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13주 차, 과연 끝은 오는가?

나는 어쩌면 변화 그 한가운데 서있나 보다.

by 지금은 디자이너


이렇게 텅 빈 타임스퀘어라니, 정말 흔치 않은 모습이다.






3월 중순이 안된 어느 날, 오전 11시쯤이던가. 근무 중에 다급하게 모두 집으로 가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분명히 그 전날까지만 해도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는 재택근무 안 한다더니, 이게 무슨 일이지? 어디선가 들리는 말로는 어느 팀의 누구의 와이프가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몇몇이 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Well, see you guys in a week!"


재기 발랄하게(이땐 그저 점심시간도 안됐는데 퇴근하는 게 기뻤다) 팀원들에게 인사하고 회사를 나온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재택근무 몇 주 차인지 세기도 지친다. 대략 12주 차였나, 아니 13주인 것 같다.


처음 1주일은 그냥 어벙 벙하며 흐르고, 그다음 2-3주는 팀원들과 모두 함께 집단 멘붕에 빠졌었다.

4주 차가 되면서 현실 파악 단계에 이르렀다. 이거 금방 끝날 일이 아닌데?






뉴욕을 강타한 바이러스보다 더 큰 두려움이란 존재


초반에는 불안감에 생전 없던 불면증에 시달렸다. 우리 집 근처에 종합병원이 있어서인지 밤새 엠뷸런스 소리가 끊이지가 않는다. 초반에 매일 뉴스를 모니터 하며 오늘은 뉴욕에서 몇 명이나 사망자가 나왔나, 다 확인하고 나면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이렇게 뉴스 기사를 다 보고 나면 마치 온 세상이 바이러스로 점령당하는 건 아닐까, 인류는 정말 이대로 종말 하는 것인가, 그동안 봤던 각종 SF 시나리오를 짬뽕시켜 스스로 불안감을 극대화시켰다.


이런 생활을 며칠 하니 정상적인 사람도 이렇게 살다 신경쇠약에 걸리는 거지 싶다. 모든 게 생각하기 나름이라고 다시 상황을 바라보니 나에게 외출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자유는 사라졌지만 그동안 그렇게 갈망하던 '시간'이라는 게 이렇게나 많이 주어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이른 새벽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강아지와 함께 나가 걷기 시작했다. 원래도 좋아하던 곳이지만 지나가는 사람 없이 그렇게 고요히 시간에 쫓기지 않고 바라본 공원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슬기로운 격리생활의 시작이 된 바로 이곳.

우리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브루클린에서 가장 큰 공원 Prospect Park의 한 호수 앞이다. 맨해튼의 Central Park보단 작지만 걸어서 공원 전체를 돌아보니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꽤 큰 공원이다. 이렇게 잔잔한 물가 앞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던 어느 날, 갑자기 감정이 복받쳤다. 왜 그랬을까. 세상은 너무 어지럽고 공포에 휩싸여있는데 정작 자연은 너무나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이렇게 모든 걸 품어주는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낱 나약한 인간일 뿐이구나. 나는 무얼 위해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왔을까?


바이러스 확진자가 끝을 모르고 폭발적으로 늘어가던 그 날에도, 시체를 보관하는 냉동트럭에 조차 다 실리지 못한 시체들이 거리 여기저기 방치되던 그 날에도, 매일 이렇게 태양은 떠오르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In every walk in nature,

one receives far more than he seeks"


By John Moir



이렇게 고요한 물 위 풍경을 바라보니 누군가 마구 휘저어서 뿌옇게만 보였던 내 마음속 찌꺼기도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자연 속의 치유인가. 내 마음속 고요가 생기니 눈에 보이지 않던 자연이 먼저 들어왔고, 매일 그 자리에서 나를 반겨주는 자연에 대한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고요해진 마음으로 나는 위기라고 하면 위기일 수 있는 이 자가격리 시간을 슬기롭게 잘 보내보리라 다짐했다. 자가격리 13주 차, 나는 책과 글쓰기 그리고 소통을 통해 또 다른 나로 성장하고 있다.




모든 게 멈춰버린 뉴욕에서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저의 이야기를 연재해볼까 합니다. 모든 것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달라지듯 자가격리도 달리 보니 제 인생에 다시없을 성장의 기회로 보이더군요. 담백하고 솔직한 뉴요커의 슬기로운 격리생활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의 성장도 한 번쯤 생각해볼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