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Philosophy)과 건축(Architecture)
Philosophie. 철학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philein(필레인) 과 sophia(소피아) 의 결합이다. 사랑한다, 그리고 지혜. 철학이란 결국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다. 그리고 지혜를 사랑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묻는다는 것이다. 왜 존재하는가. 왜 그러한가. 왜 그래야 하는가.
Architecture. 건축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arkhē(아르케) 와 tekhnē(테크네) 에서 왔다. 아르케 는 단순히 "으뜸" 혹은 "최초"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물의 근원, 모든 것의 시작점이라는 뜻이다. 테크네 는 기술이자 예술이다. 즉 건축이란, 근원을 탐구하는 기술이다.
철학은 왜를 묻고, 건축은 그 근원에서 시작한다.
두 단어는 처음부터 같은 출발선에 서 있었다.
20년전 나는 프랑스 건축학교에서 처음으로 벙어리가 되었다.
프랑스어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지도교수의 질문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가 물은 것은 단 하나였다.
"당신은 왜 이것을 하고 싶습니까?"
Pourquoi? 왜?
나는 그 두 글자 앞에서,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이 모래성이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나는 오랫동안 건축의 테크네, 기술의 부분만을 갈고닦으며 아르케, 근원의 물음은 한 번도 제대로 품어본 적이 없었다. 파리에서 지도교수의 질문 앞에 벙어리가 된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건축이라는 단어 안에 이미 "왜"가 살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모른 채 건축을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유학을 가기전 나는 이쁜 디자인을 잘했던 건축학도였다.
스케치, 3D드로잉이 좋았던 나는 공모전에서 여러 상도 탔다. 교수들은 내 이름을 기억했고, 전시회에 내 작품이 걸리는 것을 보고 신도 났었다. 나는 그것이 나의 실력이라 믿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그것이 건축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프랑스 건축학교에와서 논문을 쓰기 시작하자, 나는 처음으로 내 안의 공백을 마주했다.
나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왜” 를 물어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초창기 수능 세대였다. 말 그대로 주입식 교육의 끝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사람이었다. 수학 문제의 풀이 과정조차 "왜 이렇게 되는가"가 아니라 "무조건 이렇게 외워라"가 정답이던 시대. "왜"라는 질문은 교실 안에서도, 사회 안에서도 통용되지 않았다. 묻는 것보다 외우는 것이 미덕이었고, 사유하는 것보다 빠르게 답을 내는 것이 능력이었다.
그러니 건축학도가 된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왜 이 형태인가. 왜 이 공간인가. 왜 이 사람에게 이 건축이 필요한가. 이런 물음들 앞에 나는 완전히 빈손이었다.. 철학이 없었다. 문제의식이 없었다. 그리고 거기에 내가 없었다.
지도교수의 그 질문은 내 자신감을 무너뜨린 게 아니었다. 존재하지 않던 것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것이, 내 인생에서 가장 귀한 순간이 될 줄은 그때 몰랐다.
프랑스 학문에는 Problématique(프로블레마티크) 라는 개념이 있다.
우리말로는 "문제제기"로 옮길 수 있지만, 그 온도는 전혀 다르다. 이것은 단순한 연구 주제가 아니다. 왜 이 질문이 지금, 이 시대에, 이 세상에 던져져야 하는가 에 대한 근원적인 성찰이다.
프랑스에서는 어떤 논문도, 어떤 설계 프로젝트도 이 물음 없이 시작할 수 없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화려해도,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Problématique(프로블레마티크) 가 없으면 그것은 답 없는 해결책이다.
나는 그것을 배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어의 장벽이 아니었다. 사고의 깊이의 차이였다. 한국에서 나는 어떻게 만들까 에 답하는 훈련만 받았다. 프랑스는 내게 왜 만드는가 를 먼저 물었다.
