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아비투스(Habitus)

아비투스, 품격 있는 도시의 설계

by 건축가 김성훈

지난 글을 올리고 나서도 한 가지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개인의 아비투스를 이야기했다. 한 사람의 습관과 취향과 태도가 쌓여 품격이 된다는 것. 7가지 자본이 어우러져 삶의 지문을 만든다는 것. 그런데 글을 마치고 나서 문득 창밖을 바라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이 도시는 어떨까.

우리는 결국 도시 안에서 산다. 그 도시가 우리를 빚고, 우리가 그 도시를 빚는다. 아비투스가 개인의 이야기라면, 그 개인을 품고 있는 도시 역시 아비투스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삶의 지문이 도시의 지문이 되는 것. 그리고 그 지문이 깊이 쌓일 때 비로소 품격의 도시가 탄생한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우리 도시는 지금 어떤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어떤 품격의 도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가.


공간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도시를 만든다

건축가로서 나는 늘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공간을 짓는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짓는 것인가.

공간은 배경이 아니다. 공간은 그 안에 사는 사람의 감각을 조용히 조율한다. 천장이 높은 도서관에서 자란 아이와 낮고 어두운 공간에서 자란 아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다르다. 매일 아름다운 골목을 걷는 사람과 삭막한 도로변을 지나는 사람은 삶을 대하는 온도가 다르다. 공간은 아비투스의 토양이다.

도시는 수백만 명의 아비투스가 동시에 형성되는 거대한 토양이다. 어떤 도시에 사느냐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역으로,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아비투스가 도시의 품격을 만들어간다. 이 순환이 도시 아비투스의 본질이다.


한국 도시의 아비투스 — 연결(Connection)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사회적 지위의 결과이자 표현이라고 했다. 한 개인의 아비투스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듯, 도시의 아비투스는 그 도시가 세계 앞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드러낸다.

지금 한국의 도시들은 세계의 시선을 받고 있다. 세계인들이 한국을 찾고, 한국의 골목을 걷고, 한국의 공간을 경험하려는 것. 이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한국 도시들이 오랜 시간 쌓아온 무언가를 본능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 도시 아비투스의 핵심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한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연결(Connection). 자연과 도시의 연결, 과거와 현재의 연결, 로컬과 글로벌의 연결. 이 연결의 감각이야말로 다른 어떤 나라 도시에서도 찾기 어려운, 한국 도시만의 고유한 아비투스다.

세 곳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청계천 — 자연과 도시가 다시 손을 잡다

청계천.png 청계천, 도시와 자연의 연결을 통해 서울과 서울 시민의 아비투스를 바꿔놓았다.

청계천을 걷다 보면 서울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콘크리트 빌딩 숲 한복판에 물이 흐른다. 물소리가 들린다. 새가 날아든다.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발을 담근다. 그런데 이 풍경이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한때 청계천은 콘크리트 고가도로 아래 완전히 덮여 있었다. 개발의 시대, 도시의 효율을 위해 자연을 감춰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다시 열었다.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물을 되돌렸다. 지금 청계천에는 수십 종의 조류와 어류가 서식한다. 도심 한복판에 생물종 다양성이 살아숨쉰다.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배경으로 물가를 걷는 사람들의 표정은 어딘가 다르다. 조금 더 느리고, 조금 더 부드럽다.

청계천이 서울 시민의 아비투스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자연을 밀어내는 것이 발전이라고 믿었던 시대에서, 자연을 도시 안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 진짜 품격임을 깨달은 것. 이것은 단순한 하천 복원이 아니었다. 도시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쓴 선언이었다. 그리고 그 선언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아비투스에 조용하지만 깊은 지문을 새겼다.


익선동 —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인테리어가 되다

익선동 .jpg 여러겹의 시간의 중첩되는 익선동, 그 시간의 켜가 공간의 아비투스를 형성한다.

청계천에서 조금 걸어 들어가면, 전혀 다른 결의 연결을 만난다.

익선동 한옥 골목. 처음 이 골목을 걸었을 때 나는 건축가로서 한참 걸음을 멈추었다. 100년 된 한옥의 뼈대가 그대로다. 좁은 골목, 낮은 처마, 작은 마당. 그런데 그 안에 카페가 있고, 음악이 흐르고,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는다. 과거의 형식이 현재의 삶을 담는 그릇이 된 것이다.

익선동이 특별한 이유는 이것이다. 헐지 않았다. 바꾸지 않았다. 그냥 그 안에 지금을 채워 넣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어느 새것보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시간이 인테리어가 되는 곳. 낡음이 감성이 되는 곳. 이것이 익선동의 아비투스다. 오래된 것이 낡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인 것이 오히려 가장 고유한 가치를 갖는다는 것.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자본의 핵심 — 복잡하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인식을 경작하는 것 — 을 익선동은 골목 하나로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성수동 — 낡음이 새로움과 대화하다

KakaoTalk_20260111_062456379_03.jpg 일전에 소개한 성수동 대림창고, 오래됨과 새로움이 공존하는 공간의 지문

익선동이 시간을 그대로 품은 곳이라면, 성수동은 시간 위에 새로운 것을 대담하게 올린 곳이다.

낡은 공장 건물 안에 세계적인 브랜드의 쇼룸이 들어서 있다. 수십 년 된 철공소 외벽에 감각적인 그래픽이 새겨진다. 철거하지 않았다. 덮지 않았다. 오히려 그 낡고 투박한 산업의 흔적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그 위에 지금의 것을 올렸다.

재생과 신축이 경쟁하지 않고 대화하는 곳. 과거의 흔적이 새로운 것의 배경이 아니라 오히려 그 새로운 것에 깊이와 맥락을 부여하는 곳. 이것이 성수동 아비투스의 본질이다.

성수동이 서울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힙해서가 아니다. 시간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자산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사람들의 감각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감각은 한국 도시들이 오랫동안 무의식 속에 쌓아온 아비투스 — 연결의 아비투스 — 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연결이 한국 도시의 품격을 만든다

청계천, 익선동, 성수동. 세 곳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자연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시간을 지우지 않는 것. 오래된 것과 새것이 경쟁하지 않고 서로를 더 빛나게 만드는 것.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하나의 감각이 있다. 단절이 아닌 연결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한국 도시들이 오랜 시간 몸으로 쌓아온 아비투스다.

그리고 이제는 그것을 의식적으로 가꾸어야 할 때다. 아비투스는 노력으로 키울 수 있다. 개인이 그렇듯, 도시도 마찬가지다.

지난 글에서 나는 좋은 어른의 아비투스를 이야기했다. 오늘은 좋은 도시의 아비투스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돌아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다. 품격은 갑자기 생기지 않는다. 무엇을 존중하고, 무엇을 연결하고, 무엇을 오래 쌓아왔느냐가 그 지문을 결정한다.

오늘 우리가 어떤 공간을 만들고, 어떤 자연을 지키고, 어떤 연결을 선택하느냐가 다음 세대가 살아갈 도시의 지문이 된다.도시의 아비투스는 결국 그 도시에 사는 우리 모두가 함께 써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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