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투스, 품격 있는 삶의 설계

건축가가 펼치는 삶의 지문, Habitus

by 건축가 김성훈

오늘은 3월 1일이다.

1월 1일과는 다르다. 1월의 새해는 어딘가 허공에 떠 있는 결심 같다. 그런데 3월 1일은 다르다. 학교가 시작되고, 봄 햇살이 각도를 바꾸고, 온 세상이 진짜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날. 상반기의 엔진이 걸리는 날. 나는 매년 이 날이 되면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이 있다.


나는 지금 어떤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가.


오늘은 오랫동안 브런치 독자들에게 꼭 소개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건축가로서 수년간 곁에 두고 읽어온 책, 그리고 그 안의 핵심 개념 하나. 이 개념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솔직히 충격을 받았다. 아, 내가 막연하게 느껴왔던 것에 이런 이름이 있었구나.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개념은 분명 삶의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비투스(Habitus). 누구에게나 있지만, 누구나 같지는 않은 것. 보이지 않지만, 결국 모든 것을 드러내는 것. 당신이 어떤 어른인지를 말없이 증명하는 것.

habitus.jpg 작가의 인생 지침서와 같은 Habitus, 새시작을 알리는 3월 첫날, 브런치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다.

우리가 이부진을 사랑하는 이유

이부진 귀티 .jpg 개인적으로 <우아함과 귀티>의 가장 표본이 이부진 호텔신라대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를 흠모한다. 단순한 관심이나 부러움이 아니다. 흠모에 가까운 감정.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미인들이 넘쳐난다. 매일 스크린과 화면을 가득 채우는 수많은 연예인들. 그들 중에도 빼어난 미모를 가진 사람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왜 유독 이부진인가.

그것은 단순히 그녀가 재벌이기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 재벌 상속인은 많다. 답은 바로 귀티다.

귀티. 우리말 중에 참 묘한 단어다. 억지로 만들 수 없고, 돈으로 살 수 없으며, 흉내 낸다고 생기지 않는다. 오랜 시간 특정한 환경과 교육과 경험이 몸의 결로 스며든 것. 얼굴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존재 전체에서 풍기는 격조. 그것이 귀티다. 이부진에게서 우리가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흔들리지 않는 절제, 화려하지 않은데 격이 있는 태도, 어떤 자리에서도 과잉되지 않는 언어. 오랜 법적 분쟁과 끊임없는 공적 시선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내면. 화려한 자리에서도 늘 가장 조용하고, 가장 단단한 사람. 많은 미인들이 아름다움으로 시선을 끌지만, 이부진은 그 아름다움 너머의 무언가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 시선은 한때 전 세계가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바라보던 것과 닮아있다. 다이애나 역시 왕실의 지위보다 그것을 뛰어넘는 인간적 품격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고통 속에서도 잃지 않은 우아함. 규칙 안에 있으면서도 규칙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움. 세상은 그런 사람을 본능적으로 알아보고, 그리고 깊이 사랑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녀에게서 느끼는 귀티, 그 무엇을 정확히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나는 그것을 아비투스(Habitus) 라고 부른다.


아비투스 , 삶의 지문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정의한 아비투스는 이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환경을 통해 몸에 배어버린, 의도하지 않아도 나오는 행동 방식과 가치관. 제2의 본성. 몸에 새겨진 삶의 지문.

습관(Habit)과는 다르다. 습관은 의식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아비투스는 반복이 몸 깊숙이 스며들어 더 이상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오늘은 책을 읽어야지"라고 결심하는 사람과, 책이 없으면 왠지 허전한 사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층위에 있다. 전자는 아직 습관을 만들려는 사람이고, 후자는 이미 아비투스가 된 사람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삶의 지문" 이라고 불렀다. 지문처럼 각자 고유하고, 지문처럼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다.

아비투스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사람들에게 폭로한다.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은 누구인지, 당신의 무엇을 믿어도 되는지.

말 한 마디, 위기 앞에서의 태도, 약한 사람을 대하는 시선. 우리는 이미 서로의 아비투스를 끊임없이 읽고 있다. 이부진의 귀티를 보며 우리가 느끼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돈이나 지위가 아닌, 몸에 완전히 스며든 품격의 총체.

부르디외는 이것을 구별짓기(Distinction) 라고도 불렀다. 그런데 지금 시대의 구별짓기는 예전과 다르다. 재산이나 신분으로 구별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지금은 아비투스의 질로 구별된다. 얼마나 가졌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있느냐로.

