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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24. 2024

미국 디자인 유학, 후회하나요?

유학생들의 현실에 대한 기사를 읽고

울며 돌아오는 유학생들?


수억 쓰며 공부했지만 취업에 실패해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많다는 내용의 기사가 여기저기서 보인다. 뉴스 앵커의 또박또박한 목소리로 들으면 마치 그 사태가 아주 심각한 듯 들린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많은 유학생들이 한국으로 돌아갔고, 미국 내에 있는 유학생의 숫자는 아직도 예전으로 회복하지 못한 상태이다. 거기에 미국의 자국민 보호 정책 때문에 비자받기까지 어려워졌으니, 이런 기사들이 과장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을 바탕으로 기사를 썼으므로 내 개인적인 경험보다는 정확할 것인데, 나는 왠지 기사에서 풍기는 뉘앙스에 동의하기 어렵다. 기사에는 어마어마한 돈을 쓰고, 결국 직업을 찾지 못해 실패자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의 모습을 그리게 만든다.


  그들이 미국에 온 목적이 오직 현지에서 취업을 하는 것이었다면 납득할 수 있겠다. 하지만 외국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며 공부한 경험을 중시해서 오는 사람은 없었을까? 원래 계획은 공부를 마치고 이곳에서 정착하는 것이었지만, 지내다 보니 계획을 바꾼 사람은 없었을까? 생각보다 문화적, 사회적인 이유로 미국이란 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꽤 많다.


  물론 한국에서 교육을 받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었겠지만, 취업이 아닌 다른 귀중한 경험들을 쌓고 돌아가는 이들도 많다. 특히나 한국 특유의 교육환경에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큰 가능성을 발견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주변을 돌아보니


  나는 미국에서 학부로 인테리어 디자인을 공부했고, 전시 공간 디자인으로 석사를 나왔다. 공부가 끝난 뒤 미국에서 디자이너로 일한 지 10년 이상되었고, 지금은 내가 졸업한 대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이런 경험 덕분에 정말 다양한 나라의 유학생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여정을 함께 했다. 아마도 이 글은 전체 유학생들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보단 디자인계통 유학생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다.


 그럼 나의 주변에 있는 유학생들의 상황을 살펴보자. 기사의 내용처럼 일부는 자기의 나라로 돌아갔고, 일부는 이곳에 정착해서 일하고 있다. 그럼 이 두 케이스의 비율은 대충 어떻게 될까? 나의 좁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면 20-30%의 유학생들이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럼 자신의 나라로 돌아간 학생들은

모두 유학생활을 후회하고 울며 돌아갔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현지에서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기로 결정한 사람 중에 유학을 왔음을 후회하는 사람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이곳에서 공부하며 느낀 다양한 경험 자체에 만족해했다.


 디자인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다양한 관점을 많이 접하는 것이 시야를 넓힐 수 있기 때문임이 클것이다. 또한 외국의 디자인 교육이 어떤지 궁금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장점과 단점이 존재하는 미국 디자인학교의 시스템을 겪어 본 사실만으로 만족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바로 잡고 싶은 사실 하나


 미국에서 정착하려면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신분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나서 내 나라에 살던 게 익숙하던 나에겐 미국에서 겪은 비자문제들은 참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분명 이 나라에 정당하게 돈을 내고 공부하러 왔는데, 학생비자를 가졌다는 자체로 뭔가 예비 범죄자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참 억울하고 불쾌했다. 나는 그 뒤로도 여러 종류의 비자를 거치고, 한국으로 귀국해야 할 위기를 몇 번 거치고야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었다.


이처럼 학교 졸업과 동시에 유학생들은 신분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큰 산에 맞닥뜨리게 된다. 다른 전공에선 대부분 취업비자인 H-1B에 도전해서 현지에서 일할 신분을 얻게 된다. 그 문이 너무 좁아져서 실력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사실이다.


하지만 디자인 쪽은 취업비자를 제외하고도 O-1이라고 부르는 특기자 비자를 신청할 수 있다. O비자라고도 불리며,  과학, 예술, 교육, 사업 그리고 체육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외국인의 미국 체류를 허가해 주는 비자이다.


실제로 내 주변의 지인들과 내가 가르친 학생들의 대부분이 모두 이 비자를 통해서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 유학생 관련 기사를 읽으면 가끔 정확하지 정보를 많이 보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O-1 비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물론 자신의 분야에서 특출 난 실력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하고, 자격 조건에도 '뛰어난 능력 (extraordinary ability)'를 가진 사람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평범하게 대학원을 졸업하고 어느 정도의 작업물 프로젝트 기록이 있는 나의 지인들은 모두 변호사와 함께 지원서를 준비해서 비자를 받았다. 당연히 모두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기사나 인터넷 댓글에 나온 내용처럼 어마어마한 유일무이 실력자가 아니어도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나 이제 막 대학원을 졸업해서 경력이 1-2년이 된 나의 학생들도 특기자 비자를 취득했고, 그 과정에서 내가 추천서를 써 주었기에 그들의 경력사항을 자세히 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후회하는가


남들처럼 집에서 넉넉한 경제적 지원을 받아서 유학온 케이스가 아닌 나는 포기하고 싶을 때 가끔 나 자신에게 묻곤 했다.


"대체 왜 이 먼 땅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는 거야?"


삶이 너무 고달파질 땐 사실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지친 몸과 마음에는 '디자인을 사랑해서'라는 대답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그땐 그저 버티는 게 답이라고 생각하며 보낸 시간이 더 길다. 그렇게 답을 모르면서도 이미 시작된 길을 아무 소득 없이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에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답을 모르고 버티던 시간이 지나,

최근에서야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았다.

내가 찾은 대답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서."


마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대사 같지만, 정말 사실이었다. 이 길고 긴 도전의 시간에서 내가 깨달은 건, 이 모든 과정이 나라는 사람을 더 잘 알기 위해서였다는 점이다.


 그리고 내가 인생의 저점과 고점을 어지럽게 오가면서 배우게 된 '나'라는 사람은 도전해 보지 않았다면, 100% 후회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있었다면 이곳에서 겪은 시간보다는 편한 인생을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가보지 않은 길을 궁금해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만약 그때 도전해 봤다면 어땠을지를 떠올리며, 부러움에 다른 이들의 인생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하고 싶지 않은 고생길이었지만,

그 덕분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는 보상이 주어진 것이다.


나에겐 이 자체로도 충분하다.


이런 나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나는 조건이 주어진다면 디자인 공부를 하러 외국으로 나가는걸 적극 찬성한다. 나 자신을 전혀 다른 상황에 떨어트리면, 스스로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인생에 한 번쯤은 이런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너무 소중한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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