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의 아리랑 & 우리가 아직 받지 못한 프리츠커 상

세계가 한국을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건축은 어디에 서 있는가

by 건축가 김성훈
광화문.jpg 2026년 3월 21일 BTS의 새앨범 아리랑이 울려퍼진 광화문 광장

오늘 나는 BTS의 공연을 보았다.

무대는 광화문이었다. 경복궁의 처마 선이 저녁 하늘을 가르고, 그 앞에서 수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리듬으로 흔들렸다. 멋진 퍼포먼스였고, 아리랑을 테마로 한 구성은 분명히 감동적이었다. 그런데 나는 공연 내내, 무대 위의 그들보다 무대 뒤의 풍경에 자꾸 눈이 갔다.

600년의 시간이 쌓인 광화문. 조선의 돌과 현대의 빛이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그 장면. 세계 어디에서도 복제할 수 없는 그 장소성. 나는 건축가여서 그런지, 공연보다 그것이 더 벅찼다.


서울은 대단한 도시다.

조금만 걸어도 과거와 현재가 교차한다. 경복궁 돌담 옆에 미술관이 있고, 600년 된 한양도성 성벽 위로 현대 아파트 스카이라인이 겹친다. 한강은 여전히 흐르고, 북촌의 좁은 골목, 서촌의 오래된 빵집, 을지로의 금속 가공 골목 사이로 새로운 감각의 공간들이 조용히 파고든다.

우리는 이미 이렇게 멋진 공간들 속에 살고 있다. 그 사실을, 오늘 광화문의 그 풍경이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겐 아직 프리츠커상이 없는가.


프리츠커상 수상자 작품 .jpg 2026년 프리츠커상 수장자 스밀랸 라디치(Smiljan Radić)의 작품, 지역 채석장의 바위들을 활용한 레스토랑

얼마 전 2026년 수상자 발표를 보며 잠깐 그 생각이 들었다.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1979년 미국의 하얏트 재단이 제정한 이 상은, 건축을 통해 인류와 환경에 탁월한 기여를 한 건축가에게 매년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진다. 렘 콜하스, 안도 다다오, 자하 하디드.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 건축의 거장들이 거쳐 간 상이다.

올해의 주인공은 칠레의 건축가 스밀랸 라디치(Smiljan Radić). 바람과 빛과 돌로 건축하는 사람. 그리고 10년 전, 같은 상이 또 다른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에게 돌아갔던 것을 떠올렸다. 작은 나라 칠레가 10년 사이에 두 명의 수상자를 냈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늘 광화문의 그 장면을 보고 나서, 나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우리는 믿기 어려운 속도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우리는 정말 먹고 살기 급급했다. 그 시절의 한국이 오늘날의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1인당 GDP 35,000달러를 넘어섰고, 삼성과 현대의 기술은 세계 시장을 움직이며, 오늘처럼 광화문 한복판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공연이 열린다. 한류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현상이 되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건설 기술과 엔지니어링은 이미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중동의 초고층 빌딩도, 동남아의 대형 인프라도 한국의 손을 거친다.

그렇다면 K건축이 세계 무대의 중심에 서는 것 역시,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마치 지금의 한류처럼.


다만 건축과 도시는, 팝송이나 드라마와는 조금 다른 속도로 익는다.

오래 끓인 사골국처럼, 그것은 층층이 쌓여야 한다. 건축가에 대한 사회적 존중,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소중히 여기고 연결하려는 국가의 의지, 그리고 공간의 가치를 알아보는 시민들의 감수성. 이 모든 것이 오랜 시간에 걸쳐 함께 우러나야 한다.

프랑스에서 살던 시절이 떠오른다. 아이들 학교 학부모 모임에 처음 갔을 때, 낯선 동양인을 향한 시선의 온도는 분명히 달랐다. 그런데 내가 건축가이고, 파리에서 실무를 하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분위기가 달라졌다. 눈빛이 바뀌었고, 질문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나와 가까워지고 싶어서 건축 공부를 따로 했다는 친구들도 생겼다. 그것이 프랑스 사회에서 건축가의 자리였다. 직업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는 문화적 좌표.

우리도 그 감수성을 키워가고 있다.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나는 그 점에서 오히려 희망적이다.


한국은 정말 멋진 나라다.

기술도 있고, 문화도 있고, 오늘처럼 세계를 감동시키는 에너지도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사는 공간과 도시를 대하는 의식을 한 뼘 더 높이는 것이다. 건축과 도시, 그리고 공간이 좋아야 우리의 삶도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멋진 공연은 하루의 감동을 주지만, 멋진 공간은 매일의 삶을 바꾼다.

나도 여기에 보탬이 되는 건축가가 되어야겠다. 오늘 광화문의 그 풍경, 시간의 켜가 쌓인 그 장소 앞에서 이 공간과 역사를 가진 나라의 건축가라는 것이 새삼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동시에, 그 무게가 느껴졌다.


프리츠커상을 부러워하다가, BTS의 공연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는 이미 충분히 훌륭한 공간들을 가지고 있다. 시간의 연속성이 살아있는 도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골목, 그 위에서 세계를 향해 노래하는 사람들. K건축이 세계에 알려지는 것은 지금의 한류처럼, 이미 시작된 일의 연장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하나다.


진정한 한국적 건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세계와 공명할 수 있는 한국의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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