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닭띠들은 도대체 다 어디에 숨어 있었던 걸까?
초등학생일 때 나는 참 공부를 못하는 축에 속했다. 내게는 나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입학식에 가기 전에 엄마는 신신당부를 하셨다. 앞을 똑바로 쳐다보며, 절대로 다른 반에 섞여 따라가면 안 된다고.
그 당부는 금이 가 깨질 듯하다가 옆반을 따라가려던 나를 엄마가 우리 반 줄에 다시 끼워주며 가까스로 이어졌다. 나는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어 몽롱한 상태였다. 내가 얼이 나가도록 놀란 것은 아이들의 규모 때문이었다. 세상에 나만큼 조막만 한 아이들이 그렇게나 많다는 것에 대한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집 앞 동네에서 놀 때는 나만한 아이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어디에서 그 많은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입학식 운동장에서 만난 아이들은 빠글빠글했다. 고봉으로 담은 쌀밥을 운동장에 폭 엎어 놓으면, 밥알들이 꼬물꼬물 살아나 몸을 펴고 움직이며 점점이 운동장으로 퍼져 나가는 모습이었다. 개미군단처럼 운동장을 가득 메운 바로 그 모습.
아이들의 규모에 대한 놀라움은 1학년 때는 물론이고 해가 지나도 잘 해소되지 않았다. 그 많은 아이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놀라움과 의문 때문에 내 조그만 머리는 덧셈과 뺄셈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학교 공부를 따라가는 것은 내게 가혹한 일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이 의문은 오래도록 나를 붙들었다.
그런데 그 많던 또래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한 뒤, 우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도 동갑내기 학부모를 좀체 만날 수 없었다. 결혼을 늦게 한 이유도 있었겠지만, 대단지 아파트에서 겨우 한 명의 동갑 엄마를 만난 것이 전부였다. 그 많던 병아리들은 도대체 어디로 흩어진 걸까.
수십 년이 흘러 닭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작년 동네 산책 커뮤니티에서 만난 운영자는 동갑이라는 이유만으로 나를 살뜰히 챙기며 여행 정보를 건네주었다. 10년 넘게 우리 동네 약국에서 일하던 분도 알고 보니 동갑이었고, 요구르트 아주머니가 나와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불과 몇 주 전이었다.
오늘은 동갑내기 대학교 동기를 역에서 만나 수다를 떨다 배웅하였다. 공교롭게도 지하철에 올라탔더니 맞은편에 고등학교 1학년 때 짝꿍이 앉아 있었다. 나이 든 얼굴이지만 내 눈에는 생기발랄한 고등학교 여자 아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였다.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몇 차례 강렬한 눈빛을 보냈지만, 이 닭띠 친구는 나를 전혀 알아채지를 못한다.
서로를 알아본들, 짧은 반가움 뒤에 무엇이 남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같은 역에서 내리면 말을 걸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희한하게도 우리는 정말 같은 역에서 내리게 되었다. 나는 비로소 그녀의 이름을 불렀고, 대신 내가 잊고 있던 것을 그녀는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가 몇 반이었는지, 담임 선생님의 성함까지.
얼마 전 서울에서 만났던 친구들, 오늘 역에서 배웅한 동기, 지하철에서 재회한 짝꿍, 약국과 요구르트, 산책 커뮤니티까지. 어느새 모두가 동갑내기였다. 갑작스레 모여든 닭띠들 덕분에 나는 마음이 어질할 만큼 반갑기 그지없다. 입에 파릇한 희망의 잎사귀를 물고서 닭띠들이 따뜻한 양지로 모여들고 있었다.
꼬꼬댁 닭띠들이여, 봄바람을 타고 우리 다시 모여볼까. 반갑고 또 기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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