을 준다. 뭔가의 목적이 있고,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는 사이라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맥이란 말에도 '사람'이란 글자가 들어가 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사람과 사람이 하는 일이고, 그 안에는 마음이 들어가야 한다.


나는 인맥만을 쌓고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 누군가에게 다가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저 그들을 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했고, 특별히 부탁할 일이 없어도 정기적으로 그들의 안부를 묻고,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나의 안부를 전했다. 그렇게 천천히 관계를 이어가면, 어느샌가 그들의 마음속에 내가 자리 잡게 된다.


나에게 부탁하려고 다가온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정말 놀랍게도 나처럼 이런 관계형성을 위해 정성을 들인 경우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다. 그래서 이 소수의 인연들과는 좋은 친구가 되었고, 지금도 나는 어떤 좋은 기회가 있으면 그들을 먼저 떠올린다. 물론 그들도 이제 업계에서 자리를 잡아서 좋은 기회가 생기면 나에게 연락을 준다.


인맥이란 말에 너무 휩싸여서 그 관계를 이용하겠다는 마음보단, 나와 맺은 모든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책임감 있고 믿을 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야근 없는 디자이너의 삶, 미국에선 가능할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