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 교직원일기 2
임신을 알게 된 것은 2월 경이었다.
평소보다 2킬로 정도가 늘었고, 유난히도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해 남편과 둘이
'혹시...임신 아니야? 사실 이거 내 살 아니고 아기인거 아니야?' 이러면서 깔깔대고 웃었는데,
그게 진짜였다.
그렇게 아기는 내 배가 빵빵했던 탓에 빵빵이라는 태명을 갖게 되었다.
2월에 임신을 알고, 회사에는 심장소리를 듣고 난 후인 임신 6주차에 알렸다. 혹시라도 심장이 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겁을 주변에서 주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아기의 심장은 힘차게 뛰었고, 병원에 가서 심장소리를 확인하고 출근한 날 팀장님께 임신 소식을 알렸다. 팀장님은 예상하고 계셨다며(이런 코로나 시국에 병원에 들렀다 올 일이 무엇이 있겠냐며) 생각보다 더 축하하고 축복해주셨다.
임신 소식은 곧 팀원들에게도 알려졌고 모두가 따뜻한 축하를 건네주었다.
하지만 이내 입덧의 시작과 함께 이게 정말 축하받을만한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정확히 6주부터 시작된 메슥거림은 아침 공복 때가 가장 심했지만, 무엇을 먹어도, 먹지 않아도 하루종일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건너는 기분이었다. 음식 냄새가 풍길 때만 '우웩' 하며 구역질이 나는 게 입덧인줄 알았는데...눈을 떠서 잠이 들때까지 어지럽고 속이 좋지 않고 온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말로 일상생활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다.
빈속이면 빈속이라 더 울렁거려서 뭔가를 먹기는 먹어야겠고, 속이 안좋아서 먹고싶은 것도 없고, 간혹 먹고싶은 게 생각나더라도 몇 입 먹고나면 금새 쳐다도보기 싫었다.
이렇게 몸이 힘들 동안에 코로나가 심해져 재택근무가 시작되었다. 재택근무라서 그나마 출퇴근 지하철과 버스를 피할 수 있었기에 다행이었지만, 일주일에 한 두번 회사로 출근하는 날에는 버스로 지하철역까지 가는 십분이 지옥과도 같았다. 임산부 뱃지 같은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한번은 퇴근길에 지하철을 탔는데, 임산부 배려석은 이미 누군가가 앉아있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고 했던가. 보통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양보를 해주지 않는 사람들은 젊은 여자들이었다. 아마도 임신과 출산을 경험해보지 않은 이들일 것이다. 그날도 여느때와 같이 내 뱃지를 보고도 본척만척, 잠이 든척 그렇게 모두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로 흔들리는 지하철에 서 있으니 현기증이 나고 토할 것 같았다. 그보다도 내 몸이 이렇게 아파서 앉지 않으면 너무나도 힘든 이 상황이 견디기 힘들었다. 그때 임산부 배려석 옆옆 자리에 앉아있던 한 젊은 여성분이 나를 보고 자리를 양보해주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마자 펑펑 울었다. 아마도 자리를 양보해주신 분은 당황했을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 보았다. 나는 임신과 동시에 이 사회에서 누구도 원하지 않고 가장 쓸모 없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생겨서, 배도 안나온 주제에, 임신했다고 뱃지를 달고 지하철에서 자리나 축내는 사람. 보고도 본것으로 하지 않고 싶은 사람. 이 모든 것이 나의 의지가 아닌데,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이 무력한 몸뚱아리가 원망스럽고 화가 났다.
재택근무를 하는 날에는 하루종일 집에 박혀서 우울한 상상을 했다. 이 세상이 나만 빼고 너무나 잘 돌아가는 것 같아서 무서웠다. 돌이켜보니 나는 임신 전에 약 10년간 한번도 집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있어본 적이 없었다.
길고 지난한 시간들이 지났다. 드디어 임신 12주, 이내 16주. 두달 정도 힘들고 나니 드디어 속이 좀 가라 앉고 기운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운이 생기자 우울함과 무력감도 덜해졌다. 그 때쯤에는 초음파로 아기의 얼굴도 양 손, 발도 확인할 수 있었고 드디어 내가 엄마가 되는구나 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정상적으로 먹을 수 있어지자 체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지만, 그래서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점점 불어가는 몸을 보며 잠깐 우울하기도 했지만, 괜찮아졌다. 20주쯤 되자 태동도 느껴지기 시작했다. 뱃속에서 '나 여기있어요'하고 신호를 보내줄 때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재택근무는 임신 12주 정도에 끝나서 매일 출퇴근을 했지만 드디어 컨디션이 돌아와서 출퇴근이 전처럼 힘들지 않았다.
16주 이후부터 배가 급격히 나오기 시작했고, 지하철에서도 고마운 분들이 임신했음을 알아보고 자리를 양보해주셔서 속으로 열번씩 감사드렸다. 복받으시라고, 좋은 일 생기시라고 기원해드렸다.
그리고 몸이 기운을 좀 차리고 나자 육아휴직 기간에 대해 고민해보게 되었다. 우리 학교는 일반 기업과 같이 1년의 육아휴직과 90일의 출산휴가를 쓸 수 있다. 원래 계획은 최대한 짧게 쉬고 바로 복직해서 일하는 것이었다. 집에서 집안일하는 것보단 회사에 나와서 일하는 게 훨씬 더 좋기 때문에 한번도 육아휴직을 길게 쓸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들은 육아 선배님들이 하나같이 '왜 그렇게 짧게 쉬어? 1년은 쉬어야 돼!'라고 하여 고민이 시작되었다.
과연 나는 애를 낳고, 갓 5-6개월 된 이 애를 누구한테 맡기고 출근하는 게 나을까?
만약 친정엄마나 시어머니 중 한분이 애를 봐주시겠노라고 했다면 분명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매정한 친정엄마와, 아직 일하고 계신 시어머니께 손을 벌리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그 두분 중 한분에게 맡기더라도 출근해서 일하고 퇴근해서 육아하면서 오히려 더 스트레스가 클 것이라는 선배님들의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박봉에, 출근해서 일하면서 이모님 비용은 따로 들어가고, 퇴근하고 또 애보느라 힘들고 그렇게 어린이집 갈 때까지 버티느니 차라리 육아휴직을 좀 더 길게 하자, 결론을 내렸다.
복직 후에 다시 일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내가 집에서 애만 볼 수 있을까도 소름 끼쳤지만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정을 내리고 최대한 빨리 회사에 알렸다. 육아휴직을 원래 계획보다 길게 쓸 것 같다고. 빨리 알리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위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고민을 했는지와 상관없이 그와 동시에 내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래 쉰다고 하니 쉬어서 좋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그저 웃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나 자신을 희생하며 하기로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는 이 곳에 필요 없는, 애 낳은 김에 오래도록 쉬고 싶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러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내가 임신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
임신을 하고 출산을 앞둔 나는 죄인이고 나쁜 사람인가?
모두에게 민폐만 끼치는 존재인가? 여자로 태어난 것이 잘못인 것일까?
내 뱃속의 아이는 딸이다. 이 아이도 나중에 커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그저 미안할 따름이다.
직장인으로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한다는 것, 더 나아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미안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면 차라리 직장인은 임신도 출산도 육아도 하면 안된다는 법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