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틀리면 빠꾸. 냅다 뛰어와
나는 유독 '청춘'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靑, 푸를 청. 春, 봄 춘.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시절. 한자 두 글자에 이렇게 많은 것이 담겨 있다. 푸름과 봄이 만나 하나의 단어가 되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아름답다. 건축가, 사업가로 산다는 건, 늘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도전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가는 일이다. 어제의 설계가 오늘의 정답이 되지 않고,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 앞에서도 다시 백지를 펼쳐야 하는 일. 그래서인지 나는 청춘이라는 말이 내 직업과 닮아있다고 느낀다. 끝없이 새로 시작하는 것. 멈추지 않는 것.
그리고 이 단어를 입에 올리면, 어김없이 푸른 하늘이 먼저 떠오른다. 탁 트인 하늘, 그 색깔. 어쩌면 당연하다. 청춘이란 단어 안에 이미 그 푸름이 살아있으니까. 그래서 이 단어가 늘 기분 좋다.
오늘은 쌍둥이 딸들의 생일이다. 대학 입학식도 마쳤다. 그리고 이 계절,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는 모든 이들이 있다.
입학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2월 말의 햇살이 유난히 따뜻했다. 봄이 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쌍둥이 딸들의 생일이다. 스물이 되었다.
2007년 2월 28일 새벽, 파리의 병원에서 두 아이가 세상에 나왔다. 너무 작게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했다. 유리 너머로 들여다보던 그 작은 얼굴들을, 나는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그때 나와 집사람은 이 작은 생명체들을 감당하기에 어렸고, 난 인생에서 그 순간만큼 무력했던 적이 없었다. 머나먼 나라에서 집사람과 아이들을 책임지기엔 난 너무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학교를 다닌 지 얼마 안되는 나는 서툰 프랑스어로 의사 선생님의 말을 받아 적고, 집사람과 둘이 밤새 버벅거리며 아이들을 돌봤다. 장모님이 오셔서 1년가까이를 곁에 계셔 주셨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낯선 나라에서 우리 둘이 감당해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아마 그게 젊음이었고, 하느님이 주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그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다녔다. 유치원을 다니고 초등학교를 다녔다. 한국으로 돌아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보냈고, 대학 입학식을 했다. 평생을 함께 있었던 그녀들이 각자 다른 학교로. 처음으로 서로 다른 곳에서 각자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스무 해가 흘렀다는 게, 사진첩을 넘기듯 믿기지 않는다.
중년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젊을 때는 어른들의 말이 잔소리처럼 들렸다. "요즘 애들은 너무 각박해. 자기밖에 몰라." 그런데 나도 스물이었을 때 똑같은 말을 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될려고 그러냐고, 이 세대는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거냐고. 그 걱정들은 매 세대 반복되었고, 그럼에도 청춘은 늘 제 몫의 계절을 살아냈다.
지금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AI가 세상을 바꾼다 하고, 문명의 전환점이라는 말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 그래도 나는 저 아이들의 스물이 눈부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처음 맞이하는 봄의 설렘은 변하지 않는다. 그건 프랑스에서도, 한국에서도, 어느 시대에도 똑같았다.
살면서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면 된다. 그 말 한 마디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고, 그 이음이 결국 자신을 살게 한다는 걸 — 나는 파리에서의 그 긴 시간 동안 배웠다.
조금 실수해도 괜찮다. 길을 잃어도 괜찮다.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는 법을 익혀가는 것이라는 걸 이제 나는 안다.
그리고 우리 어른들은 그 뒤에서 조용히, 하지만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두근거린다는 감정은,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을 살아있게 만든다. 오늘 나는 입학식 날 아이들의 얼굴에서 그걸 봤다. 긴장과 설렘이 뒤섞인, 그 젊은 얼굴들을.
이제 그 아이들의 청춘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봄, 딸들만이 아니다. 새로운 학교로, 새로운 도시로, 새로운 일터로 첫 발을 내딛는 모든 이들이 있다. 처음이라 두렵고, 낯설어서 불안하고, 잘 할 수 있을지 자신 없는 그 모든 청춘들에게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작년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보다가 가슴이 먹먹해진 장면이 있었다. 아버지 관식이 딸 금명이의 손을 꼭 잡고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었다. 입학식 날도, 운동회 날도, 그리고 결혼식 날도 아빠는 늘 같은 말을 건넸다.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이다. 화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내 말처럼 느껴졌다. 잘 짜인 대사라서가 아니라, 그게 부모란 존재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단단한 말이기 때문이었다.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돌아와도 된다. 그게 되는 나이다. 아직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할 책임을 지기 전에, 일단 한번 해보는 것. 틀리면 다시 고르면 되고, 아니면 돌아오면 된다. 그 용기가 나중에 아무것도 해보지 않은 것보다 훨씬 값지다는 걸, 중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뒤에는 우리가 있다.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고, 어른들이 있다. 조용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지만 단단하게 버티고 있다. 그러니까 겁내지 말고 한번 해봐라. 괜찮다. 너희는 생각보다 훨씬 괜찮다.
봄이 왔다. 오늘 날씨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너네들이 너무 아름답다.
2026년 2월 28일 딸들의 스무 번째 생일날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