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의 마추픽추

너네 다 관종이야

by 루나


보라돌이 뚜비 나나 뽀의 마추픽추



여행 중에 엄마, 아빠, 딸, 아들 이라는 호칭이 적힌 티셔츠를 입은 일행을 보거나, 예쁘게 깔맞춤을 한 채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보며 참 귀엽고 예쁘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여행갈 때 일행과 아이템을 맞추는 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부끄럽거나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누군가 먼저 말을 꺼내면 은근 반가워하며 무엇을 맞출 지 고심하는 데에 동참하곤 했다. 대놓고 먼저 나설 정도는 아니지만 등 떠밀어주면 은근 좋아하는 약간의 관종력은 대부분 갖고 있지 않은가. 아닌가


어쨌든 우리는 남미여행을 위한 아이템을 하나 맞추기로 했다. 무엇을 맞출 지에 대한 논의는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차피 윤회장은 이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었고, 임사원은 의견을 적극 어필하는 편이었다. 그리고 나와 탁인턴은 보통 임사원의 의견을 수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간단하게 텔레토비를 떠올리게 하는 컬러의 바람막이를 맞춰 입기로 결정했다. 트레킹과 버스 숙박 등이 포함되어 있는 우리의 남미 여행은 그다지 우아하지 않을 것임을 출발 전부터 알고 있었기에 바람막이를 맞추는 데에 별 이견없이 동의했다.


나는 평소 해외여행을 갈 때 주로 챙겨가곤 하던 컬러풀한 색상의 롱원피스와 예쁜 옷들을 전부 포기했는데 이게 내심 두고두고 아쉽기는 하다. 하지만 의외로 텔레토비 바람막이가 내게 꽤 괜찮은 사진들을 많이 남겨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귀여운(!) 사진들을 남길 수 있었다. 가이드는 우리의 패션을 귀여워해주었고, 사진을 부탁하면 찰칵찰칵 아낌없이 셔터를 누르고 돌려주었다. 이 꼴(?)을 우스워하던 윤회장도 나중에는 내심 맘에 들어하는 것 같았다.



쿠스코에서 떠난 마추픽추 1박2일 투어의 여정은 고단했지만 눈이 즐거웠다. 마추픽추로 가면서 들른 여러 유적지와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장소들은 모두 환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진 속의 장소는 오얀따이땀보를 향해 가다가 멋있어서 멈춘 어느 길목이다. 그냥 지나가다 본 풍경의 클라스가 이 정도라는 것.


그렇게 거쳐거쳐 마추픽추가 있는 마을에 도착한 것은 늦은 저녁시간이었다. 우리는 후다닥 저녁을 먹고 다음날 아침부터 진행될 마추픽추 투어를 위해 얼른 잠자리에 들었다.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 숙소는 역이 있는 중심지를 거의 벗어나는 끝자락 즈음에, 심지어 다소 오르막을 올라야 도달하는 게스트하우스였고, 우리는 이런 입지라면 패키지 아니고서야 손님이 오질 않겠다는 둥의 불평을 뱉으면서도 내심 다음날의 투어를 기대하는 마음에 설레하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눈이 절로 번쩍 떠졌다. 숙소 밖으로 나오니 딱 봐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장소가 있어서 지도를 보지 않아도 그곳이 우리가 갈 곳임을 알 수 있었다. 마추픽추로 올라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의 가이드도 그 곳에서 만났다. 가이드는 체구가 작은 남자였는데 마추픽추에 대해서 정말 쉴 새 없이 많은 스토리를 들려주고 설명해주었다. 하지만 정말 아쉽게도 내용은 거의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때로는 무리에서 이탈해서 사진을 더 찍고 싶기도 했는데 민폐일까 꾹꾹 참았다. 가이드가 설명을 모두 마치고 약간의 자유시간을 준 후, 집합시간을 정해 주었는데 남은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아 내내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가이드의 설명은 다 잊었지만 이 풍경만은 잊을 수가 없다. 평생 한번은 가볼 수 있을까, 했던 곳에 갔다는 성취감과 벅참이 말을 잊게 만들었다.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런 절경을 눈 앞에 두고. 영어라서 못 알아들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빠지면 서운한 우리의 텔레토피 컷. 한명씩 보면 전혀 튀는 복장이 아닌데 이렇게 모여있으면 그래도 다들 귀엽게 봐주었다. 원래는 일정 중 하루 이틀 정도 입을 줄 알았는데 거의 매일같이 입었다. 사진을 보니 죄다 이렇게 입고 있었다.


너네 다 관종이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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