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항암생활

삶과 죽음의 갈림길

by 영끌치유

"종양지표 수치가 꽤 높네요. 큰 병원에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의사는 혈액 검사 결과지를 한 참 들여다본 후, 나의 눈을 응시했다. 나이가 족히 70은 넘어 보이는 의사가 가늘게 떨리는 자신의 손을 호흡으로 가다듬으며 내게 건넨 한마디 말이었다. 40년 넘게 롤러코스터를 타 온 인생이라 큰 일에도 잘 놀라지 않는 대범한 나의 심장도 의사의 무거운 말 한마디엔 격하게 요동쳤다.


“선생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가요?”


“여기 보이는 수치가 종양 지표인데 CA19-9은 췌장암 지표예요. 정상 수치보다 좀 높게 나와서 추가 검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궁근종 환자에게서도 종종 CA19-9 수치가 높게 나오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래도 정상 범위 이상으로 높은 수치이니 큰 병원에 가 보시길 권합니다.”


검사 후엔 죽 집에나 가서 텅 빈 위장을 채우겠다던 계획은 췌장암 수치 결과 확인 후 오늘 오후 일정에서 후순위로 밀렸다. 대신 종로 보신각 종으로 머리통을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으로 국가 건강 검진 센터를 나오면서 오늘 이후의 일정들을 다시 잡느라 머리가 복잡해졌다. 아주 잠깐 이었지만, 췌장암일 경우 남은 삶에 대한 드라마가 영사기로 돌아가는 필름처럼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아, 나 죽는 거야? 췌장암? 그 영화에서만 보던 췌장암?... 췌장암은 보통 발견되면 말기고, 3개월 안에 죽는다던데? 아… 미치겠네!... 어쩐지, 계속 몸이 안 좋더라니만 암에 걸린 거였어… 젠장! 아, 놔, 우리 애는 어떡하지? 아….’


죽는다는 생각이 내 대뇌를 가득 채운 시간은 오직 1분여 가량이었지만, 마치 하루 종일을 온통 죽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처럼 나의 두려움의 크기는 이미 전신을 압도했다. 황망하다는 말이 그때의 감정을 이야기하기엔 가장 적합한 표현일까? 코 끝으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아직 확실하게 진단이 나온 것도 아니었는데, 나는 이미 내일모레 죽을 사람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몇 발짝 걸음을 떼고서야 아직 숨 쉬며 살아있는 내 모습이 대로변 큰 길가에 있는 약국 유리문 너머로 반사되어 보였다.


일단은 췌장에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가까운 병원에서 당장 오늘 췌장 진단을 받을 길이 만무하였기에 췌장 검사는 일단 패스. 두 번째, 자궁근종 상태를 확인하면 췌장암의 확률 예측이 가능하니 산부인과를 가는 일이 오늘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한 가지였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었는데, 그까짓 종양지표 수치 하나 때문에 죽을 걱정부터 하고 있었다니 인간은 참으로 나약한 존재이며 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진을 위해 지난밤부터 굶으면서 혈당 수치를 떨어뜨려 놓았으니 뇌가 부정적일 만도 했다. 먹어야 산다는 생각으로 근처 유명 죽 집에 가서 죽 한 사발을 훌훌 들이키고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산부인과로 발걸음을 옮겼다.


“흠… 큰 병원 가봐야 되겠는데?...”

염증 때문에 종종 찾는 동네 산부인과 의사는 자궁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썩 좋지 않은 소견을 건넸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의사는 자궁에 혹이 몇 개 있는데 걱정할 정도의 사이즈는 아니라며 6개월에 한 번씩 들러서 추적검사를 하라고 권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난소 양쪽에 혹이 생겼다며 사이즈가 4센티가 넘는 혹이 있으니 제거 수술을 해야 될 정도의 크기라며 큰 병원에 가서 추가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선생님, 그럼 췌장암 종양 지표는 혹시 난소에 생긴 종양들 때문에 수치가 높게 나온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췌장에 실제로 종양이 생겼을 수도 있으니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정확하게 해 봐야 돼요.”


