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의 맛 : 보수적 입맛의 여행자들

알파카는 먹기 싫다구요

by 루나


사실 다녀온 지 조금 시간이 흘러 모든 기억이 세세하고 생생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사진 한장한장 보며 기억을 되살릴 수 있다는 것에 참 감사하고 다행스럽다. 하루하루 짤막하고 간단하게 남긴 여행 에세이가 어느새 3일차까지 넘어왔다. 그동안 음식에 대해 한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것 같아 이번에는 페루에서 먹은 음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적어본다.





페루 여행을 가기 전부터 음식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여행 후기를 몇 개만 봐도 바로 기대감이 떨어질 것이다. 페루를 선택한 이유는 마추픽추와 비니쿤카가 있기 때문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좋지 않은 치안과 고산병, 맛있지 않은 음식들을 다 감수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애초에 해외여행 하면서 크게 음식에 대한 기대를 하지 않기도 하다. 유럽/호주/아시아 두루두루 다녀본 결과 음식이 우리나라만큼 맛있는 곳은 없었기 때문(싱가포르나 일본 정도가 음식이 괜찮았던 나라들). 내가 한국인이라서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고산병에 시달리며 겨우겨우 먹었던 첫날의 첫 식사(꾸이 아닙니다)


페루의 색깔을 담뿍 느낄 수 있는 전통 요리는 꾸이라고 하는 기니피그를 구운 요리이다. 듣자마자 문화의 다양성에 다시 한번 놀랐다. 남미여행기를 찾아보면 은근 꾸이에 도전해봤다는 후기도 많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 넷 중에 그 누구도 꾸이를 먹어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가 먹은 음식은 주로 '뽀요'라는 단어가 들어간 닭요리와 버거, 감튀, 샐러드 등 무난한 요리들이었다. 그럼에도 전혀 맛있지 않았다. 모두의 공통적인 첫 소감은 '짜다'였다. 감튀는 물론이고 고기요리도 대체적으로 짠 편이라서 많이 먹기 어려웠지만 그래도 배고파서 어찌어찌 열심히 먹었던 것 같다. 아참, 그리고 물가는 상당히 저렴하다. 4명이서 배불리 먹어도 2만원이 채 안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가물..




꾸이를 피하니 특별히 페루만의 임팩트있는 음식이랄 건 없었지만 그래도 대체적으로 어딜 가나 플레이팅이 화려한 편이어서 사진 찍는 재미는 쏠쏠했다. 둘째날에 마추픽추를 향해 가는 택시 투어에서 기사가 내려준 음식점에서 먹은 음식은 아기자기하고 공들인 플레이팅으로 특히 기억에 남았다.


사우어의 절정, 세비체


페루의 특색있는 음식 중 또 하나는 '세비체'라는 메뉴이다. 여러 종류의 해산물을 얇게 잘라 레몬즙에 재워 차갑게 먹는 중남미 음식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한 둘째날 저녁에 이 메뉴를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모두의 공통적인 감상은 '시다'였다. 그냥 시큼한 정도가 아니라 벌칙게임을 당한 느낌이 들게 하는 아찔한 신 맛이었다.


세비체를 먹어본 사람들의 후기가 꽤 좋았던 탓에 우리는 배신감에 빠졌다. 이 음식점이 유독 세비체를 못 하는 집일까, 했지만 그 다음으로 먹었던 세비체도 그다지 호의적인 맛은 아니어서 그 뒤로는 아무도 주문하지 않았다. 음식은, 한국이 최고다.



마추픽추에서 내려왔더니 엄청난 풍경을 보며 잊고 있던 허기가 밀려왔다. 트립어드바이저에서 인근의 평 좋은 음식점을 찾았다. (이쯤 되면 페루 스타일의 음식에 포기한 것이 느껴진다) 무난한 버거와 케사디야로 기분좋게 배를 채웠지만, 사실 그 음식점에서 먹은 메뉴들의 맛보다도 그 곳의 직원들이 훨씬 기억에 남는데 정말로 유쾌한 사람들이었던 덕분. 우리한테 보드게임을 갖다주며 친근하게 다가왔고, 단체사진을 부탁하니 셀카모드로 본인과 함께 찍은 사진 1장과 우리만 나온 단체사진 1장을 각각 남겨주는 센스도 보였다.



너무 기분좋게 나온지라 음식점 외관 사진도 남겨놓으려고 카메라를 들었을 때, 밖에까지 나와 우릴 배웅하던 직원들 덕분에 세상에서 하나뿐인 멋진 사진을 남기게 되었다. 볼 때마다 웃음이 나오는 특별한 사진이다.



어쨰서인지 페루 음식 이야기의 마지막은 쿠스코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구경한 시장에서 발견한 '알파카스(Alpacas)' 셔츠. 덧붙이자면 알파카와 라마가 그렇게 많은 나라 페루에서 알파카 고기는 안 파나요, 하신다면, 팝니다. 파는데 꾸이와 마찬가지의 이유로 먹고 싶지 않아서 먹지 않았다. 이 때 아니면 언제 어디서 알파카 고기를 먹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언제 어디에서라도 별로 먹어보고 싶지 않은 것을 굳이 먹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 많은 나라를 다니면서도 굳이 접해보지 않은 음식도 많지만, 음식을 의무감이나 당위성으로 선택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먹고 싶은 것만 먹기에도 부족한데.


라고 어색하게 마무리해보는 페루에서 먹은 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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