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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미쟤씨 Nov 17. 2022

‘동네생활탐험가’가 뭔가요

아픈몸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다시 탐험하기

저는 말기 암환자입니다. 아픈몸이 되면 나의 생활반경도, 패턴도, 공간에 대한 모든 것이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격리를 겪고 다시금 생활반경에 변화들을 각자 겪으셨겠지만 질병은 이렇듯 생각보다 공간과 사람간의 관계의 개념을 바꿔놓기도 합니다.


저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성북의 정릉이라는 동네에 20년을 넘게 거주했습니다. 길음뉴타운이라는 곳이 지정되기 전에 이사를 왔고, 초등학교 6학년 때 전학와 초등학교는 한학기만 이 동네에서 다니고 졸업했고, 중고등학교는 공동학군인 종로에 위치해 있어 동네보다는 조금 확장된 삶의 패턴을 살았던 것 같아요. 아파트에 거주했고 주로 주변 길음시장 외에는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을 이용해 나가는게패턴이다보니 정작 제가 사응 동네 구석구석을 잘 알지는 못했던 생활반경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각자가 거주하는 곳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가장 중요한 주거비를 비롯해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나 학교와 다니기 밀접한 곳, 내가 원래부터 오랫동안 거주했던 토박이… 저는 정릉이라는 동네는 오래된 동네이지만 세련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동네 마트에는 제가 찾는 외국산 소스나 식자재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마음 편히 작업할 동네 카페가 생긴 것도 불과 얼마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문화예술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다보니 주로 활동지는 망원같은 마포나 서대문 인근이었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홍대씬이나 새로운 마을공동체, 사회적경제 등의 실험적 경험은 정작 제가 사는 곳이 아닌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성북이라는 곳은 청년들 뿐만 아니라 예술인, 마을활동같이 거버넌스 사업이 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건너건너 역사를 자랑하는 정릉 개울장 등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정작 직접 경험하고 체감하지는 못한 셈이지요.


그러던 제게 2018년 암진단 이후 생활패턴은 많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다행이 집과 멀지 않은 병원 덕에 다행이 오고가는 길의 고생은 줄었지만, 코로나시대를 맞이하고 저 또한 아픈몸으로 집 밖을 잘 나갈 수 없자 동네친구에 대한 관계의 갈망이 커지기도 했고요.


좋은 기회로 2020년 성북청년시민회 라는 곳에서 암환자이자 성평등활동가로서 다시 일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본격적으로 시민회의 청년 사업들과 성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사는 성북 안에서 특히 여러 사업들 중에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 는 서울의 다른 구에서도 활발하게 정책을 제안하고 있는 활동을 하지만 성북은 특히 권역별로 모임이 나눠져 정말 동네 친구를 만나고 고민할 수 있는 모임이 되곤 하거든요.


올해는 암환자인 제 몸상태가 더 나빠지면서 빈혈과 저혈압이 심해 조금만 걸어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상태로 지내게 되었고, 당연히 생활반경은 더욱 좁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작년에 이어 시민회에서 ‘동네생활탐험가’를 선발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고민을 하다가 지원하게 되었고 저의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해 제가 살고 있는 정릉의 복합문화공간인 ‘차라리낭만’을 운영하는 ‘아트버스킹’ 이라는 곳과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제가 문화예술기획자이기도 했고, 이번 기회로 내 집에서 걸어서 십분 반경인 이 곳을 거점삼아 동네를 다시 한번 면밀히 탐험해봐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동시에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회적 돌봄’에 대한 논의나 노인 유아뿐 아니라 누구나 돌봄이 필요하기에 청년들 특히 원가족을 벗어난 돌봄에 대한 논의를 동네사람들과 나누고 싶기도 했어요.


이렇게 저의 활동은 아트버스킹 식으로 자유롭고 느슨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지척에 두고도 자주 가지 않았던 작은 정릉시장과 함께 ‘차라리낭만’이 위치한 골목의 풍경과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의 조화들을, 핫플레이스들을 굳이 찾아 다니지 않아도 훨씬 더디게 변하는 이 곳을 이제서야 면밀히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여전히 정릉은 힙한 곳은 아닙니다. 비건 선택지가 매우 적은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브런치 카페도, 엄청난 식물과 화분이 전시되어있는 오래된 호프집도, 새로 생긴 와인바도, 오래된 해장국집과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옛날식 가옥이 아파트 뒷골목에 묘하게 존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금만 정릉천으로 넘어가면 정릉천을 중심으로 정릉천포럼이 동네 상인과 지역주민 중심으로 있고, 마을의 터줏대감이 된 정릉천 축제에, 그리고 올해도 동네생활탐험가와 동시에 성북청년정책네트워크 정릉권역의 멤버로서 관심사와 활동키워드들이 연결되고 그것을 경험할 때의 ‘동네’는 내가 살아온 햇수보다 훨씬 크고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정릉의 공간과 그리고 함께 탐험가를 한 사람들의 탐험정보를 공유하는 단톡방을 확인하는게 저에겐 소소한 즐거움이기도 했습니다. 제가 추천하는 카페, 책방 등의 공간들을 가보고 어땠다더라 하는 후기를 참 뿌듯해하기도 했고요.


올해 정릉권역의 캠페인은 ‘인간과 동물, 함께 사는 정릉‘ 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정릉천은 사람뿐만 아니라 많은 반려견들이 산책을 하는 코스이기도 한데요. 이 곳에 개울섬이 자연스럽게 조성되자 자연스럽게 반려동물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던 곳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개개인의 기본 에티켓에 대한 생각도 달라 민원으로 개울섬이 아스팔트로 메워지게 되었는데요. 이 사건을 통해 동물과 공존하기 위한 반려인/비반려인의 인식과 기본에티켓, 그리고 우리동네에도 있는 펫프랜들리 가게들의 인터뷰 등을 통해 비반려인으로서 제 생각을 또 확장시킬 수 있는 경험이기도 했고요. 이런 논의들을 청년들이 동네 도서관을 통해 모아냈다는 의의도 있겠네요!


사실 저는 아픈몸이기에 모든 것에 백퍼센트 완벽하게 참여할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끝까지 같이 올 수 있었던건 같이 한 사람들의 지지와 자발성을 끌어내줄 즐거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이제서야 제가 사는 정릉을 조금 알아가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동네를 다시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나요. 편의점, 카페 외에 동네에서 마을활동이나 도서관이 동네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혹시 알고 계신가요. 조금만 용기를 내면, 관심을 가지면 지금과는 다른 동네가 보일거라 믿어요. 삶이 고립되지 않고 다양해지는 순간을 위해 저는 마을활동이자 청년활동을 택했고 삶이 더욱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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