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그 방
10. 개미일기 02. 주식 오픈채팅방을 아십니까
(개미일기 01과 이어집니다)
시작은 당연하게 국내주식부터였다. 처음엔 해외주식은 아예 생각이 미치지조차 않았던 우물 안 개구리였으니까. 회사에서 화장실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어플을 켜고 오르락내리락하는 숫자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좋은 주식을 발굴할 인사이트도 없고, 우량주에 넣어놓고 진득히 기다릴 인내심도 없어서, 그저 바라만보았다. 네이버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을 눈팅하며, 누군가 '000 드디어 가네요' 하면 000을 검색해보는 식이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기업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고, 또 처음 듣는 기업이 이렇게 많다니 하며 놀랐다.
코로나 여파로 인해 마스크 품귀현상이 발생하면서 마스크 재료회사 어디의 주식이 폭등했고, 온라인 배송 서비스가 활발해지면서 종이박스를 생산하는 어디의 주식이 또 폭등했다. 주식에 관심을 가지니까 출근길 버스에서 자는 대신 경제뉴스를 다 보게 되었다. 와,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를 느끼며 스스로의 변화가 내심 대견하기도 하고, 진작 관심을 가질걸 그랬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동시에 이 주식이 급등할걸 미리 알고 사둔 남들을 부러워하며, '아 그걸 샀어야 했는데'와 '와 이걸 1000주 산 사람은 수익이 얼마야'따위의 복붙같은 패턴의 문장을 매일같이 내뱉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종목토론실에 등장하는 여러가지 생소한 단어들(흑우, 세력형님 등등)의 의미에 감을 잡아가던 중, 나는 마침내 오픈채팅방에 발을 들였다. 사짜 느낌이 팍팍 나기는 했지만 어떤 식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호기심에 결국 접속하고 말았다. 내심 구경만 하고 따라하지 않으면 되잖아, 나 그정도 분별력은 있는 사람이야, 하면서 스스로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 호언장담하며. 하지만 그 채팅방의 운영자는 마치 예언가라도 되는 것마냥 특정 종목을 찝어주며 얼마 이하에서 비중 몇퍼센트를 두고 매수하라는 지령을 매일매일 날렸고, 그 지령에 따른 몇몇 사람들은 순식간에 적게는 몇만 많게는 몇백 단위의 수익 인증샷을 올리며 감사를 표했다. 특유의 의심이 발동하여 다 같은 편인가, 바람잡이인가 하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려고 노력했지만 궁금하면서 동시에 부러워 견딜 수가 없었던 나는 결국 급등주 몇개를 아주 소심하게 매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쫄보가 어디 가랴, 아주 소심하게 10만원 정도의 소액을 들여 테마주를 매수했다. 그리고 약 10분 만에 커피 1-2잔 값 정도의 소소한 수익을 남겼다. 그래도 내심 가만히 앉아서 얻은 불로소득의 기쁨을 느꼈다. 10분에 커피 한잔이 어디야, 매일 커피 한잔값만 벌어도 한달이면 그게 어디야, 하며. 그런 식으로 은근 채팅방에 집중하며 이것저것 따라해보다보니 어떤 날은 소액을 벌었고 어떤 날은 물렸다. 팔지만 않으면 손해는 안 본다며 일단 갖고 있어보았지만, 몇몇 종목은 '존버'조차도 통하지 않았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종목 몇개가 계좌에 붙박이처럼 놓여있자 문득 정신이 들었다. 이건 도박이다. 뭔지 알지도 못하는 종목을 남의 말만 듣고 사는건 도박과 다를 바 없다. 오픈채팅방을 나오고 계좌를 다시 들여다보니 다행히 큰 손해는 없었다. 아니 사실 오히려 얼마간 수익을 본 것이 사실이다. 약간의 이성과 쫄보 근성으로 인해 큰 돈을 굴리지 않은 나는, 대박도 아니었지만 쪽박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부터 스스로 공부해서 다시 주식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