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한다 이거지 응
인스타그램에서 예쁜 커플들의 스냅 사진들을 봤어. 순간들을 가득 담아내는 듯 환히 웃는 표정과 몽글몽글해지는 그 순간의 햇살과 그사람과 나 이외에는 다른것들이 흐려져보이는 풍경 같은게 한 장의 이미지에 담겨있는 사진들. 그걸 보다가 우리의 사랑은 어떤 사진으로 담겨질 수 있을까 생각을 해 봤는데, 아마 사진으로는 힘들지 않을까 하는 결론을 내렸지.
너와 있으면서 가장 충만한 시간들은 빛이 부서지는 순간들이 아니라 불이 꺼지는 때이니까. 장소에 관계없이 가만히 누워 너와 나의 말이 시간과 공간을 지나 만나는 그 순간 말야. 우리의 우주가 단어를 통해 톡톡 부딪히다가 어느 순간 번쩍 번쩍 빛을 내는 순간들. 섞일 수 없었던 것 같은 전혀 다른 생각과 말이 같은 구심점으로 인해 호다닥 뭉치더니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그건 내가 가진 다른 물리학적 경험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흐름과 변화야. 새로 생겨나는 것들은 재료가 있었던 차원을 훌쩍 벗어나서 존재하지. 새로운 시각과 우주가 열릴 때 가장 좋은 건 그걸 탐색하며 누리는 기쁨이 아니야. 내 우주가 이미 이해받았다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안정감과 감사함이 있어.
시각적 이미지가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진으로는 우리의 그 경험과 교감들,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시간이 잘 남겨지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 거꾸로 생각하면, 얼마나 많은 사랑들이 혹은 잠재적 사랑들이 지금의 미디어에 제대로 담겨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사람은 내러티브에 사는 존재니까, 내러티브가 만들어질 수 없는, 낭만화 불가한 것들은 사랑이 아닌가보다 점차 흐려져갔는지도 몰라. 이미지가 클릭과 동시에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시대에, 얼마나 많은 무형의 사유와 텍스트들이 ‘비 사랑’의 박스에 담겨졌을까? 눈을 흡족하게 하는 음식을 내오는, 불빛과 음악, 사람말소리 가득하고 적당히 어두운, lp 레코드처럼 고풍스러운 인테리어가 매력적인 그런 레스토랑에 가서 이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말하지 못하는 관계에서, 얼마나 많은 우주적 반짝임이 사랑이라는 자격을 얻지 못하고 사라졌을지.
우리는 어제 한시간동안 쓸데없는 얘길 아주 많이 했지. 움베르토 에코가 불평한 핸드폰과 케이블 채널의 이야기가 어떻게 지금 그대로 적용되는지, 90년대 영화와 넷플릭스에서 찾을 수 있는 차이가 어떻게 사진기 없던 시절의 그림과 지금의 그림에서 찾아지는지. 그렇다면 아무 미디어 없던 시절의 인간의 표현방식은 신체 그 자체였을텐데, 말과 표현 말야, 거기 집중된 모든 리소스가 얼마나 엄청난 영향력과 신화를 만들어 냈을지. 그래서 그당시에는 -고작 인간의 말이 - 몇 천년 살아남는 종교가 될 수 있을만큼 집중을 받아버린 - 어마어마했던 미디어가 아니었을지. MZ세대는 이제 종교를 ‘벗어난’ 것인지 아니면 트럼프와 앤드류 테이트도 종교인지. 언젠가 우린 이 종교의 분할에 지쳐 거대한 종교를 원하게 될런지. 나치즘은 종교였는지. 전쟁 이후 인간을 짓누른 거대한 무력감과 생존적 위기가 나치즘의 씨앗이었다면 우리는 인공지능 앞에서 어떤 종교를 원하게 될지. 듄 같은 미래가 올 지, 그런 미래가 온다면 어느 편에 서서 싸울 지, 그리고 그 종교와 돈이라는 종교 중에 무엇이 더 강력한 지 말야.
이 말들의 부딪힘이 내게 얼마나 큰 안전을 주는지 너는 모를거야. 나는 너의 말 앞에서 내가 한없이 나여도 된다는 사실을 느껴. 바다를 앞에 두고 한없이 모래를 파도 된다는거지. 너는 나에게 바다를 보라고 다그치지도 않고 물에 바지가 젖는다고 뭐라고 하지도 않아. 내 시간은 그저 내가 그 때에 멋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가득차. 물리적으로는 남는게 모래 자국 뿐일지라도, 내 삶이 그 짭짜름한 냄새와 파도소리와 모래 촉감으로 가득하게 만들어줘.
언젠가 내가 네게 가족에게 이기적으로 대하는것 같아 힘들다는 얘길 했을 때, 너는 내가 얼마나 예민하고 쉽게 지칠수 있는 사람인지를 얘기했어. 그리고 너는 ‘너의 이런점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생각하고 노력하는게 정말 대단하다고 했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심어린 인정과 존경이 고마워서 눈물이 막 났어. 나의 단점이 타인의 입에서 나올 때에 그 말이 이렇게 고마울 수 있는지 난 몰랐어. 나는 그때 서툰대로 살아도 대단하고 괜찮은 사람이었어.
어제의 대화는 그런 나의 단점을 (너는 이게 단점이 아니라고 할 테지만) 인정하는게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세계 -물론 나의 일부인- 를 인정하는 대화였지. 그런데 그건 사진으로 찍으면 온통 깜깜할거야. 빛과 시간의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순간들이었지.
우리의 가장 반짝이는 사랑의 순간들은 말야, 어떤 식으로 담아내질 수 있을까? 시간이 많이 지나서 우리가 서로에게 지치고 이 반짝였던 순간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때, 나는 어떤 식으로 ‘아 그래 이럴 때도 있었지’ 하며 나 자신을 놀래켜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몇 자 남기게 됐어. 이 글은 그 순간을 잘라 담지는 못하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다 라고 이 시공간에 손때 살짝 묻히는 글이지.
너를 만난게 이렇게 내 세상을 밀도있게 만드는 일이 될 줄 몰랐어.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