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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생 May 13. 2020

기다림에 대해

200512


맛집에서 번호표를 받고 놀이공원에서 구비구비 줄을 서고 하는 일을 나는 싫어한다. 약속시간이 미뤄져서 사이에 갑작스럽게  시간이 생기는 일도 싫어한다. 나는 그간 기다림의 시간과 어찌해야  바를 모르는 공백을 견디지 않으면서 적극적으로 회피했다. 그런 내게 올지  올지 모르는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지금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배워보는 기다림의 자세를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몇가지 자문을 구했다 주변 사람에게. 기다린다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약자가 되는 감각을 버틸 수가 없다고 너무 불안하다고 말하는 내게 동양철학을 공부하는 지형은  그렇듯 속편하게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멋진 말을 하기 전에 으레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듯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 약자와 강자의 문제가 아니야 대인과 소인의 문제지. 아마 대인이란 기꺼이 약자가 되어야  때는 약자가 되는 사람이란다. 부러지지 않기 위해 꿋꿋이 버티는 사람이 아니라  흔드는 바람에 있는 그대로 흔들려 주기. 흔들려도 갈대가 갈대가 아닌  되는  아니니까 늘어났다 줄어들어도 고무줄이 고무줄이 아니게 되는  아니니까,  안의 복원력을 믿고 흔들리면서 기다리란다. 고개를 끄덕였다. 삶은 실험의 연속이니까 나는 이제 내가 견딜  있는 고통의 임계치를 실험해본다. 실험이 실패하더라도 좋은 글감은 나올 거야 그게 위로라면 위로다. 


소담 언니는 맨날 칙칙한 옷만 입고 다니지 말라고 내게 화사한 스카프를 둘러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기다림은 평생보다  길게 기다려야 한다고. 내가 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글쎄) 내심 언니는 평소보다 내게 다정했다. 다정한 말투 치고 언니가  말은 내게 아득하기만 해서 나는 눈물이  돌았다. 윤하에게 기대서 팔짱을 거니 걔는  손을 잡아주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원래 모든 기다림은 평생 이러고 있어도 되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거라고. 아,  주위의 도사님들. 


나는 집에 와서 아마  작정이었던  같은데 지원이는 남자 때문에 우는 미친년은 되지 말자,  빅스비 같이 명쾌하게 말해줬다.  나는 말을  들으니까 집에 와서 수면제를 먹고 곧장 잤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역시  막막했는데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담배를 피니까  괜찮아졌다. 어제  사람  사람한테 응석을 많이 부리면서 생각한 건데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처음부터 걔를 기다리고 싶었던 거다 막막했을 뿐. 평생을 각오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직까진 기다림을 이어나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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