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 UDL
보편적 학습설계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이하 UDL) 수업은 파고들수록 놀랍다. 얼핏 아주 단순한 철학 같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결코 간단하지 않다. 나름 학기말을 맞이하여 내가 이해한 UDL을 한마디로 정의해본다면 "학생들의 고유한 특징 (언어, 문화, 환경, 장애여부 등)을 결핍이 아닌 다양성으로 인정하고, 모든 학생들이 자신에게 알맞은 방식으로 배우고, 표현할 수 있도록 설계한 학습 체계"라고 할 수 있겠다. 다시 말해 UDL은 모두에게 해당되는 (Universal) 학습 경험을 통해 학습의 개인화 (Personalized learning)를 구현하고자 한다.
아래는 전통적인 교육 시스템의 모순을 풍자한 그림이다. 심사위원은 여러 동물들에게 말한다.
공평한 심사를 위해 모두에게 같은 과제를 내겠습니다: 나무를 오르시오.
말풍선을 읽고 그 말을 듣고 있는 동물들을 보는데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다. 과제는 나무 오르기인데, 그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동물들은 절대로 나무를 오를 수 없는 코끼리, 물고기, 펭귄, 물개라니. 이 동물들이 나무를 오르지 못하는 것은 결코 이들의 노력이나 능력 문제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새와 원숭이는 유리한 조건이 얻어걸린 것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어쩌다 보니 읽고 쓰고 말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었던 내가 지나온 교육 시스템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 교육의 역할은 무엇일까. 그가 사회에서 정해놓은 틀과 기준에 맞지 않음을, 보잘것없음을 깨닫고 자기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함을 가르쳐주는 것일까. 아니다. 교육은 한 사람이 자신의 강점을 바탕으로 배움의 즐거움을 깨닫고, 지속적으로 내재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UDL은 너무나도 필요한 방향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UDL의 매력에 스며들고 있던 어느 날, 다음 수업시간에는 UDL에 대해서 토론 릴레이를 할 예정이니 각자 주어진 역할을 바탕으로 토론을 준비 해오라는 과제를 받았다. 시나리오는 '한 선생님이 수학 수업에 UDL을 접목시켜보니 수업이 더 공정해지고, 생산적이었고, 따라서 다른 과목들에도 UDL을 적용하기를 강력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골치 아프게도 내가 받은 역할은 "UDL 반대"였다. UDL을 뼛속까지 찬성하는데 반대 의견을 어떻게 내지, 고민을 안고 팀원들과 대화를 해보았다.
오, 놀랍게도 한 발짝 떨어져 곰곰이 생각해보니 UDL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으로 반대할 이유는 많았다.
UDL을 성공적으로 구현하려면 교사 훈련 및 교육 시스템 개혁에 지속적이고 큰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많은 학교들은 빠듯한 예산 등 제한적인 자원으로 교육 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확실한 성공에 대한 보장 없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무모하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이미 과도한 업무에 지쳐있기 때문에, 업무 또는 임금 조정이 없는 이상 새로운 교육방식을 도입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여전히 학생들은 다음 단계의 교육 시스템에 입성하기 위해 표준화된 시험 (수능, SAT, GRE 등)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 둬야만 한다.
UDL이 학습 효과와 동기부여 측면에서 바람직하긴 하나, 정작 학생들의 성적과 교사 평가 기준은 UDL과 맥락을 같이하지 않는다. 즉, 학생들이 획일화된 시험에서 얻은 성적으로 평가되고, 교사는 학생들이 얻은 성적을 바탕으로 평가되는 시스템이 계속된다면, UDL 도입은 비현실적이다.
기타 등등. 간단히 정리하면 UDL이 성공을 거두려면 그를 위한 준비와 투자가 있어야 한다. <UDL Now! A Teacher’s Guide to Applying Universal Design for Learning in Today’s Classrooms, Second Edition>의 저자 케이티 노박(Katie Novak)은 eSchool News와의 인터뷰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언급했다. 이에 더해 UDL을 제대로 시행하려면 교사들이 정말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는 교사 입장에서는 매우 두려운 일임을 짚었다. 교육자들의 역할은 학생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즉 개인화된 학습방식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음을 믿고, 기다리고, 지켜보고, 피드백을 제공하고, 교육 자원을 제공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노박의 인터뷰 마무리 발언으로 이 포스팅을 마친다.
소소한 변화들만으로는 커다란 성장을 이룩할 수 없다. 큰 변화를 위해 장기적인 계획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UDL을 도입하는 데에 있어서는 지속적이고 일관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UDL 적용 방식을 계속 평가하고 수정해야 한다. 학생들과 그들의 가족들, 그리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의 학습 참여도를 평가하고 계획을 다시 구체화하라. 학습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될 때까지 이 과정을 계속 반복하라. 약속한다. 그 투자는 그만한 가치가 분명히 있다.
[참고자료]
https://www.eschoolnews.com/2018/11/01/so-you-think-you-understand-udl/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