그야말로 정확한 답변이었다. 그 길로 병원을 나오며 흐트러진 생각을 하나로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난소에 종양이 생겨서 췌장암 종양 지표 수치가 정상 범위 이상으로 나온 것이라 스스로를 달랬다. 이미 나의 머리는 췌장암 진단을 받게 되면 남은 시간 동안 어떻게 지내야 할 것 인가까지 여행을 다녀온 터라, 더 이상 부정적일 수는 없었다. 종일 큰 뉴스를 여러 차례 듣고 소화해 내느라 정신이 없던 몸은 얼른 서재 겸 사무실이 있는 집으로 몸을 향했고, 집에 도착한 나는 자동 반사적으로 살아남기 위한 정보를 얻기 위해 뇌를 풀가동시켰다.


우선 췌장암 진단을 위한 대학병원을 예약해야 했다. 급한 마음에 컴퓨터를 열고 포털에서 췌장암 명의를 찾았더니 몇몇 이름들은 보이는데 도무지 어떤 의사한테 찾아가야 할지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나의 뇌는 재빠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맥을 찾기 위해 기억의 회로를 더듬었다. 얼마 전 간 경화로 고생하시던 아버지를 서울에서 수술받게 해 드렸다고 얘기한 50대 교수가 문득 뇌리를 스쳤다. 망설임 없이 교수한테 전화를 넣었다. 서울에 오래 살았던 50대 교수는 예측대로 병원이나 병에 대한 정보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내가 검진이 필요하다고 하니 서울에 있는 모 병원의 명의 이름까지 알려주며 찾아가 보라고 했다. 늘 큰 일 앞에서 혼자 고민하고 결정하며 살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선뜻 안겨주는 지인이 참 고맙고 든든했다.


교수가 추천해 준 병원에 진료 예약을 넣은 후, 나는 급하게 노트북 덮개를 열어 췌장암에 대한 검색을 시작했다. 구글에 췌장암이라고 치니, 췌장암 증상부터 시작해 검사, 원인, 진단, 생존율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보가 나열되어 있었다. 그중에 가장 눈길이 가는 검색어는 단연코 생존율이었다. 누구나 암 진단을 받게 되면 가장 궁금한 질문은 '내가 얼마나 살 수 있을까?' 일 것이다. 나 역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나 남아있는지가 궁금했다.


아직 췌장암 진단을 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우선은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했다. 40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몸에 밴 슬기로운 습관 중 하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의 끈을 놓지 않되, 늘 최악의 상황까지도 대비하는 자세였다. 산다는 것이 늘 예측 가능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나는 늘 최악의 사태까지도 생각하고 대비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한 준비가 되었을 때의 최악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나빴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암이라는 것은 내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 한 인생의 변수였으므로 나는 최악의 상황까지 상상하고 준비해 놓기로 했다. 내가 생각한 췌장암의 최악은


“죽기밖에 더 하겠어?”였다. 그러고 나서 췌장암 생존율이란 검색어를 넣고 엔터키를 누르니


‘췌장암은 암 진단 후 1년 내 사망률이 가장 높은 암이다.’라고 나온다.


‘젠장! 1년 내라니… 나한테 주어진 시간이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언젠간 죽을 줄 알았지만… 나는 죽어도 괜찮지만… 우리 애는 나 없이 어떻게 살지?’

3살 때부터 혼자 키워온 외동딸이 눈에 밟혔다. 꼬맹이 나이 이제 열 살.


‘이제 드디어 아이가 열 살이 되었네. 아… 정말 많이 키웠다. 이제부턴 숨 좀 돌릴 수 있겠네.’

라며 한 시름을 놓은 것이 올 초였는데,

'나 이제 죽는다고?????? 벌써???? 인생 참 허무하군!'


슬퍼할 겨를도 없이 나는 또다시 췌장암 치료방법에 대해 뒤적거리다가 이 암은 발견되었다 하면 말기이거나 치료가 어려운 병임을 인지하고,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인터넷은 다시 뒤적거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갑자기 내 몸속 어느 곳에 달려있는지도 모르는 췌장이 아파오는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 주 후면 서울에서 췌장암 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게 될 것이고, 죽는지 사는지는 그때 되면 알게 될 일이었다.


오늘을 살기로 했다. 잠시 후면 학교에서 돌아올 딸아이를 위해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가 했던 마지막 대사를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말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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