철학은 언제나 WHAT과 WHY에서 시작한다. 건축 계획도 그래야 한다고, 나는 그제서야 처음으로 이해했다. 아르케 를 모른 채 테크네 만 갈고닦던 내가, 비로소 건축의 진짜 출발점을 찾은 순간이었다.
강의실에서, 그날의 내가 다시 보였다
몇 일전 학교 수업. 새 학기가 막 시작된 터라 학생들의 발표는 아직 화려한 렌더링도, 완성된 이미지도 없었다. 오직 말로, 생각으로만 자신의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자리였다.
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물었다.
"왜 이 컨셉인가요?"
잠깐의 침묵.
"왜 이 공간이어야 했나요?"
또 한 번의 침묵.
그 침묵이 낯설지 않았다. 그것은 파리에서 내가 만들었던 침묵과 정확히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침묵을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왜"가 왜 중요한지, 이 물음 없이 설계를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이야기하며 수업을 마쳤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책상에 앉았을 때, 마침 전날 펼쳐두었던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니체의 문장이었다.
"자신의 '왜'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면, 길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싶은지, 왜 그것을 원하는지, 왜 그렇게 되고 싶은지, 왜 그 길을 가고자 하는지… 그 같은 물음에 깊이 사고하지 않고 명백히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왜'라는 의문에 명백한 대답을 제시할 수 있다면 이후의 모든 것은 매우 간단해진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확했다.
강의실에서 내가 학생들에게 하려 했던 말을, 니체는 이미 이렇게 써두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나는 건축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지금 막 자신의 길을 걷기 시작한 나의 제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건축가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간 기획가. 그리고 삶의 기획가.
단순히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다. 공간을 통해 사람의 삶을 기획하고, 도시의 이야기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설계하는 것은 벽과 바닥과 지붕이 아니다. 그 안에서 펼쳐질 누군가의 아침이고, 가족의 저녁 식탁이고, 한 사람의 일과 쉼과 만남이다. 공공 공간 하나가 완성되면, 그 골목을 걷는 사람들의 하루가 바뀌고, 그 광장에서 생겨나는 관계들이 달라지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결이 조금씩 변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본질적으로 사고하는 직업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공간이라는 언어로 삶의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
민간 클라이언트에게는 그가 가진 자산의 가치를 최대한 높이고 그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공공 클라이언트에게는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문화적·정신적 가치를 공간으로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
그러니 "왜"는 단순한 철학적 질문이 아니다.
이 공간으로 나는 저 사람에게 어떤 행복을 줄 수 있는가? 이 프로젝트가 이 도시에, 이 마을에, 어떤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이것이 건축가의 Problématique(프로블레마티크) 다. 설계 도면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완성된 공간의 모든 곳에 스며 있어야 하는 것. 그리고 이 물음에 진지하게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기술자가 아닌 삶의 기획자가 된다.
사실, 이 글은 나에게 쓰는 편지이기도 하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이야기는 학생들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다.
경력이 쌓이고, 프로젝트가 많아지고, 일상이 바빠질수록 나 역시 때로 "왜"를 잊는다.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답하다 보면, 일정에 쫓기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그 물음을 던지는 것을 멈춰버릴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벙어리가 되었던 20년전의 나를 떠오른다. 그 침묵이 사실은 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선물이었다. 그 당혹감이 나를 처음으로 진짜 물음 앞에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나의 직업, 건축가를 사랑한다.
생각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묻는 직업이기 때문에. 공간 하나에 한 사람의 삶을 담아야 하는, 그 무게를 기꺼이 짊어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이 일은 아름답다.
훌륭한 건축은 훌륭한 "왜"에서 시작한다.
나는 지금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
나는 왜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은가? 이 공간이 완성되었을 때, 저 사람의 삶은 무엇이 달라져 있어야 하는가? 나는 이 건축으로 어떤 삶을 세상에 남기고자 하는가?
나는 지금, 왜 그 공간을 설계하고 있는가?
그 답이 선명할수록, 내가 만드는 공간은 더 깊은 곳에서 사람들의 삶에 닿을 것이다.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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