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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미쟤씨 Nov 22. 2022

시한부의 폐렴과 코비드 확진

숨쉬기의 어려움을 겪으며 아픈몸의 두려움과 의존의 감각

평소에 침대 맡에 고정되어 끼던 강력한 산소 콧줄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가기 위해 휠체어에 이동용 산소통에 같은 용량, 혹은 더 센 용량의 산소 용량으로 교체할 때만 해도 숨이 차 죽을 것 같은 느낌이다.


사실 고정된 산소통으로도 코나 목이 너무 건조해지면 산소포화도가 떨어지곤 해서 특히 잘 때 땀에 흠뻑 젖어 중간중간 깰 때가 많은데, 실제로 산소 줄 교체하는 잠시 사이, 조금만 몸을 움직여도 숨이 차니까 더욱 과호흡을 하게 된다.


그때마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 각자의 방법으로 덜 숨찰 수 있도록 도와주시려 하는데 죽을 것 같을 때 침착하게 마저 입을 동그랗게 오오 하고 말아 숨을 끝까지 내뱉고 코로 끝까지 천천히 들이쉬는 복식호흡이 안정되는데  정석이면서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고 평소 훈련이 필요한 일이구나 싶다.


이상하게도 어렸을 적 바이올린 자세 배울 때 온전히 활을 끝에서 끝까지 활용해 쓰기가 참 쉽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는데 복식호흡도 습관적으로 끝에서 끝까지 호흡하지 않고 입부터 벌어져 얕은 호흡을 하게 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콧줄을 끼고 휠체어를 타면 나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드는데 허리를 세우고 앉아 흉곽이 딱 벌어지게 잔뜩 숨을 들이쉬는 게 자유롭지 않다. 가뜩이나 숨이 차서 숨쉬기에 온 힘이 다 들어가 있으니까. 그래서 콧줄이 빠진 삶이 가능할지 막연해지는 감각이 정말 두렵다. 코비드 전에 폐렴이 나아갈 때만 해도 희망이 컸었는데 이젠 화장실 가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두려우니까.


이젠 소변줄을 끼고 기저귀를 차게 되는 건 아닐까, 과연 걸어 다닐 수는 있을까 토요일에 같은 병실 환자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는 상황을 어쩔 수 없이 겪고 나서 더 그 두려움이 커져버렸다.


아마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도 말은 하지 못할 거다. 나도 시한부의 삶이니까. 오랜 병원 생활에서 가족이나 간병인에게 의존해오며 강박과 예민함을 밤마다 호소해 모두를 잠에 들지 못하게 하던 환자, 섬망이 있어 가족 이름을 부르짖으며 자기를 가뒀다고 주장하며 낙상의 위험에도 침대에서 내려가려 종일 시도하는 주장하는 환자를 바로 얼마 전까지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불과 며칠 전부터 나를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에 화장실도 참다 참다 가게 된다. 스스로 할 수 있던 것들을 의존하게 되며 오는 불안감, 그래서 더 간병과 돌봄이라는 정서적 육체적 노동의 전문성이 여전히 단순노동으로 성별화되는 사회적 문제와  환자에게 익숙한 사람들을 돌봄이라는 이유로 집요하게 의존하게 되는 감각이 너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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