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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17. 2024

영어 못하는 디자이너입니다. 미국 취업이 될까요?

다 하지 못한 대답들

답하기
어려운 질문


 미국에서 경력을 쌓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조언을 얻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게 된다. 그들의 질문이 구체적일수록 내가 도움이 될 대답을 주기도 쉬워진다. 하지만 "영어를 잘 못하는데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습니다. 가능할까요?"라는 류의 질문은 참 대답하기 곤란하다.


 여기서 '못하는'의 기준이 얼마나 못한다는 것인지가 관건이 된다. 모두 알다시피 우리가 배워온 영어는 리스닝, 스피킹, 리딩, 라이팅 이렇게 나뉠 수 있다. 질문자가 각 카테고리별로 1에서 10까지 점수를 매겨줬다면 아마 대답하기 그나마 수월했을 것 같다. 물론 나름 최선을 다해 대략적인 나의 경험을 담아 대답해 주었지만, 뭔가 확실히 도움을 주지 못한 것 같아 기분이 개운치 않았다.


그렇다면 정말 어느 정도 영어를 구사해야

미국에서 디자이너로서 인정받고 일할 수 있을까?


희망적인 관점


 오랜 기간 미국에서 공부하고 일해오면서 꽤 많은 디자이너들과 작업해 보았다. 전시 공간 디자인이라는 일의 특성상 그래픽 디자이너, UX디자이너, 모션 디자이너, 애니메이터, 건축 디자이너 등의 다양한 분야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주어진다. 그중 동양계 디자이너들이 꽤 큰 비율을 차지했고, 특히나 내가 주로 일했던 뉴욕에서는 팀의 절반이 동양계 디자이너인 경우도 흔했다.


 물론 여기서 동양계 디자이너라고 하면 영어를 기준으로 하면 둘로 나눌 수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동양계 디자이너들은 여기서 태어났거나 어릴 적 미국에 온 케이스다. 이들은 외모는 동양인이지만, 대부분 사고방식이나 문화적인 면에서 미국인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 물론 요즘은 자신의 뿌리를 자랑스러워하고 부모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진 경우도 많이 있다.


 두 번째 경우는 나와 같은 유학생 출신 동양계 디자이너들이다. 주로 대학교부터 미국에서 나온 경우 성인이 돼서 미국에 온 것이므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경우다. 사실 고등학교부터 유학을 시작했어도 한국 친구들과 주로 어울리면 영어에 그렇게 편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들의 경우 개인에 따라서 다양한 레벨의 악센트를 가지고 있고, 자신들의 모국어만큼 영어가 편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내가 겪은 한정된 경험으로만 이야기하자면, 직장에서 유학생 출신의 동양계 디자이너들을 훨씬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중 대부분이 여기서 디자인으로 학부를 나온 경우였고, 대학원만 미국에서 졸업하고 취업한 디자이너들도 꽤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완벽하지 못한 언어로 그 어렵다는 미국 회사에 취직해서 인정받고 일하고 있는 걸까?


영어,
얼마나 하세요?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리스닝, 스피킹, 리딩, 라이팅 중 어떤 게 가장 중요할까?


나는 주저 없이 리스닝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네 가지 중 어떤 하나도 너무 부족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디자이너로 일하려면 일단 영어로 들어오는 정보를 정확히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디자인을 하려면 프로젝트에 돌입하기 위한 정보가 충분히 있어야 하는데, 이는 이메일이나 서류로도 오지만 많은 경우 미팅에 들어가서 얻게 된다.


이때 수많은 사람들이 정신없이 떠들어가며 쏟아내는 정보를 제대로 캐치해내야 한다. 이 리스닝 실력은 특히나 처음 커리어를 시작하는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 주로 발언을 할 기회보다 팀의 필요한 부분을 서포트하는 역할이므로 리스닝실력이 중요하다.


그다음 중요한 부분을 꼽자면 스피킹이다. 금융이나 법률 등의 다른 분야로 가면 당연히 리딩과 라이팅이 아주 중요해진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작업은 비주얼적인 면이 크다는 특수성이 있다. 우리는 비주얼적인 요소들로 소통을 하므로 그만큼 방대한 양의 리딩을 요구하거나 라이팅으로 의사를 전달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클라이언트가 보내는 프로젝트 계획서를 이해할 정도의 독해 실력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나의 경험상 이 정도는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영어교육을 받았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라이팅은 연차가 올라갈수록 조금씩 중요해지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한 가지는 콘셉트작업을 이끄는 위치가 되면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 간단한 설명이나 글을 써야 하는 일이 많아진다. 또 하나는 장문의 이메일을 작성할 일이 많아지기 때문에 긴 글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쓰는 것이 중요해진다.


하지만 리딩이나 라이팅은 어느 정도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는 작업이므로, 그 속도가 조금 느려도 아주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두 번째로 꼽은 스피킹은 어떨까?


말을 잘한다는 건


사실 유학생 출신의 동양계 디자이너들과 일하면서 가장 극명하게 영어실력을 볼 수 있는 건 그들의 말하기 실력을 통해서다. 그들이 읽고, 쓰고 듣는 걸 빠르게 이해할 기회는 많이 없지만, 말은 그들과 5-10분만 대화해 봐도 그 실력이 쉽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내가 처음 미국에서 일하게 되었을 때는 나의 악센트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했다. 한국인 특유의 억양이 없이 말하는 게 영어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어색한 발음이 있으면 거기에 집중하고 어떤 단어를 잘못말해서 팀원들이 못 알아들었을 때 그 실수를 끝없이 되새겼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말 중요한 건 발음이나 억양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억양이 약할수록, 발음이 좋을수록 플러스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도 한국인을 하는 외국인이 너무 강한 억양으로 말하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것처럼 영어도 발음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미국엔 수많은 이민자들이 있고, 전 세계에서 유능한 인재들이 기회를 찾아 모이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어느 정도의 억양이나 특유의 발음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론 그걸 뒷받침해 줄 실력이 있다는 전제하에서지만 말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몇 명의 동양계 디자이너들은 스피킹면에서 많이 부족했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에서 스카우트를 받았다. 이들에게는 조금 부족한 영어실력을 채워줄 만한 포트폴리오가 있었고, 조금 느리더라도 자신의 디자인을 설명할 정도의 실력만 돼도 회사에서 충분히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장벽은
생각보다 낮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자신의 일을 문제없이 처리할 정도의 영어만 구사할 수 있다면 미국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그 정도는 자신이 맡은 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언어의 장벽이 생각보다 높지 않음을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분야에 익숙한 만큼 상황상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많고, 비주얼을 다루는 분야인 만큼 다른 전공보다는 확실히 더 낮은 잣대가 적용된다고 느낀다.


나에게 조언을 얻던 20대 디자이너가 이 글을 읽게 있다면 한번 더 말해주고 싶다.


디자인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한 번쯤은 큰 세상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영어라는 한 가지 때문에

그 꿈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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