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떠나보내며
친구를 잃어가는 어른이들에게 바치는 글
미나리.
나에게 미나리란 그저 채소 중 한 종류가 아니라 부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중한 존재였지.
네 덕분에 부산은 내 마음 속에서 특별한 장소가 되었고, 언제라도 놀러가고 싶은 곳 중 한 곳이었어. 물론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가지는 못했지만.
시간이 참 빠르다.
우리가 만난지 벌써 10년도 넘었고, 지금보다 더 어릴때 우리는 지금보다 더 가까웠어. 서로의 안좋은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이 보였고, 같이 숨만 쉬어도 웃음이 터졌고, 오랜만에 봐도 어색하지 않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였고, 자주 전화 통화를 했어. 내가 영국에 있을 때 너는 캐나다에 있어서 나는 영국의 밤하늘을, 너는 캐나다의 하늘을 보며 통화도 하곤 했지. 그 때 너는 밤하늘의 별 중 하나였어.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대학원을 가고, 밤낮으로 일을 여러개 하며 바빠지면서였을까.
아니면 너희 어머니께서 많이 아프시고, 네가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짊어지면서부터였을까.
그 어느께부터, 너는 그전보다 더 똑부러지게 변했고 더 강해졌어. 나는 그런 너의 모습이 점점 낯설어졌던 것 같아. 이전에는 다정한 말만 해주던 네가 나에게 가슴 아픈 말도 하기 시작했으니까.
너를 탓하는 게 아니고, 원망하는 것도 아니야. 내 관점에서 봤던 너를 되새기는 것 뿐.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그리고 너도 원하던 직장에 들어가고, 나도 자리를 잡아 바빠지면서부터 우리는 걷잡을 수 없게 되었던 것 같아. 우리의 지향이나 삶의 방향이 달라졌고, 난 너를 이해하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네가 어려워졌어. 더이상 내가 잘 알던 그 어린 미나리가 아니었어. 내가 더이상 어리고 더 잘 웃고 더 잘 공감해주던 내가 아니듯이.
그래서 미나리. 이제는 네가 떠난 자리를 보며 새삼 우리가 나이들었구나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기특해. 그 힘들고 지난한 시간을 견뎌 험난한 길을 돌고 돌아 여기에 왔잖니. 강해진 너도, 강해진 나도 참 이제까지 열심히 잘 살았구나. 그동안 너에게 더 잘해주었더라면 덜 아쉬웠을텐데. 우리는 각자의 지평을 넓혀가느라 바빴네.
어렸을 때, 아니 불과 일이년전만 해도 우리가 평생 함께 늙어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른들을 보면 왜 어릴적 친구가 없을까 의아했는데. 이제 우리도 그런 어른 중 하나가 되었네.
그동안 즐거운 시간을 함께해주어 고마워.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주어서 고마워.
앞으로도 어디서든 멋지게 빛나는 네가 되길 바라며.
2019년 겨울 끝자락에, 너의 친구 율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