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말, 나는 봄을 읽고 있었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책을 읽는다

by 건축가 김성훈

벌써 2월 말이다.

오늘은 눈이 온다고 했다. 그런데 결국 눈도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렸다. 어쩌면 이게 더 2월 말답다. 완전한 겨울도, 완전한 봄도 아닌 그 경계 어딘가. 딱 지금 이 계절의 솔직한 표정이다. 그 어중간함 속에서 오히려 설렘이 온다. 진눈깨비는 겨울이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방식이니까.

우리 집 대문엔 며칠째 이 문구가 붙어 있다.

입춘대길 건양다경(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의 시작과 함께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

해마다 붙이는 문구지만, 올해는 볼 때마다 마음이 조금 다르게 두근거린다. 생각해보면 이 작은 행위 자체가, 스스로에게 거는 봄의 주문 같은 것이 아닐까. 봄은 이미 문 앞에 와 있다. 우리가 먼저 문을 열어야 할 뿐.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냥 오늘을 설렘으로 사는 사람이다.

대단한 독서가가 아니다.

나는 사업을 하고, 설계를 하고, 학생들을 가르친다. 회의와 마감과 강의가 뒤엉킨 하루들. 하지만 책을 읽는 1~2시간과 운동하는 30분~1시간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 잠을 줄여서라도. 왜냐면 그 시간만이 진짜 나에게로 돌아오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의식적으로 만든 루틴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이 시간이 없으면 하루가 허전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어떤 페이지를 읽게 될까, 그 작은 설렘이 하루를 시작하는 힘이 된다. 이번 2월은 연휴도 있어서 유독 그 시간이 풍성했다.

KakaoTalk_20260224_064319391.jpg 표지와 제목을 보면, 작가의 전하고자 하는 생각과 메세지가 떠오른다. 그래서 행복해진다.
KakaoTalk_20260224_064319391_01.jpg 나를 위버멘쉬로 이끌어준 2월의 책들

잠재의식이 고른 여섯 권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사이토 히토리의 1%의 부자의 법칙과 괜찮아 다 잘될 거야, 10년 후의 세계사, 운명을 보는 기술, 그리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사이토 히토리의 책들과 아비투스는 처음 읽는 게 아니다. N번째다. 그런데 읽을 때마다 다른 문장이 눈에 들어온다. 지난번엔 스쳐 지나쳤던 문장이 이번엔 가슴 한가운데를 정확히 찌른다. 그 책이 달라진 게 아니다. 내가 달라진 것이다.

그 사이, 10년 후의 세계사는 조금 다른 결의 책이었다. 행복이나 태도 같은 내면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세계의 이야기. AI, 기후, 지정학, 인구 변화. 10년 후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흥미로운 건, 이 책을 읽으면서도 결국 같은 질문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 미래를 읽는 것도, 결국 나를 읽는 일이었다.

그리고 어른의 행복은 조용하다. 이 책은 나와 함께 사업을 많이 해온, 내 멘토 같은 분이 선물로 준 책이다. 건네받는 순간부터 달랐다. 그분이 나에게 건네고 싶었던 마음이 책 속에 담겨 있을 것 같아서, 천천히 아끼며 읽었다.

여러 글들이 가슴에 와 닿았지만, 그중 한 문장이 오래도록 남았다.

"어른에게도 어른이 필요하다."

이 짧은 문장 앞에서 한참을 멈췄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그런 어른이 되고 있는가. 우리 부모님께, 우리 가족에게, 나의 직원들에게, 그리고 내 제자들에게. 나는 정말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답을 주는 어른이 아니라,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그런 어른.

다 읽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내가 이 책들을 하나의 질문을 품고 읽고 있었다는 것을. 의도한 게 아니었다. 그냥 끌렸고, 그냥 골랐고, 그냥 읽었는데.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행복, 품격, 태도, 어른다움.

잠재의식은 내가 의식하기도 전에 이미 내가 필요한 것을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마치 입춘대길 건양다경처럼. 나는 이미 스스로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책은 답이 아니라, 질문을 선명하게 한다

다독이 목표가 아니다. 나는 계속 배워야 한다.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일수록 더 많이 채워야 한다는 걸 안다. 상상력이 필요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필요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깊이가 필요하다. 책은 그 모든 것을 채워주는 가장 조용하고 확실한 방법이다.

올해 초 스스로에게 내건 목표가 있다. 위버멘쉬(Übermensch). 니체가 말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해가는 인간. 거창한 철학적 개념이 아니라, 나는 그것을 아주 일상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어제의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나. 2월의 끝에서,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조용히 느낀다. 단단해지고 있다.


봄은, 설레는 자에게 먼저 온다

오늘 마음이 많이 벅차오른다. 오랜만에 가볍게 먹은 와인때문일 수도 있다.

내 학생들이 졸업을 한다. 함께 고민하고 설계하던 그 학생들이 이제 세상으로 나간다. 우리 두 딸도 졸업을 하고, 곧 대학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끝과 시작이 같은 날 동시에 일어나는 것. 그게 2월이다. 오늘의 진눈깨비처럼, 겨울과 봄이 함께 존재하는 이 아름다운 계절의 경계에서.

내가 존경하는 사이토 히토리는 말했다. 행복해지고 싶으면 먼저 말하라고.

"나는 행복해, 나는 풍족해."

처음엔 그게 자기 최면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안다. 그것은 최면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꺼내는 행위라는 것을. 행복은 조건이 갖춰진 뒤에 오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을 그렇게 바라보기로 결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3월이 기다려진다. 이런 설렘을 가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2026년 2월, 진눈깨비 내리는 봄날의 문턱에서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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