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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리달 Dec 24. 2019

교직원일기4: 졸업사정

바야흐로 때가 되었다.

2학기가 끝나고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방학이 시작되었으니 교직원들도 팽팽 놀겠지, 라는 기대와는 달리 겨울방학은 교직원들에게는 꽤 잔인한 기간이다. 드디어 졸업사정을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그나마 교직원이 여전히 '신의 직장'으로 불릴 수 있는 이유는 방학 중 단축근무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요즘처럼 박봉을 받고 일한다면, 그나마 방학중 한달여간 실시하는 단축근무만이 유일한 숨쉴 구멍인데, 사실 겨울방학에는 그마저도 편히 즐기기가 힘들다.


방학 때 대체 학교에 무슨 할일이 있냐, 고 묻는다면 정말 할 말이 많다.


일단 새로 입학하는 신입생들과, 입학하고 싶은 수험생들의 전화 문의가 시작된다. 물론 보통은 입학처에 문의하겠지만, 간혹 입학전부터 학과에서는 무엇을 배우게 되고 어떻게 생활하게 되는지, 나아가서 진로는 어떻게 되는지가 궁금하신 분들이 마음 급하게 사무실로 전화를 하곤 한다. 


재학생들은 장학금과, 학기 중에 묻지 못했던 여러 학사관련 질문들을 쏟아낸다. 혹은 방학 중 인턴쉽이나 여러 대외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각종 증명서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다음학기 과목개설 업무는 계속 진행중이고, 다음학기에 발행될 편람과 요람 작업도 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월이 되고, 1월이면 드디어 공포의 졸업사정이 시작된다.


방학때부터, 혹은 2학기 말부터는 자신이 졸업할 수 있는지 봐달라고 찾아오거나 전화하는 학생들의 문의가 쇄도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행정팀에서는 이 부분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행정팀도 사람인지라 그 학생의 예비졸업사정표를 보고 들어야 할 것들을 다 들었는지 체크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졸업사정 때야 두번, 세번 보면서 체크한 뒤에 또 학사팀에서 체크를 해야만 통과가 되기 때문에 실수로 졸업을 시킨다거나 졸업을 못시키는 일은 없지만, 바쁜 일과 중에 학생들이 자신의 수강내역을 들고 찾아와 제가 졸업할 수 있는지 봐주세요 했을 때 무책임하게 졸업할 수 있다, 없다를 말하기는 꽤 어려운 일이다. 


우리 대학의 기본적인 골조는 졸업 예비사정은 학생들의 책임이므로 본인이 알아서 졸업요건과 비교하여 체크하라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불만이 있는 학생들도 많을 것이다. 내가 졸업할 수 있는지 없는지 왜 안알려주냐, 이것인데. 물론 처음에는 친절히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졸업할 수 있다. 한 과목만 더 들어라. 그런데 막상 졸업사정을 해보면, 이 학생은 한 과목만 더 들으면 안되고 두 과목이 더 필요한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복수전공생이어서 우리 전공인줄 알았던 과목이 복수전공으로 카운트되어야만 할 때. 알고보니 어떤 과목을 재수강했거나 철회했는데 그게 수강내역에 포함되어 있었을 때, 등등. 이런 경우가 생기면 학생들은 무조건 행정팀을 탓하기 시작한다. 그때 사무실에서 된다고 했는데요. 여기 있던 사람이 된다고 했는데 왜 이제는 안된다고 하는거죠? 

그래서 이제는 모두 해주지 않기로 했다. 졸업예비사정은 학생 본인의 책임이니 꼼꼼히 해보시고 모르는 부분은 질문해주세요. 


그런데 이 졸업사정이라는 것이 요즘같은 시대에 컴퓨터 시스템으로 하는 거 아니냐고 묻고 싶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 모든 작업은 수기로 이루어진다. 졸업요건표와 졸업사정표를 옆에 두고 형광펜 뚜껑을 연다. 형광펜으로 요건별로 들었는지 하나하나 줄을 그어가며, 계산기로 12더하기 6더하기 9...그래서 모자란 것이 있으면 무엇이 모자라서 졸업이 안되다고 쓰고, 전공인데 교양 카테고리에 들어가있는 과목이 있으면 화살표로 전공으로 옮겨주기도 하고, 그래서 전공 학점 총 몇학점을 들었다 써주고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써주는 것이다. 


왜 시스템이 없는지, 나도 묻고 싶다. 아마도 학과과목개설의 복잡성 때문일텐데, 졸업요건이 학번에 따라 바뀌기도 하고, 어떤 과목은 전공이었다가 전공이 아니게 되기도 하고 전공 과목이 안열리면 대체과목이 지정되기도 하는 등 학교의 특성상 여러 변수들 때문에 이 모든 변수들을 시스템화하기가 어려워서 일 것이다. 


나는 지난 겨울에 이 졸업사정을 약 200명가까이 했고(우리 학생 수만 따지면 100명 조금 넘지만, 복수전공생들과 부전공생들까지 합치면 200명도 넘는다) 이번 겨울에도 이정도의 졸업사정을 할 예정이다. 


약 한달의 단축근무 중 2주는 이렇게 졸업사정을 하느라고 제대로 써보지도 못한채 사라질 것이다. 

양이 많기도 하지만, 그 중 문제가 있는 학생들이 있으면 일일이 전화를 돌려 졸업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알면서도 졸업을 신청한 경우, 네 안되는 거 알아요 하면 그냥 깜짝 놀란 자라가슴 진정시키면 되지만 '제가 졸업이 안된다구요? 왜죠? 행정팀에서 된다고 했는데요? 저 취업했는데 졸업이 안되면 어쩌라는거죠?' 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골치가 아파진다. 왜 본인이 본인의 졸업요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것을 학교 탓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학교는 학생들이 졸업을 안해서 앞으로도 계속 등록금을 내길 원하지 않는다. 제발 졸업 시키고 싶다.

그렇게 극한 졸업사정이 끝나면 졸업식과 다음학기 준비로 바빠질 것이다. 이렇게 이번 겨울방학도 안녕.


교직원을 장래 직업으로 생각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있다면, 자신의 졸업요건은 자신이 알아서 잘 챙기자!

분명 졸업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졸업을 할 수 없다고 해서 행정팀에 화내거나 무리하게 조르지 말자.

매 졸업시즌이면 각종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데, 저도 정말 졸업시켜드리고 싶거든요!!!!!


제발 이번 졸업신청자들은 한명도 낙오 없이 모두 졸업할 수 있기를!


메리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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