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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은 디자이너 Mar 29. 2024

미국 동료들을 영어로 이길순 없다.

역시 중요한 본질은 따로 있다.

말발은
타고나는 것인가


 나는 어릴 적부터 말을 잘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갑작스러운 발표에도 당황하지 않고, 조리 있고 자신감 있게 대처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저 신기하고 궁금했다.


'말발'이라는 것,

왜 나에겐 없고

그들에겐 있는 걸까?


 살다 보니 나에게도 언어능력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다만 나의 방식은 시간이 더 필요할 뿐이었다.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생각을 정리해서 논리적으로 내뱉는 것에는 약하지만, 생각의 과정을 거친 뒤 의견을 나누거나 글로 표현하는 것에는 훨씬 편안함을 느꼈다.


  그렇게 한국에서도 소수의 말발 좋은 사람들을 보며 기가 빨렸는데, 미국에 와보니 이들은 더 이상 소수의 집단이 아니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은 어려서부터 토론이 교육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다. 또한 많은 이들이 집에서도 부모님과 토론 같은 대화를 많이 하며 자라서 인지, 미팅이나 수업 도중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거기에 미국인 특유의 자신감까지 얹어지면 속된 말로 쥐뿔도 없는데 엄청 있어 보이게 말하는 기술은 정말 놀라운 수준이다.


그래서 핵심이 뭐야?


 LA에 있는 마케팅 에이젼시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일단 마케팅이란 분야는 즉흥적 말발의 대가들이 모인 세상이다. 마케팅이란 것이 결국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고, 자신의 상품을 팔아야 하는 일인지라 여러 방식으로 남을 설득하는데 능통한 이들이 모여있다.


 그래도 비주얼적인 요소로 소통하는 디자인팀은 이런 말발 전쟁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평화도 잠시, 나와 함께 일하게 된 아트 디렉터가 들어오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이 동료는 나보다 경력이 짧았지만,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으며 내가 듣기에도 웬만한 마케팅 전문가, 아니 말발 좋은 변호사도 말로 이길 기세였다.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나는 이 동료와 미팅에 들어가면 항상 마음속으로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에 비해 이 동료는 즉흥적으로 시원시원하게 아이디어를 쏟아내며 미팅을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 동료의 아이디어에 깊이가 없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회의 중에는 그럴듯하게 말을 잘하니 디자이너가 아닌 다른 팀원들은 뭔가 대단한 아이디어가 나왔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보통 이 동료의 아이디어로 한번 방향을 잡아보자는 결론을 내리고 미팅이 끝난다. 그러면 나는 이 동료에게 다가가 회의 때 말한 아이디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부분을 물어본다. 결국 이 아이디어를 더 구체적으로 구상해야 하는 건 나의 몫이기에 구체적인 사항을 물어보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그 안에 알맹이가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 동료는 내 앞에서도 화려한 언변으로 두리뭉실 넘어가려고 하지만, 나는 실무자로서 다른 팀원들처럼 대충 넘어갈 수가 없다.


 이런 과정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이 친구의 아이디어나 생각은 접시물에 담긴 물처럼 얄팍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일단 있어 보이게 회의에서 발표를 하고, 그 뒤처리는 나를 비롯한 다른 동료들이 처리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래도 말발도 미국에선 하나의 능력이니 어찌하겠는가. 나는 결국 그 동료의 공으로 돌아갈 것을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해 그 접시물에 담긴 아이디로 에 깊이를 입혔다.


누군가는
알고 있다


 그렇게 말발 좋은 동료의 뒤처리를 하던 날들이 한동안 이어졌다. 지금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했겠지만, 그땐 아직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 언제나 나에겐 큰 결점으로 느껴졌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잘하자라는 생각으로 지내던 어느 날 신기한 일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말발 좋은 동료들에게 기를 빨리고 있었다. 이 공허한 말들 중에 어떤 것이 다시 나의 몫으로 떨어질까, 나의 영혼은 공중에 뜬 생각구름을 타고 미팅실 안을 배회하는 중이었다.


"XX 이는 어떻게 생각해?"


 평소 미팅에 자주 들어오지도 않는 서열로 치면 한참 높은 상사가 나를 향해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가. 잠시 멍하게 있던 나는 너무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혹시 영혼 없는 나의 멍한 표정을 읽은 것인지, 순간 움찔했다. 다행히도 그는 실제적으로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키는 건 언제나 내가 맡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런 나의 의견이 궁금해서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큰 의미를 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의 노고를 알아주는 것 같아 그 말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이후 경력이 쌓이며 알게 되었다. 이 업계에서 짬밥이 많은 사람들은 다 눈치채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누가 알맹이 없는 아이디어를 말발로 포장해서 내놓는 건지, 누가 깊이 있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걸 구체적으로 구상하는지 말이다. 이때부터 사고의 전환이 일어났다. 영어 그 자체에 집중해서 화려한 말발을 가지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원어민처럼 말하지 않아도 차라리 그 안에 담긴 생각자체의 깊이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언어의 본질


 디자인은 글과 많이 닮아있다.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긴 생각의 회로를 거쳐야 진정한 글이 나오듯, 좋은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주 수려한 언변을 자랑하진 않는다.(물론 예외는 있다)


언어라는 것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결국 우리에게 영어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아무리 전달 수단이 화려해도 그 안의 내용물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나에겐 이 생각의 전환이 큰 도움이 되었고, 이것은 놀라울 정도로 나를 영어의 압박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지금 누군가 영어라는 언어 때문에 큰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면, 생각을 전환해 보자. 그리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알맹이에 더 집중해 보자. 화려한 말발사이에서 당신의 생각의 깊이를 발견해 줄 사람은 언제나 존재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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