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오늘은 일주일 간의 운전면허 교육과 시험을 마치고 마지막 도로주행 시험이 있었던 날이었다. 원래 일주일 안에 따는게 목표였기 때문에, 오늘 시험에 합격해서 이 글을 쓰려고 했는데 떨어져서(ㅠㅠ) 실패한 건 안 비밀. 누구나 따는 운전면허지만, 지난 일주일 간 나의 일상을 채웠던 운전면허 도전기, 그 과정에서 느꼈던 점들을 한 번 정리해보려고 한다.
1. 일단 하기 시작하면 괴롭지 않다.
모든 일이 그렇다. 할까 말까 고민할 때가 괴롭지, 일단 하기로 마음먹으면 걱정했던 것 만큼 끔찍하지 않다. 나는 방향 감각이 좀 없어서, 왼쪽 오른쪽 구분도 약간 오래걸리고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항상 왼손잡이 핑계를 대곤 한다), 방금 온 길도 헷갈려하곤 한다. 그런 나에게 운전은 항상 막연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나이 제한에 걸려서 못 따기도 했지만, 기회가 될 때에도 막연한 두려움이 커서 미루고 미뤄왔다.
하지만 처음이 무섭지, 한 번 두 번 침착하게 운전에 익숙해져보니 운전도 조심만 하면 할 만 한 거구나 싶고, 나도 생각보다 잘 할 수 있겠구나 싶다.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하고 미뤄 왔던 숙제를 하나 해치운 기분이다.
벽을 눕히면 다리가 된다. 그러니 할까 말까 할 때는, 하자.
2. 하지만 운전은 어렵다!
무단횡단하는 사람들, 튀어나오는 앞 차 등 살아 움직이는 도로도 보고, 백미러도 보고, 속도도 보고, 갈 길에 맞게 차선도 미리 생각해야하고. 이 초보자에게는 아직 감당이 되지 않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그 속에서 시시각각 판단을 하고 움직여야 하는 운전은 복잡한 조작능력과 판단력이 요구되는, 정말 긴장을 늦추면 안 되는 행위인 것 같다.
재밌는 것이 운전을 하다 보면 자기 성격이 나온다. 나는 마음이 참 급한 운전자다. 오늘은 시험 초반에 생각보다 긴장이 되어서 출발해야한다! 차선을 바꿔야 한다! 저기서 좌회전해야 한다! 라는 목표에만 집중한 나머지 출발 전 깜박이도 안 넣고, 차선을 변경해야 한다는 걸 뒤늦게 깨달아 후방 확인도 안하고 무작정 핸들부터 돌려버리는 바람에 선생님을 놀라게 하고. 아무튼 그러는 바람에 첫 시험에선 탈락했다. (후반부에는 안정을 찾고 엄청 잘 했는데ㅠㅠ 이제 내가 운전할 때 탄다고 하는 사람은 우리 아빠 뿐이겠다.)
3. 운전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건
운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할 수 없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이건 막내를 낳은 후 다시 운전을 시작해서, 이제는 아빠보다 운전을 잘 하시는 우리 엄마가 항상 하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실 서울에 있을 때는 별로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지방인 고향집에 내려오면 차로는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차 없이는 4~50분에 걸려 가야한다. 미국에 있을 때나, 여행을 갔을 때도 교통편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택시에 많은 돈을 쓰며 운전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의존해야했다. 지금은 당연히 운전을 엄청 잘하진 않지만, 혹시나 운전을 해야만 하는 비상상황이 올 때, 출퇴근이나 출장을 위해 운전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 때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든든하고, 왠지 더 어른이 된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뭔가 자유로운 인생을 가로막는 제약이 더 사라진 느낌? 운전은 참 유용한 도구이고, 가능하면 이 도구를 쓸 줄은 아는 것이 좋은 것 같다.
4. 뜻밖의 사투리 능력 향상
고향에 내려오면 갑자기 엄마아빠의 사투리가 새삼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근 일주일간은 운전대를 잡고 구수한 사투리를 구사해주시는 선생님들 덕분에 운전보다 사투리가 평소보다 빠르게 많이(!) 늘었다. 다음 주에는 사투리와 함께 운전을 마스터해서 꼭 면허를 따고 말겠어.
열두 번째 #목요일의글쓰기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