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미쟤씨 Mar 22. 2022

지속 가능한 가치

내 언어를 가지기 위한 힘은 결국 자꾸 기록하는 일이다.

기록이라는 의미를 정말 오랜만에 곱씹었다. 흘려보내야 견뎌지는 단순한 일상을 살며 의식적으로 기록하는 일을 잊어왔기 때문이다. 당혹스럽게도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어낸 이후에는 정작 오늘을 어떻게 살아낼지 몰라 흘려버리고 만다. 물리적으로  돌아다니지 못하는 체력이 되면서 생활반경이 작아졌고 흔히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그리 좋아하던 먹는 , 덕질,  어떤 일에도 감흥이 없어졌고, 한참이 지나 기록점점 부재해 감을 뒤늦게야 일상의 버석거림으로 확인할  있었다. 그러다 정말 오랜만에  메모장을 들여다봤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아주 드문드문한 메모들이 있었다. 강의에서 인상적인 내용을 적거나, 인물 혹은 의미를 잇는 기획 아이디어, 암판정 직후 가장 의욕적이었을 때의 생각들, 메모를 적는  때에는 조금  적극적이었던 팬덤문화에 대한 개똥철학, 처음 대학병원에 입원해서 겪은 낯선 경험, 심지어  전엔 그닥 관심도 없었던  사주 풀이에 대해서.


살아낼 수록 혼돈의 시대이다.

야만의 논리가 혐오로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나는 꽤나 소수의견이며, 동시에 특권 또한 가지고 있고, 오만하며 무지하고 무력하다. 그런 나는 다른 약자들의 현실에 마음 아파하며 동시에 내 이야기가 공감과 의미와 힘이 될 수 있을지 불안해하는 이기적이고 유약한 마음에 파묻혀 있었던 것이다. 모순적이게도 그 억울함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버둥거리느라 힘을 잃어갔다. 그 와중에 새삼 메모장의 기록들 속 나약하지만 힘이 있었던 나를 발견했다. 그 기록 안의 언어의 강력함을 느낀다. 내가 나의 언어를 갖는다는 것의 강력함 말이다. 기록 속 어설프고 어리석은 말들은 아직 내 것이 되지 못한 채 반복되어 왔다. 그럼에도 나는, 성기게 쌓인 기록을 통해 나를 다시금 확인했다. 그렇기에 나는 결국 무엇이든 말하고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지속 가능한 힘은 결국 나를 어떤 수단이든 언어화하고 기록하는 일이라는걸 결국 알기 때문이다.


*릴레이 글쓰기에 참가해 ‘기록’이라는 소재의 미션을 받아 쓴 에세이 글이다.
작가의 이전글 암밍아웃이라는 말의 불편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