건축가로서 나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같은 땅 위에 지어진 건물이라도 설계도의 질이 건물의 품격을 결정한다. 아비투스는 바로 인간이라는 건물의 설계도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다. 이 설계도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고쳐 쓸 수 있다.


삶의 설계도 — 7가지 자본

그렇다면 그 설계도는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구성하는 힘을 7가지 자본으로 설명한다.

1. 심리자본 — 낙관주의, 열정, 끈기, 심리적 안정감. 이것이 없으면 나머지 모든 것이 모래 위의 건물이다. 오래 빛나는 어른들을 보면 예외 없이 여기서 답이 나온다. 위기의 순간에 무너지지 않는 것, 그것이 심리자본이다.

2. 문화자본 — 7가지 자본 중 가장 갖기 어려운 것이다. 돈으로 살 수 없고, 단기간에 쌓을 수도 없다. 전통적으로는 고전음악, 예술, 문학 같은 고급문화의 교양과 안목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 시대는 여기에 글로컬(Glocal) 감각이 더해진다. 세계를 집으로, 지역을 고향으로. 고급문화의 깊이와 세계를 품는 넓이, 이 둘을 함께 가진 사람이 21세기 문화자본의 완성이다.

3. 지식자본 — 아는 것이 많을수록 아비투스에 여유가 생긴다. 지식은 조급함을 없애준다. 한 분야의 깊이와 여러 분야의 넓이를 함께 가진 T자형 인간. 지금 시대는 그런 사람이 빛난다.

4. 경제자본 — 돈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자유, 지속성, 자기결정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 이 순서를 뒤집는 순간 경제자본은 오히려 아비투스를 망가뜨린다. 돈이 많아도 품격 없는 사람이 있고, 넉넉하지 않아도 품격 있는 사람이 있는 이유다.

5. 신체자본 — 어떻게 입고, 걷고, 관리하는가. 몸을 대하는 방식이 곧 삶을 대하는 방식이다. 이부진의 절제된 스타일이 그녀의 귀티를 먼저 말해주듯, 외형은 내면을 담는 그릇이다.

6. 언어자본 — 어떻게 말하는가.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과시한다. 품격 있는 언어는 결코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말이 정확하고 절제된 사람. 그 차이가 아비투스의 차이다.

7. 사회자본 — 누구와 어울리는가. 주변 사람이 당신을 완성한다. 계산적인 네트워킹이 아니라 좋은 사람들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 당신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평균이 곧 당신이다.


신사의 품격, 그리고 지금

신사의 품격.jpg 신사의 품격,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장동건배우는 건축가로 품격있는 어른으로서 열연을 하였다.

2012년, 드라마 《신사의 품격》이 화제였다. 한국 사회가 처음으로 "품격 있는 어른" 을 진지하게 소비하기 시작한 신호탄이었다. 공교롭게도 주인공은 건축가였다. 그래서 더욱 반가웠다.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그의 돈이 아니었다. 위기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 사람을 대하는 방식, 공간을 채우는 태도. 지금의 언어로 다시 읽으면 그것은 정확히 아비투스의 발현이었다.

세상이 바뀌었다. 같은 부를 가졌어도, 같은 지위에 있어도, 그의 아비투스가 그의 성품을 드러낸다. 어떤 위기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약한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성공했을 때 얼마나 겸손한지. 우리는 이제 그런 것들을 본능적으로 읽어낸다.

이제는 멋진 사람, 좋은 사람이 주인공이다. 이것은 트렌드가 아니다. 시대의 성숙이다.


오늘, 어떤 씨앗을 심을 것인가

아비투스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충분히 노력으로 바꾸고 가꿀 수 있다. 다만 하루아침에 되지 않는다. 봄꽃이 겨울 내내 땅속에서 준비하듯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래 쌓인 것이 결국 3월의 햇살 아래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가로서 나는 늘 이런 질문을 한다. 이 공간에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공간이 아비투스의 토양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머무는 곳이 우리를 조용히 빚어낸다. 공간을 설계한다는 것은 결국 그 안에 살 사람의 아비투스를 함께 설계하는 일이다.


오늘 나는 스스로에게 같은 질문을 돌린다.


7가지 자본 중 내가 가장 소홀한 것은 무엇인가. 올봄 어떤 공간에 더 자주 머물 것인가. 어떤 사람들과 더 깊이 연결될 것인가.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걷고, 어떻게 읽을 것인가.

거창한 선언이 아니어도 좋다. 봄은 언제나 조용히 온다. 아비투스도 그렇게 쌓인다.


좋은 어른이 되는 것은 평생의 건축이다. 나는 오늘, 그 설계도를 다시 펼쳐본다.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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