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니체가 내게 일침을 놓더니, 이번엔 악뮤가 왔다

by 건축가 김성훈
악뮤 가사.jpg 악뮤의 신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가사

안개가 자욱한 아침이었다.

일요일 8시 미사를 가는 길, 차 안에서 시야가 흐렸다. 안개 낀 도로는 묘하게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다. 서두를 이유가 없어지는 느낌. 그 고요한 차 안으로 악뮤의 노래 한 곡이 흘러들어왔다. 정규 4집 개화(FLOWERING)의 수록곡,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Joy, Sorrow, A Beautiful Heart)'.

핸들을 잡은 채 그대로 멈추고 싶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라고, 쫓아내지 말고 품어주면 아주 예쁜 돌이 된다고 노래했다. 안개 속 아침에, 그 가사가 유난히 선명하게 들어왔다.


슬픔을 무서워하는 시대

요즘 사람들은 슬픔을 빨리 없애고 싶어 한다. SNS엔 웃는 사진만 올리고, 힘들다는 말은 '부정적인 사람'처럼 보일까 봐 삼킨다.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우리를 더 괴롭힌다.

악뮤는 그 반대를 이야기한다. 겁내지 말고 슬픔과 마주앉으라고. 흐린 날도, 화창한 날도, 시린 날도 다 끼우고 나면 하나의 퍼즐이 된다고.

'슬픔 역시 기쁨만큼이나 아름다운 삶의 한 조각.'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되뇌는 순간, 나는 니체를 떠올렸다.


니체가 악뮤를 만난다면

지난 글에서 니체의 아모르 파티(Amor Fati)를 이야기했다. 운명을 사랑하라. 고통도, 실패도, 슬픔도 피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라. 그것이 자신을 이겨내는 과정이며, 더 깊은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악뮤의 노래와 놀랍도록 닮아 있다.

슬픔을 부정하지 않고 삶의 재료로 삼을 때 비로소 보석이 된다는 것. 니체식으로 말하면, 고통을 통과해야 진짜 성장이 온다는 것. 둘은 시대도 다르고, 장르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이것을 '인생을 여행처럼' 사는 태도라고 부른다.

여행에서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는가. 우산을 쓰고, 카페로 들어가고, 창밖을 바라보며 그 분위기 안에 머문다. 여행 중의 비는 '나쁜 날씨'가 아니라 '여행의 한 장면'이 된다. 삶도 그럴 수 있다면.


우리 삶은 살만하다.

오늘날 삶이 팍팍하다는 말을 많이 한다. 맞다. 그런데 나는 건축가이자 도시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시각도 갖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 도시락을 싸올 형편이 안 되어 수돗가에서 물로 허기를 채우는 친구들이 있었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도 흔했다. 한국은 불과 80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그 시절에서 지금의 도시로 왔다. 세계 어느 나라도 이런 속도로 변한 곳이 없다.

지금도 어려운 사람들이 없다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가 때로 잊는 것이 있다. 우리가 이미 꽤 먼 길을 걸어왔다는 사실.

살만하다는 말은 행복하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에도 살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악뮤가 노래한 것처럼, 흐리고 시린 날들도 다 끼우면 결국 하나의 퍼즐이 완성되는 것처럼.


건축가는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을 알아야 한다

나는 직원들과 학생들에게 늘 이 말을 한다.

건축가는 서비스업이다.

사람들의 삶을 반영하고, 그 공간 안에서 행복감을 만들어내는 일. 그것이 건축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더 붙이고 싶다. 건축가는 단순한 엔지니어가 아니다. 사람의 마음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기쁨만 알아서는 안 된다. 슬픔도 이해해야 한다. 외로움도, 상실도, 그 감정들이 어떻게 공간 안에서 위로받는지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감정 전체를 이해하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진짜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악뮤의 이 노래가 유독 마음을 흔든 건, 그래서였는지도 모른다. 기쁨과 슬픔을 함께 품는 마음. 그것이 좋은 공간을 만드는 사람이 갖춰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는 것.

안개 낀 아침, 차 안에서 혼자 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슬픔을 품어줄 수 있는 어른으로, 감정의 깊이를 아는 건축가로 살아가야겠다고.


악뮤의 노래는 이렇게 끝난다. 슬프고 외로운 밤이 찾아오지 않는 날, 모든 게 애틋할 거라고.맞다. 우리는 지금 그 퍼즐을 완성해 가는 중이다. 아직, 그리고 함께


작가는 지속가능한, 오래 남을 공간을 고민하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건축가입니다.

건축가의 건축과 공간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litt.ly/geeumpl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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