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방가르드, 두려움 없는 전진

미술사가 가르쳐준 변화의 용기

by 건축가 김성훈
미술사.jpg 고대부터 현대미술까지의 흐름, 건축가 노트

주말 오후, 책상 위에 펼쳐진 세계미술사 책을 읽고 정리를 해보았다. 형광펜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고, 노트에 정리하며, 고대 이집트, 그리스미술부터 현대미술까지 훑어 내려갔다.

그러다 문득, 내 건축가 노트를 펼쳤다. 그동안 미술사를 공부하며 적어둔 메모들이 빼곡했다.

"고대 이집트 - 영원성과 종교"
"그리스 - 조화와 균형, 아름다움의 추구"
"중세 - 그리스도교 미술, 로마네스크"
"르네상스 - 중세에 대한 도전, 인본주의로의 귀환"
"인상주의 - 사실주의, 낭만주의의 비현실적인 것에 저항"
"세잔 - 기존 미술과 다른 사물 자체의 본질에 집중, 현대미술의 시작"
"큐비즘 - 원근법 해체"

노트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나의 패턴이 보였다. 모든 시대가, 모든 사조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는 변화.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미술사는 도전과 변화의 역사다

고대 이집트는 영원을 그렸다. 파라오의 얼굴은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고, 신들의 형상은 절대적이었다. 그런데 그리스인들이 나타나 말했다. "아름다움이란 조화다. 균형이다. 인간의 몸이 곧 신성이다."

얼마나 파격적인 선언이었을까?

중세가 오자 그리스의 아름다운 사람의 모습을 한 신들은 다시 천으로 가려졌다. 절대적 신의 영광을 위해, 교회의 권력을 위해. 바로크의 화려함도 결국 신앙의 드라마를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러다 르네상스가 왔고, 사람들은 다시 그리스를 들여다봤다. "이성이 답이다. 인간이 중심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반기를 들었다. 신고전주의의 차갑고 완벽한 선에 반항한 낭만주의자들. 아카데미의 어두운 작업실을 박차고 나와 자연과 햇빛 아래서 그림을 그린 인상주의자들. 지속된 원근법과 단일 시점의 전통을 파괴하고,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본 모습을 기하학적 형태로 재구성한 큐비즘.

미술사를 공부하면서 깨달았다. 예술은 안주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대의 흐름은 늘 '지금'에 질문을 던진다는 것을.


건축과 도시도 마찬가지다

건축과 미술은 떼려야 뗄 수 없다. 고딕 성당의 첨탑은 바로크 회화의 드라마와 같은 언어를 말하고, 바우하우스는 근대건축의 시작이자 현대건축의 중요한 뿌리로, 근대건축의 선구적인 시도에서 출발하여 현대건축의 핵심 원칙을 확립했다.

나는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이 시대가 혼란스럽다. AI라는 새로운 문명의 도구가 등장했고, 코로나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던 공간과 커뮤니티의 의미를 산산조각 냈다. 사무실은 필요한가? 집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사람들은 어떻게 모여야 하는가?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두렵지 않다.


우리는 계속 전진한다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두려워했지만, 결국 그것을 통해 진화했다.

사진기가 나왔을 때 화가들은 "이제 우리는 끝났다"고 절망했다. 하지만 그들은 인상주의를, 표현주의를, 추상미술을 만들어냈다. 사진이 재현할 수 없는 것, 빛과 감정과 본질을 그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AI가 그림을 그리고 건축 도면을 생성한다고 해서 우리의 역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인간에게 정말 필요한 공간은 무엇인가? 기술이 재현할 수 없는 경험은 무엇인가?

미술사 01.jpg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근대예술의 시작 그리고 아방가르드, 건축가노트

아방가르드의 정신

나는 '아방가르드(Avant-garde)'라는 단어를 사랑한다.

전위. 최전선. 아직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향해 먼저 걸어가는 자들.

다다이즘이 기존 예술의 모든 규칙을 조롱했을 때, 사람들은 미쳤다고 했다. 초현실주의자들이 꿈을 캔버스에 옮겼을 때,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 더 넓은 예술의 지평을 갖게 되었다.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 초인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우리는 어떤 세상을 원하는가?

그 답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야 할 길이다. 기존의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고, 기존의 기준에서 넘어선 곳에서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자. 대중이 안전한 곳에 머무를 때 혼자서라도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자.

요즘 나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직접 설계하는 건축가이자, 위버멘쉬가 되어야 한다는 것.

변화는 두려움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AI의 시대가 오고, 세계가 재편되고, 우리가 알던 모든 것이 흔들린다. 하지만 그것이 종말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다.

미술사가 가르쳐준 가장 큰 교훈은 이것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도전하고, 실험하는 자만이 시대를 이끈다.

고대 이집트의 화가들은 영원을 그렸지만, 우리는 변화를 그린다. 중세의 예술가들은 신을 위해 일했지만, 우리는 인간의 가능성을 위해 일한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나만의 시각을 믿기로 했다. 기존의 기준보다 내가 던지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고. 안전한 답보다 불편한 실험이 더 가치 있다고.

아방가르드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저 오늘 하루, 어제와 다른 시도를 하는 것이다. 남들이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에 '정말?'이라고 물어보는 것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자체가, 새로운 예술이 될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수천 년 동안 그래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전위로, 아방가르드로.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작가의 이전글4일은 도시에서, 3일은 전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