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에 가면 작가 한승원 님의 집필실이 있다. 그곳 1층 넓은 강당에서는 방문객들을 위해 즉석 강연이 이루어지기도 하는데, 8년 전 가을에 방문했을 때 한승원 작가께서는 재미난 도깨비 이야기를 해주셨다. 어릴 적 당신의 할아버지께서 해 주었던 이야기라고 하시며.
우리 할아버지가 밤낚시질을 하는데 여느 날과 달리 고기들이 입질을 잘해주었다 숨 가쁘게 꼭 그만큼 한 크기의 고기들을 아흔아홉 마리째 잡아 올리고 하도 허리와 옆구리가 아파 몸을 틀었다 뱃전 밑에서 도깨비라는 놈이 히히히하고 웃으며 말했다 "신나게 한바탕 잡아 올렸지?" 할아버지는 깜짝 놀라 구럭 안을 보았다. 텅 비어있을 뿐이었다
도깨비라는 놈은 할아버지가 한 마리를 낚아 올려 구럭에 담아놓으면 그것을 슬쩍 훔쳐다가 다시 낚시에 꿰어주고, 할아버지가 그것을 잡아당겨 구럭에 담아놓으면 또다시 훔쳐다가 낚시에 꿰어주기를 아흔여덟 번이나 한 것이다
너 이놈, 하고 할아버지는 소리를 질렀다 도깨비라는 놈 물을 밟고 도망가면서 말했다 "잠시나마 행복했겠지? 그렇지만 너무 화내지는 마라. 한 마리나 아흔아홉 마리나 그것이 그것이니라."
<한 마리나 아흔아홉 마리나 그것이 그것> 전문
강연을 들은 후, 비치된 많고 많은 책 중에서 즉석에 골라 구입한 책 속에 다시 이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었다. 입말을 살리느라 마침표가 생략되어 있지만 직접 입말로 들었을 때 훨씬 구수하고 흥이 저절로 나며 아, 하고 새 나오는 탄식과 함께 어떤 깨달음도 얻게 되었다. 어쨌거나 말로 들은 이야기를 글로 다시 만나게 되었으니 운이 좋았던 거다.
처음에는 하나나 아흔아홉이나 그게 그거다. 잠시나마 행복했잖아! 이 울림이 좋았고 두 번째는 밤새 도깨비랑 놀았다는 것이 참 좋아 보였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는 어떤 쓸씀함이 전해졌다.
그럴 일이었다면, 오늘 밤은 나 도깨비랑 한바탕 신나게 노는 일이고 이건 훗날 두고두고 생각나고 그리워하게 될 일이야, 이렇게 미리 말해두었다면 할아버지는 장차 두고두고 생각날 그 밤을 어떻게 보내었을까.
어쩌면 그 밤은 도깨비가 몹시 심심하고 외로운 날이었거나 훗날 도깨비가 몹시 생각나는 날은 할아버지에게 쓸쓸함이 찾아온 날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한참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내게도 찾아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