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의 낙원 & 도시의 낙원

도시가 잠깐 부드러워지는 그 여백에 대하여

by 건축가 김성훈


image.png 소문의 낙원의 가사, 지친 나그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리를 내어준다는 내용. 우리 도시에게 필요한건 악뮤가 말한 "낙원"이 아닐까?
image.png 소문의 낙원 뮤직비디오

중년이 된 나이 탓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시대 전체가 무언가를 잃었다는 걸 조금씩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도.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고, 심리학자들은 연결의 부재를 말하고, 사회학자들은 공동체의 해체를 경고한다. 그리고 뮤지션들은 노래한다.

얼마 전 악뮤(AKMU)의 새 곡 '소문의 낙원'을 들었다.

"잠깐 앉아요. 따뜻한 스프와 고기가 있어요."

60~70년대 블루스 포크풍의 빈티지한 선율 위에, 순수 한글 가사만으로 채워진 이 노래는 지친 나그네에게 아무 조건 없이 자리를 내어준다.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세상의 잣대와 고통이 힘을 잃는 곳. 그것이 악뮤가 노래하는 낙원이다.

노래가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 공간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시대, 그리고 낙원의 공간

지금 우리는 이상하게도 행복을 자꾸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기업들은 직원의 웰빙을 이야기하고, 도시는 삶의 질을 지표로 내세운다. 유발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류가 역사상 가장 풍요로워졌지만 행복해졌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그 경고가 오늘 이렇게 현실로 느껴질 줄은 몰랐다.

우리 시대의 낙원은 어디에 있는가. 스마트폰 화면, 내 집 침대, 넷플릭스가 흘러나오는 어두운 방. 그것이 오늘 우리가 찾는 안식처가 되어버렸다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건축가로서 나는 이 질문을 다르게 묻고 싶다.

그 낙원이, 공간으로 존재할 수 있을까?


4월이면 사람들은 왜 밖으로 나오는가

벚꽃이 피면 사람들은 나온다. 여의도로, 경복궁으로, 남산으로. 평소엔 바쁘다던 사람들이 기꺼이 긴 줄을 서고, 붐비는 인파를 감수하고, 먼 길을 걷는다.

왜일까.

꽃이 특별히 아름다워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아무 말 없이 옆에 있어도 되는 사람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은 것이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은 그 순간. 도시가 잠깐 부드러워지는 그 느낌. 계절이 우리에게 그 핑계를 주면, 우리는 비로소 바깥으로 나온다.

어쩌면 우리는 늘 그런 공간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이 일상 속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벚꽃놀이의 열기는 어쩌면 우리 도시가 평소에 그런 공간을 충분히 품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일 수 있다. 일 년에 한 번, 꽃이 핑계를 만들어줄 때만 우리는 그 낙원에 가까워진다.


커뮤니티의 어원이 말하는 것

'커뮤니티(Community)'의 어원은 라틴어 'communitas'다. '함께'를 뜻하는 'con-'과 '선물·의무'를 뜻하는 'munus'의 합성어. 즉, 커뮤니티란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관계"이자 "공동의 나눔"을 뜻한다.

공간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선물이 되는 공간. 악뮤가 노래한 낙원이 내면의 심리적 안식처라면, 나는 건축가로서 그것을 물리적인 공간으로 번역하고 싶다.

13년을 살았던 파리를 생각한다. 파리의 낙원은 거창하지 않았다. 골목 안 작은 광장, 카페 앞 두 개의 철제 의자, 센강변의 낡은 벤치. 그 공간들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앉으면 도시가 나를 품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공공공간의 힘이다.


거대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웅장한 문화광장이 아니다.

그늘 좋은 벤치 하나. 작은 분수가 흐르는 동네 공원. 비를 피할 수 있는 버스 정류장 하나.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앉아 있을 수 있는 작은 마당. 단순한 꽃 몇 그루가 있는 소박한 정원. 그것으로 충분할 때가 많다.

지친 발걸음을 잠깐 멈출 수 있는 그 작은 여백들이 도시 곳곳에 스며들어야 한다. 예산을 소진하기 위한 공사가 아니라, 준공 이후 아무도 찾지 않는 거대한 광장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이 머무는 공간.

진짜 커뮤니티 공간은 규모의 문제가 아니다. 철학의 문제다. 이 공간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어떤 인간의 감각을 회복시키려는 것인지를 먼저 묻는 설계. 그것이 다르면, 작은 벤치 하나도 낙원이 될 수 있다.


소문의 낙원, 도시 곳곳에

악뮤는 노래했다. 낙원은 멀리 있는 이상향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주는 관계 속에, 내면의 평화 속에 있다고. 나는 그 낙원이 우리 도시의 골목에도, 동네 어귀에도, 버스 정류장 옆에도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거창한 이름 없이, 작고 조용하게, 그러나 분명히.

그런 공간이 도시 곳곳에 소문처럼 퍼져나간다면 어떨까. 어디선가 들었는데 가봤더니 정말 좋더라는, 그런 '소문의 낙원'들이.

지속가능한 도시는 건물의 에너지 효율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느리게 걸어도 되는 골목, 모르는 사람과 잠깐 눈이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은 광장, 홀로여도 외롭지 않은 공원 벤치. 그런 공간들이 쌓여 진짜 지속가능한 도시가 된다.

행복을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건축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바로 그런 공간을 꿈꾸고, 설계하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잠깐 앉아도 되는 곳. 조건 없이 쉬어가도 되는 곳.

우리 도시에 그런 낙원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작가의 이전글한불 140주년 기념, <파리,지속가능한 도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