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년을 건너온 질문
1886년.
조선과 프랑스가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 첫 악수는 그리 아름답지 않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1866년, 병인양요가 있었다.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략했다. 표면적 이유는 조선이 프랑스 선교사들을 처형했다는 것이었다. 총과 함포가 오가던 그 해를 기억하는 조선에게, 프랑스는 낭만의 나라가 아니라 위협의 나라였다. 이후로도 프랑스는 끈질기게 조선의 문을 두드렸다. 처형된 선교사에 대한 사과를, 선교의 자유를, 통상 조약 체결을 요구하며. 조선은 버텼다. 흥선대원군이 버티는 동안은.
그러나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었다. 1876년 일본과의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조선은 미국, 영국, 독일과 차례로 문을 열었다. 열강의 파도 앞에서 프랑스와의 수교 역시 불가피한 선택이 되었다.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 낭만과는 거리가 먼, 시대의 압력이 빚어낸 조약이었다.
그렇게, 두 나라의 140년이 시작됐다. 썩 나이스하지 않은 출발이었다.
그런데 지난 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가 서울을 찾았다. 두 나라의 정상이 나란히 섰다. 그 장면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멈췄다. 병인양요의 포성, 강압적 조약의 기억, 그 모든 것을 지나 지금 이 자리가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역사란 참으로 묘한 것이다. 상처에서 시작한 관계가, 시간을 지나며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해간다. 140년이라는 시간은, 두 나라 사이의 거리를 완전히 다시 썼다.
요즘 파리를 걷다 보면, 한국어가 들린다. 루브르 앞에서도, 마레 지구 카페에서도, 몽마르트르 언덕 위에서도. BTS의 노래가 파리의 밤을 물들이고,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거실을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은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구 반대편 사람들의 입에 올렸다. 김치는 파리 유기농 마켓에서 팔리고, 한국 드라마가 프랑스 가정의 저녁 시간을 채운다.
1866년 포성이 울리던 강화도가, 2026년 BTS의 노래로 파리를 채우는 나라가 됐다. 이 반전은 어떤 드라마보다 극적이다.
대한민국의 문화적 위상은 이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 가지 솔직한 아쉬움을 꺼내야겠다.
K-팝, K-드라마, K-푸드 우리는 전 방위적으로 세계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러나 건축은 어떤가. 한국 건축가 중 세계 건축의 최고 권위인 프리츠커상을 받은 사람이 있는가. 프랑스, 일본, 중국에도 프리츠커 수상자가 있는 지금, 우리 건축계는 아직 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K-컬처가 세계를 매혹시키는 이 시대에, 유독 도시와 건축만큼은 아직 조용하다. 건축을 업으로 삼은 나로서는, 솔직히 많이 아쉽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바로 지금이 기회다.
〈오징어 게임,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드라마 속 골목과 계단, 도시의 풍경이 함께 주목받았다. BTS가 광화문 광장에서 노래할 때, 전 세계 팬들은 그 공간을 함께 느꼈다. 세계는 지금, 한국의 문화만이 아니라 한국의 도시 자체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 사랑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러나 나는 이 사랑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유행은 지나간다. K-팝의 열풍도, 드라마의 인기도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도시의 품격은 다르다. 파리를 사람들이 백 년 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하는 이유는 에펠탑 하나 때문이 아니다. 그 도시가 가진 공간의 깊이, 삶의 방식, 사람을 머물게 만드는 철학, 그것이 파리를 시대를 초월한 도시로 만든다.
우리도 그런 도시를 가질 수 있다. 아니, 가져야 한다.
프랑스에서 파리지엥으로서 건축을 배우고 경험하고, 한국에서 도시와 공간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나는 두 나라의 도시를 동시에 바라보는 특이한 시선을 갖고 있다. 그 시선으로 보면, 파리가 단순히 낭만과 패션의 도시라는 이미지 뒤에 얼마나 치밀하고 지속가능한 도시 철학이 숨어 있는지가 보인다.
많은 사람이 파리를 오해한다. 에펠탑, 루브르, 샹젤리제, 아름다운 것들의 목록으로 파리를 기억한다. 그러나 파리의 진짜 비밀은 다른 곳에 있다.
2024년 올림픽을 생각해보자. 파리는 새 경기장을 짓는 대신, 센 강을, 에펠탑 앞 광장을, 베르사유 궁전을 그대로 무대로 삼았다. '완전히 개방된 대회(Games Wide Open)' 그 슬로건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었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하고, 새로운 것을 위해 오래된 것을 지우지 않겠다는 도시 철학의 선언이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15분 도시' 개념도 파리에서 시작됐다. 걷거나 자전거로 15분 안에 일상의 모든 것이 해결되는 도시, 그것은 교통 정책이 아니라, 사람이 도시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신념의 산물이다.
나는 그 도시에서 건축을 배우며 천천히 깨달았다. 파리가 아름다운 이유는 에펠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그 도시를 오래도록 사랑받게 만드는 것은, 돌 하나하나에 새겨진 공간의 철학이라는 것을.
썩 좋지 않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140년이 지난 지금, 한국과 프랑스는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방한은 단순한 외교적 이벤트가 아니다. 두 나라가 이제 상처와 갈등의 역사를 넘어, 문화와 도시의 미래를 함께 이야기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신호다.
이 시점에, 나는 프랑스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한국에서 도시를 만드는 건축가로서 한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파리와 프랑스의 도시철학을 독자들에게 알려주고자 한다. 파리의 그 비밀들을.
K-컬처가 세계를 사로잡은 이 열기를, 이번엔 도시의 품격으로 이어받자. 파리가 어떻게 오래된 것을 지키면서 미래로 나아갔는지. 어떻게 높은 인구 밀도 속에서도 사람들에게 여유를 주었는지. 기후 위기와 저출생, 도시 양극화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도시가 어떻게 응답했는지.
그 이야기를 독자들과 함께, 몇 편에 걸쳐 풀어내려 한다.
포성으로 시작한 140년이, 이제 도시의 지혜를 나누는 이야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두 나라가 함께 쓰는 가장 아름다운 챕터일지 모른다.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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