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나무, 영혼의 향기

by 수경

교실 수업이 끝나도 운동장에는 공과 함께 뛰어노는 아이들이 있고, 정원을 배회하는 아이들은 시간의 사금파리를 모으느라 찬 공기를 잊었습니다. 맑은 하늘 높은 곳에는 아이들이 쏘아 올린 웃음과 말소리가 다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고 있습니다.


과열 대학 입시를 초등부터 준비하는 아이들을 건물 안에 갇힌 꽃이라 비유할 수 있다지만 어느 시대든 바깥공기를 가르며 노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콘크리트 사이의 새싹 같고 방긋 웃는 민들레처럼요. 이렇게 몸으로 뛰어노는 아이들은 마음도 건강해져 긍정적인 에너지를 몸 안에서 키웁니다.


학교 정원에는 노오란 모과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쿵쿵 소리를 내며 이곳저곳에 떨어진 모과 열매들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나무 아래 옹기종이 모여있습니다.


책상과 의자들을 아이들 키에 맞도록 일일이 맞춰 주시고 고장 난 시설물들을 바로바로 수리해 주시는 관리인 주사님은 학교 정원도 정성스레 가꾸고 계십니다. 주사님의 손길로 모과 열매들은 나무 아래 모여있습니다.


문득 이 모과 열매들이 이 자리에서 썩어 다시 봄에 싹을 틔우고 나무로 자라난다면 어쩌나 하는, 쓸데없는 걱정이 스멀 피어올랐습니다. 한꺼번에 치우기 위해 모아 놓은 것이라 하지만 독립을 미루고 자식을 품 안에 끼고 있는 어미의 모습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떨어진 모과 열매를 주워 들고 향을 맡아봅니다. 은은하면서도 진한 향이 후각을 돌아 머리로 스밉니다. 이러한 모과향이 만들어지기까지 모과나무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여 사람들을 여러 번 놀라게 하였습니다.


4월에 앙증맞게 피는 분홍색 꽃과 10월 하순의 모과 열매가 너무 어울리지 않은 것이 첫 번째의 놀라움입니다. 그리고 못 생긴 모과에서 이렇게 좋은 향이 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 그것이 두 번째 놀라움이고 향기를 좇아 덥석 베문, 단단한 모과의 시큼하고 떫은맛이 모과가 주는 세 번째의 놀라움입니다. 네 번째는 생으로 먹을 수도 없는 모과가 가늘게 채 썰려 꿀과 한 몸이 되어 섞이면서 달콤하고도 상큼한 향을 만들어 낼 때입니다.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모과차는 겨울의 향기를 농축하여 담고 있습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엄마(문소리)는 딸 혜원(김태리)을 위해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들로 영혼을 살지우는 음식을 해 먹입니다. 푸짐하고 정갈하고 정성 가득,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음식들은 성인이 되어 맞닥뜨리게 될 삶의 상처들에 대항하고 치유할 힘의 원천이 됩니다.


유쾌하고 언제나 따뜻했던 엄마는 혜원이 대학 입시를 치른 것과 동시에 아무런 말도, 메모 한 장 남기지 않은 채 자신의 길을 떠납니다. 그 후 혜원은 서울에서의 학교 생활과 아르바이트, 연애를 하면서 가슴에 커다란 멍을 안고 시골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여전히 엄마가 떠난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버림받고 상처받은 기분으로 혜원의 시골 생활이 시작됩니다.


혜원은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고향에서 자급자족하면서 농사를 짓고 제철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자신을 돌봅니다. 친구 재하(류준열), 은숙(진기주)과 어울리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점점 마음이 단단해지고 엄마를 이해하는 마음과 엄마의 손길과 철학을 몸으로 다시 배우게 됩니다.


혜원이 마지막에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기로 결심할 때, 혜원은 엄마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엄마처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자립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건강한 제철 재료로 만든 엄마의 음식들이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삶을 통해 '스스로 사는 법'을 익히게 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른바 영혼을 살지우는 '소울 푸드'였던 겁니다.


우리 아이가 어릴 적에, 저는 공부만 시키는 엄마는 아니었지만, 자유롭게 나가 뛰어놀게 하는 데는 조금 인색한 엄마였습니다. 운동장이거나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게 하는 대신 저의 시야가 닿는 곳에서 품과 그늘을 제공하면서 놀기를 바랐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자신의 천성과 기질을 살려 스스로 서는 방법을 터득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 속에서 즐거움과 행복을 찾고 자신을 단단하게 하는 법도 익히고 있었습니다.


모과나무는 뿌리 근처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과 열매들을 놓아줄 때를 알고 있습니다. 후각을 넘어 머리로 스며들며 영혼까지 이르게 하는 모과의 향기가 그 열매들에게는 원천적인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과 향기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모과 향기는 겨울을 따스하게 데우는 겨울 향기입니다. 모과나무와 모과 열매를 보며 성장과 성숙과 자립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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