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풍경과 상업공간의 미래
1부에서 우리는 대림창고가 어떻게 성수동 재생의 상징이 되었는지, 천정부지 임대료에도 불구하고 왜 브랜드들이 몰려드는지, 무신사의 도시 생태계 구축전략을 살펴보았다. 2부에서는 성수동이 숏폼의 도시로 변해가는 현상과 미래 상업공간의 방향을 다룬다.
딸아이와 함께 걸은 성수동 거리에서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물건을 고르는 것보다 사진 찍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대형 미디어월, 독특한 인테리어, 브랜드 포토존 앞에서 모두가 스마트폰을 들고 있었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10분 동안 사진만 찍었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릴 완벽한 앵글을 찾는 데만 집중했다. 성수동은 말 그대로 숏폼의 도시가 되어가고 있다. 매주 평균 40~60개의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짧게는 하루, 길어야 몇 주만 운영된다.
저녁 8시, 낮에 관광객들을 불러모으던 팝업 매장이 마지막 손님을 내보낸다. 그 순간부터 철거가 시작된다. 단 3시간 만에 다시 팝업 문의를 붙인 공실로 돌아간다.
팝업스토어의 평균 운영 기간은 1~2주다. 한 달에 두세 번 공간이 완전히 바뀐다. 건축가로서 당혹스러운 현상이다. 전통적으로 건축은 영속성을 추구했지만, 성수동 상업공간들은 찰나성이 가치가 된다.
이 화려한 풍경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있다. 성수동 터줏대감 제화업자들, 피혁업체들이 하나둘 문을 닫는다.
팝업 매장은 1년 이상 장기 계약이 없어 임대료 5% 상승 제한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뚝섬 소규모 상가 공실률은 2024년 2분기 5.94%로 전년 대비 2% 상승했다. 성수동도 가로수길, 경리단길과 같은 젠트리피케이션의 전철을 밟고 있다.
성수동 거리를 걷다 보면 한 건물 앞에서 발걸음이 멈춘다. 마치 우주선이 착륙한 듯한 형태, 거친 노출 콘크리트의 압도적 존재감. 2025년 9월 문을 연 젠틀몬스터의 신사옥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다.
14층 규모의 이 건물은 더시스템랩 김찬중 건축가가 설계했다. 약 407억 원이 투입됐고, 콘셉트는되돌아온 미래다. 브루탈리즘 양식의 노출 콘크리트를 바탕으로 전례 없던 형태를 구현했다.오픈 직후부터 성수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건축가로서 흥미로운 점은 성수동이 점점 건축적 실험의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탬버린즈 성수 플래그십, 디스이즈네버댓 성수 사옥, 성수연방 등 패셔너블하고 미래지향적인 건축물들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이 건물들의 공통점은 주변 컨텍스트보다는 오브제같은 성격을 강하게 띤다는 것이다. 붉은 벽돌 창고들 속에서 의도적으로 이질적이다. 전통적 건축 비평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적이다. 좋은 건축은 주변 환경과 대화하고 도시의 맥락을 존중해야 한다고 배워왔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런 오브제적 건축은 한국의 숏폼 소비문화와 묘하게 잘 어울린다. SNS에 올릴 15초 영상을 위해서는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건물보다 강렬하게 튀는 건물이 필요하다. 인스타그래머블한 건축, 포토제닉한 파사드, 공유하고 싶은 공간.
건축가로서 나는 이런 현상을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한편으로는 우려스럽다. 건축이 SNS 콘텐츠의 배경으로만 소비되는 것은 건축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정직한 반영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은 분명 건축적 완성도를 갖춘 건물이다. 김찬중 건축가는 브랜드의 세계관을 건축 언어로 번역하는 실험을 진지하게 수행했다.
성수동의 이런 건축물들은 “공간x경험 경제”의 극단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공간 자체를 경험하고, 그 경험을 이미지로 소비하고, 다시 공유한다. 건축은 이 순환의 핵심 매개체가 된다. 이것은 건축의 퇴보일까, 진화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변화를 냉정하게 인식하고, 건축가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을 고민하는 것이다.
경험 경제의 극단화. 사람들은 SNS에 올릴 경험을 산다. 중요한 건 실제 매출이 아니라 바이럴 효과다.
속도의 자본주의. 한 달에 두세 번 공간이 바뀌며 엄청난 폐기물을 만든다. 하지만 빠르게 회전할수록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양극화의 심화. 하루 1,000만 원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대기업과 소상공인 사이의 격차는 너무 크다.
지역성의 소멸. 너무 빠른 변화는 지역 정체성을 지운다. 중소형 브랜드들은 뚝섬역, 송정동으로 밀려난다.
미래 상업공간은 플랫폼이 될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연결하고, 브랜드를 큐레이팅하며, 데이터를 수집·분석한다. 건축적으로는 유연성이 핵심이다.
상업공간은 콘텐츠를 생산하는 곳이 될 것이다. 건축가는 3차원 공간뿐 아니라 2차원 스크린에서 어떻게 보일지도 고려해야 한다.
현재 팝업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성동구의 공공 팝업스토어는 좋은 시도다. 동시에 건축가들은 더 지속가능한 리모델링, 재사용 가능한 모듈러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김성훈의 브런치스토리에서 "#01 흔들림 속에서 길을 찾다. 들뢰즈 철학으로 본 지속가능한 건축의 미래"편에서 관련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성수동을 찾는 이유는 원래 그곳의 진정성때문이었다. 미래 상업공간은 다시 로컬리티로 돌아가야 한다. 각 지역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
앞으로의 상업공간은 더욱 복합적이 될 것이다. 성동구가 출범시킨 성수 타운매니지먼트는 기업, 임대인, 임차인, 주민들이 자치단체와 함께 도시를 관리하는 민·관 협력 모델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가 물었다. “아빠, 성수동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글쎄. 지금처럼 계속 변할 거야. 문제는 그 변화의 방향이지.”
건축가로서 나는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의 역할은 단순히 아름다운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변화를 현명하게 이끄는 것이어야 한다고. 자본의 논리와 시장의 속도에 휩쓸리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변화를 수용하는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대림창고가 보여준 것처럼, 좋은 리모델링은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를 연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 보여주는 것처럼, 과감한 건축 실험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오브제로 소비되는 것을 넘어, 진정한 공간적 경험을 제공할 때 의미가 있다.
성수동의 미래는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건축가, 브랜드, 건물주, 소상공인, 행정가, 시민들 우리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15초짜리 숏폼이 아니라, 세대를 넘어 이어질 수 있는 진정한 도시의 이야기를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번엔 가족 모두가 함께 성수동을 다시 찾기로 했다. 아내도, 아이들도 모두 함께. 변화하는 성수동을, 변화하는 우리 도시를 함께 보고 싶다. 그리고 그 속에서 건축가로서, 한 사람의 국민, 시민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해보려 한다.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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