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 이동 봉사
상상만 해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적은 아주 드물었지만, 분명 있었다. 이번 일도 그 중 하나.
한국에서 보내고 있는 두 달여의 방학은 오랜만의 미국 생활의 시작을 다지고 온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시간이다. 보고픈 이들이 많이 살고 있는 서울을 눈 딱 감고 제쳐두고 문경 부모님 댁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긴장하지 않고, 쫓기지도, 헤매지도 않고, 무엇보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그저 유영할 수 있는 지금은 분명 나의 일부분을 빚어가고 있다. 나의 다음 페이지를 불순물이 가라앉은 맑은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다.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와 순간들을 알아채고 아껴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종종 혼자 마음의 공간을 정리하고 조금이나마 넓혀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나의 이토록 유난스러운 부분까지 기꺼이 안아주는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여하튼, 시간을 초월한 듯 몇 날 며칠을 지내다 보니 드디어 다른 존재를 마음에 들일 준비가 되었나 보다. 팔로우하고 있던 유기견 구조 계정에서 보스턴행 이동 봉사자를 찾는다는 포스팅이 눈에 들어왔다. 이동봉사란 출국일에 평소보다 30분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기관 담당자에게 서류를 건네받고, 도착지에서 유기견을 픽업하여 기다리고 있는 새로운 가족에게 인계해주는 과정을 책임지는 것이다. 전혀 복잡하지 않다.
이동봉사를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1) 직항이어야 하고, 2) 문의 일자가 출국일로부터 10일 이상 남아있어야 하고, 3) 이동 봉사자가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대한항공은 최대 두 마리까지 수하물로 데리고 갈 수 있다 (개의 크기와 무게에는 제한이 없는 것 같다). 반면 델타항공은 기내에 함께 탈 수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만 데리고 갈 수 있다고 한다. 포스팅에 나와있는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했더니 조금 후 답장이 왔다. 예약번호와 전화번호, 영문 이름 등 기본적인 정보를 알려주면 유기견 이동봉사 예약을 한 후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두어 번의 이메일이 오간 뒤 대한항공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으로 내 예약 정보를 확인해보니 내 이름 밑에 강아지 아이콘이 보였다. 진도 믹스 두 마리를 데리고 가게 되었다고 한다. 구체적인 절차와 정보는 출국 2주 전에 다시 연락하며 확인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미국까지 사람도 힘든 14시간의 비행을 견뎌야 하는 강아지들이 벌써 안쓰럽지만, 이 시국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로 결정한 이름 모를 사람들이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온다. 이동봉사를 앞두고 있자니 굉장히 단순한 업무를 맡았지만, 어쩐지 그 사소한 일마저 미지의 영역이나 무조건 실수 없이 잘 해내고픈 인턴사원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성격상 모든 일이 끝난 후에 한숨 돌리고 나서야 비로소 기록을 남기는 편인데, 어찌 된 일인지 이번만큼은 과정 중에 드는 생각과 감정을 남겨놓고 싶다. 언젠가 내 친구이자 가족으로 맞이할 강아지를 내가 있는 곳으로 데려와줄 누군가가 생기면 이 포스팅을 다시 읽어봐야지.
이 쉬운 용기 누구나 낼 수 있기를.
아 - 그치만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