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나에게 건넨 일침

혼란의 시대, 위버멘쉬는 징징대지 않는다

by 건축가 김성훈
니체 02.jpg <니체의 말>과 <니체의 위버멘쉬>중 가장 내가 좋아하는 문구들이다.

솔직히 고백한다. 나는 요즘 꽤 불안했다.

코스피는 오르고, BTS는 빌보드 1위를 찍고, 한국은 세계가 주목하는 나라가 됐다는데…정작 나는 업체들과 회의할 때마다 "물가가 올랐다", "건설비가 뛰어서 건설경기가 너무 안 좋다", "전쟁 때문에 자재 수급이 안 된다"는 말만 듣는다. 건축가인 나의 일들은 이렇게 건설과 부동산 시장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또한 AI는 매일 새로운 얼굴로 등장해서 "이제 당신 일도 내가 한다"고 속삭인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한국은 밖에서 보면 잘나가는 나라인거 같은데, 우리들의 삶은 팍팍하기 그지없다.

그 불안한 찰나에, 나는 니체를 만났다.

『니체의 말』과 『위버멘쉬』.

그동안 최소 3-4번은 읽었던 두 책은 2026년 3월 나에게 위로를 건네지 않았다. 대신 따귀를 날렸다.

니체 01.jpg 니체, 그의 말들은 정말 속된말로 뼈를 때린다. 촌철살인이다.

"징징대는 건 네 문제다"

니체는 말한다.


"여전히 기쁨은 부족하다. 더 기뻐하라. 사소한 일이라도 한껏 기뻐하라.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처음엔 이 말이 공허하게 들렸다. 기뻐?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데 곱씹을수록 알게 됐다. 니체는 "행복한 상황에서 기뻐하라"고 말한 게 아니다. 조건과 상관없이 기뻐하는 것 자체가 힘이라고 말한 것이다.

불안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AI가 무섭고, 경기가 나쁘고, 세상이 혼란스러운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무너뜨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전적으로 내 안에서 결정된다.


"풍요로움은 스스로에게 있다. 사람은 대상물에서 무엇인가를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물에 촉발된 자신 안의 무언가를 스스로 찾아내고 이끌어내는 것이다."


세상이 팍팍한 게 아니다. 내가 팍팍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영원회귀, 가장 무거운 질문

니체 철학 중 나를 가장 세게 흔든 개념은 영원회귀다.

"지금 이 삶을, 단 하나의 변경도 없이, 영원히 다시 살아도 좋은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한동안 멈췄다.

후회한 선택들, 흘려 보낸 시간들, 충분히 기뻐하지 못한 날들, 그것들을 포함한 이 삶 전체를 다시 살겠냐고?

니체는 이것을 심리 테스트로 제시한 게 아니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삶을 살라는 요청이다.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나는 지금 그런 하루를 살고 있는가? 오늘 내가 한 선택들을, 나는 다시 골라도 괜찮은가.이 질문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경고다. 지금 당신이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살지 않고 있다는 신호.


아모르 파티, 네 인생 그리고 운명 전체를 사랑하라

니체는 한 발 더 나아간다.

영원회귀가 질문이라면, 아모르 파티(Amor Fati)는 그 답이다. 운명을 사랑하라.

생각해보면 지금 이 순간도 불안하고, 팍팍하고, 어딘가 버거운 이 지금도 내 인생의 한 페이지다. 지워야 할 페이지가 아니라, 내가 살아낸 페이지다.

코스피가 오르든 내리든, AI가 밀려오든, 건설비가 치솟든, 경기가 어렵던 그 모든 혼란 속에서 오늘도 버티고 일하고 생각하고 있는 이 삶이 사실은 꽤 대단한 것 아닌가. 정말 난 나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아모르 파티는 "고통도 참자"는 인내의 철학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이 모든 것이 좋다" 고 먼저 선언하는 긍정의 철학이다.

잘나갔던 날도, 무너졌던 날도, 프랑스에서 보낸 세월도, 귀국 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던 날도 전부 나다. 전부 지금의 나를 만든 사건들이다.

그러니 지금 이 어려운 순간도 마찬가지다.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살아가야 할 내 인생의 일부로 껴안을 것.

그리고 그 인생을 그저 견디는 것으로 끝내지 마라.


"자신을 늘 개척해나가는 자세를 갖는 것이 이 인생을 최고로 여행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개척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아모르 파티의 완성이다.


"기뻐하라. 이 인생을 기뻐하라."


어렵다고 느끼는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위버멘쉬, 나를 뛰어넘는 사람

위버멘쉬(Übermensch)는 슈퍼히어로가 아니다. 특별한 능력을 가진 선택받은 인간도 아니다.

위버멘쉬란, 어제의 나를 오늘 뛰어넘는 사람이다.


"자신을 늘 새롭게 하라. 과거에는 틀림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은 잘못된 것으로 여겨진다."


세상이 정해놓은 기준을 따르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자신만의 법칙으로 삶을 주도한다. 어떤 고난에 부딪혀도, 끊임없이 자신을 재창조하며 한계를 뚫고 나아간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이 말은 강자의 허세가 아니다. 고통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다.

AI가 두렵다면, 그 두려움이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드는 숫돌이 될 수 있다. 시장이 어렵다면, 그 어려움이 내 사고를 더 깊게 파고들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 시련이 내 안에 숨겨진 힘을 끌어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이 글은 나 자신에게 쓰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이야기처럼 썼지만, 사실 이 글의 첫 번째 독자는 나다.

김성훈, 징징대지 마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기뻐해라. 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잘나갔던 날도, 힘들었던 날도, 지금 이 순간도 전부 네 인생이다. 전부 사랑해라. 그리고 그 인생을, 끝까지 개척하며 최고로 여행해라.

기뻐하고 또 기뻐해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것은 배경일 뿐이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나다.


"세상에 존재하면서 이 세상을 초월하여 살아라. 확고한 자신을 가지고 강인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나는 위버멘쉬다. 적어도, 위버멘쉬를 향해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위버멘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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