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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01. 2021

하늘길이 막혔다니요

바깥순이에겐 청천벽력


코로나 직격타를 맞은 바깥순이(주: 집순이의 반대말)의 집콕 적응기.


1. 하늘길이 막혔다니요


[프롤로그]

집순이 집돌이와 반대되는 성향의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를 찾지 못하여 한참을 고민했다. 집을 숙박업소처럼 사용하고 있었어서(과거형이 되어버렸다) 종종 역마살 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이는 적합한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 '살(煞)'이라는 글자가 붙은 단어는 그다지 좋은 단어가 아니거니와, 엄밀히 말하면 멀리 떠나 돌아오지 않고 떠도는 삶을 사는 것은 아니기에 집순이의 반대 개념으로 딱 들어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멋대로 '바깥순이'라는 단어를 주워왔다. 집에 좀처럼 붙어있지를 못하고 바깥에서 무언가를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집순이와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하려 한다. 이 글은 근 10여년을 철저하게 바깥순이로 살아온 나의 집콕 적응기이다.






딱 1년 정도 전부터 외출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3n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일이라는 표현을 하기에는 숫자가 조금 가소로운 것 같아 아빠의 나이를 빌리자면, 6n을 살아오면서 처음 겪는 놀라운 일이라고 하셨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이 온통 코로나에 대한 것이어도 사태의 심각성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반드시 에이 뭐 얼마나 가겠어, 라고 여겼던 것이 어마어마한 판단 미스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프라인을 기반으로 하는 대부분의 사업체가 생계의 위협을 느꼈다는 것에 비해 내가 피부로 느끼는 위협은 분명 우습고 사소했다. 하지만 작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세계 안에서, 모든 여행을 취소해야 한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괴롭게 느껴졌다. 프로 '바깥순이'인 나는 작년 기준으로 작년(2019년)에 이미 여러 개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가장 코 앞에 있었던 것은 여행 모임 친구들과 가기로 했던 정기 여행이었다. 이것조차도 아쉬웠지만 그래도 언제든 기회가 있다는 생각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둔 친동생과 함께 떠나기로 했던 터키 여행과 친한 동생들과 떠나기로 했던 체코-폴란드 여행을 생각하니 억울하고 화가 났다. 몇 년에 한번 찾아오는 긴 연휴에 눈치코치보며 겨우 연차를 여러개 붙여 계획한 휴가였다. 나의 세계에서 이 여행 기회는 너무나 소중하디 소중했기에, 딱히 화풀이할 곳도 없는 나의 분노와 상실감은 일상을 다소 무기력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5월의 터키여행을 두고 동생과 매일 대화를 나눴다. 동생의 포기는 생각보다 빨랐다. 결론은 정해져있었지만 괜스레 미련이 남아 환불 신청을 질질 미루는 나보다 훨씬 현명했다.


 언니, 나도 가고 싶지만 어쩔 수 없잖아.

 알아, 취소해야지.


여행사에 전화하여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니 약간 마음이 놓였다. 국적기라 고객센터와의 소통이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고, 아예 터키행 비행기의 운항 자체가 모두 취소되었기에 환불 절차는 그다지 복잡하지 않게 흘러갔다. 통장으로 들어온 항공권 비용 약 83만원을 보며, 왠지 꽁돈 생긴 기분이라고 위안을 삼아 보았다.


그래도 10월쯤에는 나아지지 않을까. 체코행 항공권의 취소는 좀 더 버텨보겠다며 미련하게 고집을 부렸다. 당연히 부질없는 짓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같이 가기로 했던 동생들도 조심스레 취소할 수 밖에 없지 않겠냐는 얘기를 꺼냈고, 사그라들 줄 모르는 전염성 높은 질병 앞에 백기를 들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번 항공사는 터키행을 예매했던 항공사만큼 스무스하지 않았다. 이 외항사는 도저히 전세계적인 환불을 감당할 수 없었는지, 모든 환불을 3년 안에 사용할 수 있는 바우처의 형태로 시행하겠다는 일방적인 공지를 했다. 딱히 컴플레인을 해도 먹히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았기에 불필요하게 힘을 빼지는 않기로 했다. 이미 큰 실망감에 기운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기대했던 2020년의 해외여행 계획은, 꽁돈이 아니지만 꽁돈같이 느껴진 83만원과 지금은 종이 쪼가리에 불과한 항공권 바우처만 남기고 흔적을 감췄다. 


하지만 이 정도 계획 취소에 불행함을 느꼈던 사실이 민망하고 죄송할 정도로 작년 한 해는 많은 사람들이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여행/항공업은 사상 최악의 손실을 보았고, 업계 1,2위를 다투는 큰 기업조차도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누구나 알 만한 여행사에 다니던 친구네 형이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한다는 이야기, 오랜 노력 끝에 항공사에 취직한 친구의 여자친구가 긴 발령 대기 끝에 결국 다른 곳에 취업했다는 이야기, 친구의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의 매출이 80% 이상 급감했다는 이야기 등 한 다리만 건너도 많은 이들이 큰 피해를 보았다는 소식을 숱하게 들을 수 있었다. 2020년은 그런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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