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록
지난 삶을 바둑판으로 비유해 보자면
대학 졸업하고 난 이후 바둑알 3개가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대학 동아리 활동 시절엔 개발자로서 더 크게 성장하고 싶고
기술적인 역량과 스타트업 문화를 간절히 원했다.
2016년 12월 신은 내 바둑판 위에 한 수를 두었다.
실력 좋고 뇌지컬이 뛰어난 개발자들이 똘똘 뭉쳐있는 SNS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에서 첫 커리어를 시작했다.
에자일 하게 일하는 방식부터 시작해서,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다양한 기술적 과제들이 있었고 당시 스펀지 같은 머리를 무장한 나는 모든 것을 흡수하고 도전하면서 기술적인 역량을 매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느낀 건 기술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대표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한 제품보단
진심으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영향을 주는 서비스를 만들고 싶다는 갈증이 커졌다.
그러자 2019년 5월 신은 또 내 바둑판 위에 한 수를 두었고,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누구나 알만한 스타트업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당시 합류했던 팀의 동료들은 서비스 감각이 무척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고객에게도 무척 진심이었다. 이번에도 난 운이 좋게 많은 것을 배우고 성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가 커지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나 결정 범위는 점점 줄어드는 것뿐만 아니라, 무언가 내가 이 회사에 합류하고 지켜왔던 초심을 계속 훼손시키는 일들이 벌어지면서 회사에서의 나의 존재에 대해서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 의문이 단순 내 고집일 수도 있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아니면 욕심일 수도 있고, 회사문제가 아닌 정말 풀어야 하는 고객 문제를 이미 풀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결국 나는 한 가지 결론에 닿았다.
내가 배워온 것들을 세상에 나가서 스스로 풀어볼 때가 되었구나 하고 말이다.
가족 같은 동료와 페트병으로 가득 찬 내 아늑한 책상 그리고 달달한 월급을 내려놓은 채 나는 새로 산 맥북 하나 딸랑 챙겨서 동료들의 응원을 듬뿍 받고 2024년 6월 나는 세상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나는 지금껏 배우고 쌓아온 모든 역량과 경험을 최대한 발휘하며 할 수 있는 건 다해보았다.
당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딱 1년이었다.
참 슬프게도 딱 2025년 6월에서야 드디어 수익화 실험을 시작하게 되었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몇 달만 시간 더? 달라고 빌어보았지만
결국 약속한 시간을 초과하면서 나는 채무 불이행자가 되어버렸다.
괴테 선생님께서 왕이건 농부이건 자신의 가정에 평화를 찾아낼 수 있는 자가 가장 행복한 인간 이랬는데,
9월 당시 유저는 빠르게 늘어나서 최고점을 찍고 있는데 역설적이게도 나는 너무나 몹시 괴로웠다.
사실 회고 매번 할 때마다 나에게 부족했던 게 너무나 명확했다.
그간 내가 살아오면서 제대로 해보지 못했던 마케팅 역량이 너무나 부족했고,
자생해서 성장하는 비즈니스에 대한 경험이 너무나 절실했다.
주변 사업가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도 해보고 나름 고민도 이야기했지만, 문제는 결국 나에게 있었다.
웃긴이야기지만 올해 가장 아주 바보 같은 선택은 다시 전에 다녔던 회사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했었는데, 이건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면서 이보다 비참한 일이 있을까 싶다.
아니 그냥 정말 바보 같은 시도였다.
어떤 배움이 있을지 뻔히 알면서도 다시 돌아가려 한다니!
결국 화가 난 신은 2025년 10월에 내 바둑판 위에 한 수를 두었다.
신은 이번에도 나를 도왔다.
나를 작지만 투자 없이 자생하며 무섭게 성장 중인 스타트업으로 던졌다.
심지어 뛰어난 마케터가 6명이나 있었다!
항상 그래왔듯이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있고
그간 배웠던 많은 것을 아낌없이 주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서 이제 3달 거의 다 되어가지만 일상이 많이 바뀌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사업하고 7시에 출근하고 퇴근 후 다시 사업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마치 바위를 계속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말이다.
즉, 아직 나의 비즈니스는 멈추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다.
그리고 올해는 주변의 나를 지지해준 많은 분들에게 감사하고,
나의 비즈니스가 아직 살아남아있음에 감사하는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